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자랑질
영어단어 공부를 시작하고 1000시간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래 봐야 수준은 겨우 중3의 영어 단어가 끝난 것 같다.
난 이 능력으로 어떻게 미국 생활을 버텼는지 내가 생각해도 대단한데...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친구들이 다들 하는 영어 공부를 나도 하게 해 달라고 졸랐었다.
고학력으로 영어는 불편이 없으셨던 아버지의 말씀이
영어 발음은 한 분의 선생님에게서 배워야 한다며 학교 선생님께 배우라고 하셨다.
덕분에 알파벳 순서도 모르고 중학교 입학을 하고 보니
아이들은 거의 영어 교과서 2과까지는 배우고 왔었다.
거기에 운명적으로 3년을 같은 영어 선생님의 밑에서 안 되는 아이로 인정을 받았는데
아버지가 무슨 회장의 직함으로 회비를 많이 내셨다는 것을 졸업하면서 전해 들었다.
그래서 미워하거나 화를 내지도 않았던 것이 이해는 되었지만
그때부터 그 시점에서 나의 영어 실력은 그대로 멈췄었다.
둘째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고 온통 영어로 둘러싸인 미국에서 영어를 해 보자는 생각으로
지금이라도 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다부지게 마음을 먹고 시작했었다.
학원 같은 곳은 다녀야 하는 것과 시간의 구속이 싫어서
마음 편히 조금씩 내 수준에 맞게 공부할 수 있는 것을 찾아냈다.
단어를 외우게 하면서 문장이 따라 나오는...
이것을 8년 동안 하고 있다.
암기력이 나쁜 나는 그저 매일 몇 분씩 하면서 꾸준히 하자는 것이 전부였는데
영어는 나에게 많은 나쁜 고정관념이 남아 있어 그냥 힘들고 어려운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대학을 가기 위해 무조건 외웠던 것들을 모두 버리고
나에게 맞는 조건으로 영어가 편하게 가깝게 느껴지길 바라며 했었다.
그랬더니 1000시간을 했다고 한다.
언젠가 아는 단어가 많아지고 그러면 입이 열리겠지 했던 것이
어느 날부터 아이들끼리 하는 대화에 내가 아는 단어가 조금씩 많이 들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 단어가 의미까지 전달되는 것은 아니고 그저 발음 그대로 그뿐인데
다음엔 의미까지 같이 들려오겠지 하며 기대를 한다.
나의 수준을 내가 잘 알고 있다는 것도 무기가 된다는 것과
모르는 내가 창피하다는 것을 이기는 용기가 생겼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며 아직도 머리 좋은 자식이 좋더라 하시는 분들에게서
나는 나를 스스로 지키고 많이 키워냈다는 것에 자랑이 하고파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