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주인공 왕룽이 결혼식 하는 장면과 함께 시작된다.
중국 북부지방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왕룽은 결혼식 날 부인에게 차를 끓여주고 목욕을 하려다 아버지께 혼이 난다.
"이 놈! 그렇게 사치스럽게 살면 집안이 망한다."
"아버님,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고 했잖아요."
왕룽이 처로 맞이한 여성은 아란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대지주의 종이 었다.
그녀는 부모 없이 자라 남의 집 부엌일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예의가 바르고 성실했다.
다만 외모가 수려한 편은 아닌 탓에 남성에게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왕룽은 홍수, 메뚜기 떼 습격 등 각종 자연재해 속에서 꿋꿋이 버티며 자식을 세명이나 낳아 길렀다.
많은 이들이 도적떼와 굶주림으로 죽어갈 때, 그가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검소한 자세로 늘 곡식을 비축하고 아란과 함께 성실하게 일한 덕분이었다.
그 둘은 열심히 모은 돈으로 대지주 황대인의 토지 일부를 매입하기도 한다.
혼인과 출산으로도 모자라 마을 제일의 부잣집 토지까지 작게나마 매입했다는 사실에 중년으로 접어든 나이에 왕룽은 처음으로 큰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한 해는 견디지 못할 기근이 닥쳐 마을 사람들이 눈 앞에서 죽어가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끔찍한 소식도 접하였다.
그는 굶주림과 안전을 위해 가족을 모두 데리고 남쪽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사지는 멀쩡한 탓에 왕룽은 인력거를 끌며 아버지와 자식들을 먹여 살렸으며 아란과 그의 자식들이 구걸하여 모은 돈도 생활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도적 떼들이 쳐들어왔을 때, 왕룽과 아란은 혼란을 틈타 대저택에 숨겨진 금은보화를 훔쳐 다시 북쪽의 집으로 돌아온다.
고향은 폐허로 변해있었다.
성벽은 무너지고 성해 보이는 집은 한 채도 없어 보였지만 땅만은 그 자리 그대로 왕룽을 기다리는 듯했다.
왕룽 일가는 남쪽에서 가져온 보물을 팔아 기울어가는 황대인의 토지를 헐값에 매입한다.
곡식으로 채워진 곳간과 은화로 가득한 주머니가 증명하듯 반복되는 가뭄과 홍수도 더 이상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난하면 가난함에 의한 문제가 있듯 부유하면 부유함에 의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는 법.
왕룽은 시내에 위치한 다방에서 옌화라는 여자를 만나 첫눈에 반하게 된다.
"양귀비가 따로 없군"
찻 집주인이 그를 '왕 농부'라고 조롱하듯 불렀지만, 이미 부자가 된 왕룽은 아랑곳하지 않고 옌화에게만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결국 그는 옌화를 두 번째 처로 맞이하여 첫 부인 아란과의 갈등을 만들어내고 만다.
왕룽은 옌화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동안 애지중지하던 변발도 자르게 된다.
중국이 청나라에게 점령당한 후 강제로 시행되었던 것이 바로 변발이었으나,
20세기 초, 변발은 치욕적인 역사의 잔재가 아닌 하나의 세련된 멋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었던 순간도 있었다.
긴 시간 기르던 머리를 잘랐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왕룽이 옌화를 얼마나 좋아했는가를 알 수 있다.
왕룽은 세 아들이 자신의 바람대로 농사꾼이나 장사꾼이 되어 이 땅을 지켜주길 바랐다.
하지만 장남은 허영심에 가득 차 저택을 꾸미는데 큰돈을 쓰고 자신을 치장하는데 사치를 부렸으며,
장사꾼인 차남은 왕룽에게 장남의 잘못을 꼬집어 비판한다.
막내아들은 왕룽과 커다란 갈등을 겪는다.
왕룽은 그가 농사꾼으로 자라나길 원하나 막내아들은 그의 요구를 거절하고 고향을 떠나 자신의 삶을 살길 바란다.
세월이 흘러 어느 날부터인가 병으로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던 왕룽의 첫 처인 아란은 병들어 죽고, 그녀가 죽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도 돌아가시게 된다.
