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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Oct 19. 2024

방심하면 스튜디오 호갱님 되는 건 한순간

정신줄을 놓고 있다간 웨딩앨범, 액자 덤터기 씁니다

40km 행군, 아니 마라톤과도 같은 웨딩 스튜디오 촬영 일정을 치르고 2주 뒤인 2월 어느 토요일 오전, 청담동 M 스튜디오 별관.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으면서 촬영한 결과물이 어떻게 나왔을까 2주간 기다리면서 궁금했다. 떨리는 마음을 안고, J와 서로 손을 꼭 붙잡고 3층으로 갔다. 문을 열자마자, 수많은 예비부부들의 웨딩 사진이 걸린 벽걸이형 액자들이 맞이했다. 정확하게 카운팅 하진 않았지만, 액자 수는 대략 30개 정도. 맞은편에는 다양한 사이즈의 액자에 삽입된 커플들의 사진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가 들어온 것을 발견한 직원은 황급히 로비로 달려왔다.


스튜디오 직원 :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나 : OOO입니다.
스튜디오 직원 : 저기 왼쪽 끝에서 2번째 방으로 들어가세요.


직원이 알려준 왼쪽 끝 2번째 방으로 조심스럽게 입장. 방 안에는 맥 데스크톱 세트 한 대가 올려진 ㄱ자형 책상, 그리고 의자 3개가 놓여있었다.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은 모니터 화면에 띄워진 폴더를 발견했다. 그 폴더 안에는 반나절 동안 촬영했던 우리의 웨딩 스튜디오 촬영본이 200여 장 들어 있었다. 듣기로는 포토그래퍼 및 스튜디오 직원들에 의해 1차로 자체 필터링을 한 결과물이라고.


이게 우리 촬영본이야?? 우와...!!


나와 J는 이미지 파일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매우 신기하면서 어색했다. 전문가가 촬영한 생애 첫 화보집인 점과 다양한 예복을 착용하면서 촬영했던 콘셉트 사진 속 우리의 모습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다가와서다. 살짝 보정이 들어가 좀 더 이쁘고 잘생기게 나온 것도 있겠지만,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옷차림을 입고 찍은 샷이라서 그런지 자꾸만 눈길이 간다. 오랜 시간 동안 고생하면서 촬영한 보람이 있군, 후훗.


멋진 화보집 감상에 푹 빠져있을 때쯤, 직원 한 명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두 사람에게 웨딩앨범에 대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앨범 하나를 구성하는 데 포함되는 사진이 최소 20컷이니 반드시 20컷은 셀랙해주셔야 해요. 웨딩 스튜디오 촬영 결제하셨을 때, 기본 20컷이 포함되어서 20컷까지는 무료세요. 그 이상 추가될 경우, 추가요금이 발생하오니 참고 부탁드려요. 셀렉 완료하신 뒤에 다시 불러주세요."


에??? 너무 심하잖아요! 20장이라니...!


이 많은 사진들 중에서 20장을 골라야 한다고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다. 한 장 한 장 예쁘게 담겨 있는 우리 사진인데 왜 다 가져가지 못하는 거니!! 20장이면, 우리가 봤던 이미지에서 1/10 수준인데 이걸 어떻게 솎아낸담. 별 수 있나, 해야지.


두 사람은 모니터가 뚫어질 듯 초집중하며 촬영본을 검수하기 시작했다. 이 사진은 표정이 너무 부자연스러운 게 티가 나서 패스, 요 사진은 앨범에 포함시키기에는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고 따로 노는 느낌이 들어서 탈락, 이건 두고두고 보기에는 너무 오그라든다 빼자.


그렇게 걸러내고 걸러냈는데도 42장이 남았다. 사진들이 예쁘게 나와서 과감하게 내치기엔 자꾸 눈앞에 아른거려서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마음이 약해진 우리는 "평생 한 번뿐인 웨딩 촬영인데.."라고 자기합리화하며 42장으로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매우 고르기 힘들었어요...


