남산에서 광화문까지
상주 남산은 많이 가봤어도 서울 남산은 처음 가봤다. 아침을 먹으려고 김밥집에 들어설 땐 비가 세차게 쏟아지더니, 배를 채우고 나설 때는 빗방울이 잦아들었다. 타이밍이 좋았다. 지하철을 타고 충무로에서 내려, 2000원짜리 번데기 한 컵과 함께 남산으로 올라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는 서울을 내려다보기 좋은 곳에 금세 도착해 승객들을 내려주었다. 군데군데 안개가 끼어 있긴 했으나 또렷한 전경과 선선한 날씨를 맞바꾼 건 꽤 괜찮은 등가교환이었다. 바람이 아주 시원했다. 조감의 함정인지 시내의 한 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자전거로 20분이면 가로지르는 상주나, 넓디넓은 서울이나. 별반 다를 것도 없어보였다. 낯선 듯 익숙한 그 풍경을 한참 더 보다가 남산타워가 있는 쪽으로 올라가봤다. 그곳에서는 8000원이면 사랑을 묶어둘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랑이 쇠붙이만 남기고 훌훌 날아가버렸는지는 또 모를 일이지만.
남산까지 간 김에 경복궁도 한 번 보고 싶었다. 경복궁역에서 내려 경복궁을 찾아가려는데, 국립고궁박물관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잠깐 둘러보고 나올 요량으로 들어갔지만 들어가보고 나니 그럴 수가 없었다. 무료입장이라고 해서 박물관의 규모가 소박할 것이라 짐작했다. 그런데 생각외로 박물관은 상당히 넓었고 전시테마도 다양했다. 조선의 국왕, 궁궐, 왕실의 생활, 회화, 음악, 의례, 그리고 조선시대의 천문과 과학까지. 아무리 들여다봐도 현실감 없던 국사책 속 장면들이 앞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어제라는 시간도, 일주일 전이라는 시간도 분명 존재했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그런데 거슬러 올라가는 정도가 어떤 모호한 기준을 넘으면 갑자기 터무니없는 환상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어리석은 왜곡일 뿐인데도 깨뜨리기가 참 쉽지 않다. 그래도 짧게나마 박물관을 찬찬히 둘러보는 동안만큼은 그곳에 스민 역사의 무게를 체감하려 애썼다.
고궁박물관에서 나왔을 때는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광화문 바로 앞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세종대왕 동상과 이순신장군 동상이 차례로 서 있었다. 발걸음을 옮겨 세종대왕 동상 앞을 지나고, 곧 이순신장군 동상에 다다랐다. 몇 걸음 더 앞에서는 사람들이 무대장치 같은 것을 설치하고 있었다. 뭐지 싶은 순간 그제야 보였다. 작은 노란 리본들. 세월호 토요문화제였다. 얼마든지 가져가도 좋다고 적혀 있는 상자 속에서 노란 리본 몇 개를 집어들고 걸어가던 내게, 어떤 아저씨 한 분이 노란 리본을 몇 개 더 쥐어주셨다. 이미 있어서 괜찮다고 말씀드리기도 전에, 가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당부하신다.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노란 리본들을 가방에 담고 무대 주변을 한 바퀴 빙 돌았다. 단원고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에 찍었다는 사진들, 또 학생들뿐만 아니라 세월호에 올랐던 다른 여러 사람들의 사연들, 아직 가족들에게 돌아오지 못했다는 실종자들의 명단. 벌써 500일이 넘는 시간이 지났나 싶었을 때, 그날이 모호한 기준 너머로 흘러가버리는 순간이 어렴풋이 그려졌다. 여기 모이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 것 같았다.
딱히 어떤 계획을 세우고 하루 종일 돌아다닌 건 아니었다. 그런데 남산, 국립고궁박물관, 그리고 광화문 광장을 차례로 지나오고 나니, 마치 처음부터 일정이 그렇게 정해져있기라도 했다는 듯 무언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남산에서 본 '조감의 함정'과 고궁박물관에서 느낀 '어리석은 왜곡'은 같은 종류인지도 모르겠다. 시공에 관한 오만한 착각, 대상과 거리를 둘 때 흔히 생기곤 하는. 광화문 광장에서 노란 리본 덕택에 입이 틀어막혔을 때, 그 두 가지 착각을 나는 동시에 마주한 것이다. 재밌는 일이다. 사랑을 이야기할 땐 광년의 단위로 떨어져 있는 별마저도 단숨에 따러갈 수 있을 만큼 가까운데. 그래, 많은 사랑이 날아가버려서 세상에 사랑이 부족해졌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