뒤이어 궂은일을 도맡아 해 주던 천서방도 넓은 대지에 묻으며 왕룽은 자신도 점점 기력이 쇠퇴해가는 것을 느낀다.
왕룽은 대지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긴다.
갖은 시련에도 그 자리 그대로 그와 가족들은 기다려준 고향이자 소중한 사람들의 탄생과 죽음을 기꺼이 받아준 영원한 안식처였다.
하지만 세 아들의 생각은 왕룽과 너무나도 달랐다.
왕룽은 곧 철길이 들어설 테니 기회를 틈타 땅을 팔아 큰 보상금을 받자는 모략을 꿈꾸는 장남과 차남의 대화를 엿듣고 크게 노한다.
주저앉아 흙을 하 줌 쥐고는 얼굴에 갖다 대며 통곡하는 왕룽에게 두 아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 마음 놓으세요. 땅은 절대 팔지 않을 거예요."
형제는 눈을 맞추어 묘한 웃음을 짓고 아버지를 집으로 안내한다.
변화하는 사회, 세대 간 갈등
우리가 알다시피 중국은 정말 급격하게 변화했다.
왕룽은 농작물이 잘 자라는 땅을 갖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였으나 세 아들은 땅을 보상받기 위한 수단이거나 아예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 책은 각자의 꿈을 꾸는 세 아들과 땅 그리고 가문이 영원했으면 하는 왕룽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갈등도 흐릿하게나마 그려놓았다.
주인공 왕룽의 눈에는 자신이 겪은 삶만큼이나 자식들이 더 복잡하고 뜻대로 안 되는 존재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땅에 대한 욕망의 크기가 그 사람의 그릇을 정하는 기준은 되지 못한다.
인간에게는 명예나 지식 등 다른 가치도 소중하게 여기는 자들도 많고 설령 그 가치가 적어 보인다 하여도 소유자가 소중하다면, 그 가치로 인해 행복하다면 우리는 그것을 인정해주어야만 한다.
이러한 가치에 대한 갈등은 대지 이후 분열된 집안 이야기를 그린 '아들들', '분열된 집'이라는 작품에서도 쉽게 엿볼 수 있다.
중국인들에게 땅이란
과거 중국은 현재의 중국을 떠올리면 말도 안 될 정도로 셀 수 없을 만큼의 분열과 침략에 시달렸다.
이 거대 국가는 비옥한 토지를 향해 끊임없이 남침하는 북방민족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만리장성을 세웠으며, 거대한 덩치 곳곳에서 벌어지는 반란과 분열로 우리가 잘 아는 춘추전국시대, 삼국지 같은 시련을 겪어왔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경을 마주한 나라라는 사실과 역사적으로 도적떼와 자연재해라는 지병에 평생을 시달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왜 중국이 자신들의 땅에 그토록 집착하는지 알 수 있다.
현재의 중국은 단 1평의 땅도 더 이상 양보할 생각이 없다.
5천만 명 이상의 소수민족이 각자의 땅에서 독립을 외치지만 이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무자비한 탄압이다.
수많은 할리우드 스타들은 티베트 탄압을 멈춰달라 호소하였으며 최근에는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유명선수 메수트 외질이 '신장 위구르 종족 탄압을 멈춰야 한다'라고 공개발언을 하였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끄떡하지 않았다.
홍콩사태에서도 그랬듯, 단 한 곳의 분열은 연쇄적인 독립을 낳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티베트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그중 하나는 황하와 양쯔강이 시작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댐이라도 지어지는 날에는 중국의 수원은 마르기 시작한다.
현재 지구의 지붕 티베트에는 총과 칼이 한번 휩쓴 뒤, 산을 뚫고 절벽을 뛰어넘는 철로가 놓여 중국의 위안화가 동서로 가로질러 유통되고 있다.
위구르족은 현재 100만 명 이상이 강제 수용소에 갇혀 자신들의 종교 대신 강제로 중국의 지도자를 숭배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위구르족 지지 소신발언을 한 메수트 외질은 중국에서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다.