사진 셀렉이 다 끝났다고 스튜디오 직원을 불렀다. 리스트에 담아 둔 사진 리스트를 확인한 직원은 빛의 속도로 계산기를 두들긴 뒤에 가격을 알려줬다.


한 장당 3만 원씩 추가되어서 앨범 가격은 63만 원 되겠습니다.


앨범 하나 만드는 데 액수가 이렇게 많이 든다고? 하지만 직원이 가격을 알려줄 때는 나와 J 모두 이성의 끈을 놓고 웨딩앨범 나온다는 생각에 빠져있던 상태였다. 이런 호갱커플을 보았나.


직원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결혼식 당일, 그리고 집에 걸어둘 웨딩 액자 가격을 설명했다. 아웃사이더, 조광일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준의 속사포로 액자 가격을 설명했다. 제대로 듣지도 못했으니 판단이 제대로 됐을 리도 없고,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냐며 기본으로 제공하는 메인 액자에 아크릴 코팅을 씌우고 결혼식장에 함께 구성할 미니 액자 4개 세트를 덜컥 계약했다. 결혼식장에 구성되는 미니액자는 식장 쪽에서 무료 제공해준다고 식장 계약할 때 알려줬었는데, 홀라당 다 까먹었다. 앨범과 액자는 결혼식 한 달 전인 3월 이후에 받을 수 있다고 알려줬다.


그렇게 우리는 호구가 되는 거야


눈누난나 콧바람 불면서 M 스튜디오를 나온 두 사람은 점심을 먹고, 근처에 놀러 나온 J의 직장동료 둘과 급만남을 가졌다. 이야기로만 듣던 J의 직장동료들을 첫 대면할 때는 어색어색했지만, 어색한 공기는 오래가지 않고 주둥아리 모터를 풀가동하며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 자연스레 웨딩 스튜디오 촬영 이야기가 나왔고, 앨범과 액자 계약까지 했다고 말했다. 가격을 듣던 J의 직장동료들은


가격이 너무 비싼 것 같은데.. 바가지 쓴 거 아니야?
사설업체가 훨씬 더 가성비 좋다는데 그쪽에 맡기는 게 낫지 않을까?


앨범 받을 생각에 싱글벙글했던 예비부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제야 결혼 준비 카페에 들어가서 웨딩 앨범과 액자 관련 후기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스튜디오에서 계약하고 만족했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굳이 비싼 돈 들이지 않고 사설업체에 액자 제작을 맡기는 게 비용 면에서 낫다', '보정 등 퀄리티도 사설이 훨씬 낫다'는 후기들이 많았다.


이런, 덜컥 계약해버린 게 실수였네. 평소에는 미리 확인하고 진행해 놓고선 왜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나. 잠시 긴장의 끈이 풀려서 방심한 것이었다. 그러다 문득 스튜디오 직원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혹시나 수정 등 변경사항 있으실 경우, 오늘까지 연락해주세요.
그래야 반영되고, 그렇지 않으면 다음날부터 바로 제작 들어갈 예정이오니 참고 부탁드려요.

빨리 전화 좀 받아라, 빨리.. 제발 받아라!!!


오후 6시 50분경, J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M 스튜디오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 연결 신호음만 무한 반복될 뿐, 핸드폰 너머에선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 벌써 퇴근한거야? 안돼, 이럴 순 없잖아. 전화받으라고~!! 간절하게 외쳐도 응답 없는 너. 이렇게 호갱님 확정되는건가.


Nope! 기억을 다시 더듬어봤는데 한 가지 해결책이 남아있었다. 스튜디오 측에서 영업시간이 언제까지라고 사전 고지하지 않고 오늘까지 수정 요청 전화를 하면 반영한다고 말했었다. 모두 퇴근하여 더 이상 전화를 받지 않는 것 같으니, 내일 아침 일찍 전화해서 해결해야겠다.