그가 등장하는 축구 경기는 22명이 아닌 외질 외의 선수들만 호명되는 21명들만의 경기가 되어버렸으며,
축구 게임에서 조차 그의 캐릭터는 검색되지도 등장하지도 않는다.
인간에게 땅이란
우리는 보통 설이나 추석명절 때 온 가족 모여 앉아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가끔 명절 때 친척들과 함께하지 않는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되니, 친인척 사이에 갈등을 만들어내는 그놈의 이름은 바로 땅이다.
돈이야 가치가 n분의 1로 나누어 정확히 분배하면 그나마 낫지만 땅은 바라보는 사람마다 그 가치가 다르고 나누기도 애매하다.
바다 없이는 살아도 대지 없이는 살아갈 수 없으니 필요한 것이 당연하지만, 가족끼리도 이 악물고 땅 때문에 싸우는 것을 보면 땅은 누군가에게 분명 감정평가사가 내리는 금액 이상의 값어치를 하고 있음에 확실하다.
땅으로 인한 갈등은 민족 사이에서도 벌어진다.
대표적인 예는 유대인과 이스라엘로 AD77년 유대인들은 로마군에게 크게 패해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이후 세계 2차 대전에서 대학살을 경험하게 된 유대인은 구약성서에 쓰인 대로 자신들의 고향으로 되돌아가고자 당시 패권국가 영국 정부에게 이주 승인을 요청한다.
고향으로 돌아온 유대인은 그곳에 오랜 시간 자리 잡은 팔레스타인과 갈등을 겪게 되고 이 불씨는 점점 커져 세 번의 중동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도대체 약 2천 년이 지나 약속의 땅이라는 곳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대지란 그동안 한시도 잊지 못할 만큼의 특별한 의미가 있는 땅이었을까?
왕룽에게 북방의 땅은 자신을 기다려주는 고향이었다.
조상이 잠들어있고 향후 자신도 영원히 잠들 보금자리이자 가족을 위해 흘렸던 피와 땀이 스며들어있는 열정의 공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자식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연인들끼리 주고받은 편지가 다른 이들에게는 큰 가치와 의미로 다가오지 않듯, 왕룽이 한평 두평 사들이고 농사지은 땅은 자신들에게 값어치 이상의 무언가로 다가오지 못했다.
우리는 나를 아껴주고 기다려주는 대상을 만나길 바라고 쉽게 변질하지 않는 물건을 갖길 원한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여인이거나 귀여운 강아지를 갖기 원하고, 물질적인 가치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라면 금이나 다이아 같은 보석을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나는 남쪽 지방에서는 거지 생활을 청산하고 자신의 땅으로 돌아온 왕룽의 모습을,
한 뼘 두 뼘 사들인 땅에서 자식을 낳아 키우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대지는 왕룽이 남쪽나라로 떠나도 아무 말 없이 그를 기다려주었고, 세상을 떠난 부인과 아버님을 위해 무덤을 마련해주었으며, 다가오는 왕룽의 무덤이 되어줄 준비도 기꺼이하고 있었다.
아마도 어쩌면 왕룽에게는 대지가 가장 큰 가치를 지닌 대상으로 인식된 것은 아닐까 싶다.
20세기 중국인의 삶을 보여주는 '대지'의 저자는 중국인이 아닌 미국인 선교사인 펄 벅이라는 외국인이다.
이 책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펄 벅은 중국인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였으며, 한국도 몇 차례 방문하여 한국 농천을 배경으로 한 소설도 집필하였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며 중국에 대해 알아보는 중, 이 거대한 대륙에 부정적 시각을 갖게 만들만한 홍콩 사위 탄압 영상, 100만 위구르족 강제 수용소 등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대지란 무엇일까?라는 물음표로 책을 읽기 시작했더라면, 지금은 알면 알수록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에 가슴 아픈 과거를 품고 있을 대지도 많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
대지를 읽으면 현재의 중국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지금 드는 생각은 단순하다.
왕룽은 이해해도 중국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생후 3개월부터 17살까지 중국으로 건너가 살았다는 펄 벅.
자신이 중국인인지 외국인인지도 제대로 몰랐을만큼 중국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던 그녀는 지금의 중국의 모습을 상상하기나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