결전을 앞둔 비장한 장군의 마인드로 정신무장 중


다음날 오전 10시, 전쟁터로 나가는 군인처럼 마인드셋을 한 뒤 M 스튜디오에 전화했다.


M 스튜디오 : 여보세요.
나 : 안녕하세요, 어제 앨범과 액자 계약했던 OOO인데요. 저희 앨범, 액자 수정해야 할 것 같아서요. 앨범은 20장 기본으로 하고, 액자는 메인만 기본으로 하려고요.
M 스튜디오 : 죄송하지만, 지금 바로 앨범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벌써 제작에 들어갔다고? 오전 10시인데? 이건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나 : 어제 6시 50분쯤에 스튜디오에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를 안 받으시더라고요. 어제 저희한테 이 부분 설명해주실 때, 스튜디오 영업시간을 알려주지 않으셔서 언제까지 전화해야 하는 것도 말씀 안해주셨잖아요. 그러니 당연히 오후 늦게 전화해도 괜찮은 줄 알았죠. 진작에 고지해주셨으면, 이렇게 오늘 아침에 다시 전화하는 일도 없었겠죠. 그렇지 않나요? 그리고 벌써 제작에 들어갔다고요? 저희가 수정요청이 올지 안 올지도 확인 안 하시고 그렇게 진행해도 괜찮으신가요? 그건 좀 너무하신 거 아닌가요?


예상치도 못한 반격, 특히나 자신들의 실수를 이제야 알았는지 당황한 듯한 기색이었다. 침묵으로 일관하더니 "확인 후 다시 연락드리겠다"며 급하게 끊어버렸다.


한 시간 지났을까, 아무런 소식이 없어 다시 스튜디오에 전화했다. 계속 작가와 이야기하는 중이라고 첫 통화와 같은 대답이었다. 확인이 오래 걸릴 일은 아닐 텐데요. 이대로 덤터기 쓸 수 없기에 한 번 더 강력하게 주문한 것 수정하겠다고 피력했다. 그렇지 않으면, 소비자보호원에도 신고할 것이라고 세게 밀어붙였다.


스튜디오에서 시간을 질질 끌려고 할 때마다 고삐를 늦추지 않고 계속 강하게 밀고 나갔다. 2시간 만에 답장이 왔다. 스튜디오 측에서 과실을 인정하고 우리의 수정요청을 받아들였다.


수정 해냈다!!!!!!!!!!!


우리는 메일을 통해 선별했던 이미지 42장을 받았다. 여기서 절반 이상을 걸러내야 한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어렵지 않았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사진들을 솎아냈다.


개인 사진은 2장씩 총 4장으로 컬러와 흑백 버전으로 선택했고, 나머지 16장은 콘셉트와 예복, 촬영 장소에 맞춰서 4장씩 선별했다. 명확한 기준을 정해놓은 덕분에 필터링 작업은 제법 빨리 끝났다. 스튜디오 측에 최종 선별한 이미지 20장 파일명을 전달했다. 이 중 메인 액자 및 선수정본 4장 포함해 총 5장 이미지도 표기했다. 본식 진행 시 구성할 액자에 넣은 사진들을 먼저 받을 수 있다고 스튜디오에서 알려줬다.


M 스튜디오 측은 우리가 고른 이미지 5장은 1달 이내 1차 보정본을 받을 수 있으며, 재작업은 2차례 가능하다고 설명해 줬다. 메인 액자는 보정본 최종 컨펌 완료되면 수령할 수 있다고 답변받았다. 앨범은 결혼식 1주일 전에 직접 스튜디오에서 수령 혹은 택배로 전달해준단다. 조금 번거롭지만, 조금이라도 파손되면 곤란하니까 직접 받아가겠다고 정리했다. 이렇게 스튜디오 촬영 앨범과 액자 계약 건은 해결.


이제 사설업체에 보정 맡길 이미지를 골라서 보내자

자,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결혼식 당일에 전시할 액자 구성용 이미지 5장과 모바일 청첩장에 추가 반영할 이미지 5장 보정하기. M 스튜디오 쪽에서 보정한 이미지를 받기까지 제법 오랜 시간 걸리는 데다가, 먼저 결혼한 선배들이 사설에 맡기면 저렴한 가격으로 빠르고 디테일하게 보정해준다고 강력 추천했다. 믿어보겠습니다.


재택하는 날짜 하루를 잡아 신속하게 진행했다. 사진보정 사설업체 서칭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검색창에 '웨딩사진 보정'으로 입력만 해도 네이버는 수많은 업체들 리스트를 찾아줬다. 그중 '10장에 3만 원'에 해준다는 R 업체를 발견해 곧장 카카오톡으로 연락했다.


카톡을 보내면 늦어도 3분 내 칼답장, 보정완료하기까지 30분 이내 해결. 추가 수정사항을 요청하면 빠르게 보완했다. 요청이 조금 무리수인 경우에는 완곡하게 말하면서 중간지점으로 유도해 수정해줬다. 고구마 백만 개였던 M 스튜디오와는 다른 사이다였다. 덕분에 반나절 만에 컴플리트. 싸랑해요!


R 업체의 이미지 수정본을 확인한 뒤, 서둘러 집 근처 사진관을 찾아갔다. 미리 소형액자용 사진을 인화하기 위해서였다. D-Day가 가까워질수록 정신없어서 까먹을 수도 있으니 미리미리 해두는 J형의 습관이다. 사진관 주인장 아저씨는 인화용 컴퓨터 바탕화면에 폴더 하나 만들어서 인화할 이미지를 저장해두라고 알려줬다. 아저씨가 알려준 대로 클라우드에 저장해 둔 이미지 4장을 다운받아뒀다. 인화물은 1시간 뒤에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여유롭게 점심 먹고 와야지. 이렇게 2번째 해야 할 일도 완료.


두 번째 미션도 클리어!!!!!!


약 한 달이 지난 3월 중순 어느 주말 오후.


한 손에 특대형 비닐봉투를 들고, 연식이 오래된 듯한 가게로 홀로 들어갔다. 며칠 전 M 스튜디오에서 직접 찾아온 메인 액자틀을 바꾸고 싶어 사설 업체를 방문했다. 스튜디오보다 사설 업체가 훨씬 더 저렴한 가격에 고급스럽게 만들어준다고 인생 선배님들의 후기 때문이다. 실제로 M 스튜디오에서 기본으로 해준 액자틀.. 옛날 사진관에서나 볼법한 올드한 디자인과 진갈색 컬러였다. 기본이 무료라지만, 이건 좀...


깔끔한 화이트 톤이 좋겠다는 J의 의견을 받들어 사설 업체 사장님께 전달했다. 사장님은 다소 개떡 같은 나의 설명을 찰떡 같이 알아들으시고, 3일이면 완성한다고 호언장담하셨다. 가격도 4만 원. 오케이 4달러, 아니 4만 원에 쿨거래.


약속한 3일 뒤, 다시 찾은 사설 업체. 사장님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반기며 새롭게 태어난 액자를 보여줬다. '알잘딱깔센의 정석'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수준의 솜씨였다. 깔끔하고 심플하게, 그리고 두껍지도 않은 화이트톤의 목재 프레임이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사업 번창하시고 제가 주변에 소문 많이 낼게요!


사장님의 알잘깔딱센이 돋보이는 액자프레임, 감사합니다.


편하게 스튜디오에 맡기는 것도 방법일 수도 있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도 발생한다. 돈을 쓰더라도, 꼼꼼하게 잘 따져보고 현명하게 써야한다는 걸 스튜디오 앨범 계약 건을 통해 배웠다. 이렇게 한 고비를 슬기롭게 넘겼으나, 또 다른 고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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