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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mom Jan 21. 2024

집세를 딸과 타협했다.

UCLA 주변 아파트

석 달 전에 와서도 딸만의 공간을 만들어 주자고 했다가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나중에 하면서 미루고 이번에도 벼르고 와서

집안의 물건을 보고는 이 짐들은 어쩌나 하는 걱정에 머뭇거렸다.


LA의 집은 24년 전에 아이들과 같이 와서 살기 시작한 살림들로

내가 떠나야 하면서 아이들을 대학 옆으로 와서 살게 했는데

한적한 곳에서 살면서 늘어난 살림살이를 거의 반으로 줄여야 했다.


딸아이가 졸업한 대학의 연구실에 자리를 잡고는 이제까지 있는데

그렇게 줄어든 살림살이를 아이들도 나도 거의 건드리지 않고 지내며

아들은 동부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고향처럼 이곳으로 돌아왔었다.


그러니까 이곳은 내 집은 아닌데 그렇다고 딸의 집도 아닌 것으로

딸이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이사를 하고 월급을 받게 되니까

하나 있는 방을 딸이 쓰기로 하면서 집세로 천불을 내기로 했었다.


아들은 공부를 더 하겠다고 했지만 언젠가는 이 LA에 오겠다고 하고

같이 살면서 늘어난 살림살이가 아이들에게는 푸근함을 주는 것 같아

가능하면 이대로 유지를 하면서 고향의 역할을 하게 했었다.


그런데 아들이 뉴욕에 자리를 잡으니 한동안은 돌아올 것 같지 않고

매년 늘어난 집세가 비싸서 내가 감당하려니 내 삶이 팍팍한 것 같아

딸아이 만의 공간을 만들어 주면서 집세도 전부 딸이 내도록 해서 

아들과 내 물건은 가능한 줄여 부산으로 보내던지 하자고 마음먹었다.


아들은 아들의 월급에서 해결하고 딸은 딸의 능력에서 살아가게 하자고

미국살이 24년의 시간이 만들어 놓은 살림살이를 분리하기로 했었다.


정말 생각만으로는 잘 될 것 같았다.

아들의 물건과 내 물건들 중에 정말 추억이 되는 것만 남기고 버리자고

내 물건들은 거의 10년 전의 것들이니 별로 건질 것도 없을 거라며

아이들에게 나의 생각을 알리면서 물었더니 아이들도 그러자고 했다.











그런데 물건 걱정만 열심히 한 탓인지 집세가 생각과 달랐다.

당연하게 큰 공간에서 작은 공간으로 가면 집세는 줄어들어야 하는데

아파트 건물 안에 있는 가장 작은 방의 크기가 생각보다는 넓었다.

지금 있는 곳은 750 sq ft로 방이 하나 있는 곳인데 약 21평이 되고

방이 없는 곳은 620 sq ft로 약 17.4평이라고 하니 작은 공간은 아니었다.

거기다 14년째 살고 있어서 그동안 집세가 처음보다는 많이 올랐지만

우리가 내고 있는 집세는 새로 계약하는 집세보다는 적게 내고 있어

방이 없는 곳으로 이사를 한다면 고작 150불 정도만 싸진다고 했다.


히터가 고장이 나니 예전부터 있던 수리하는 아저씨가 왔는데

이 아저씨도 오래된 것을 느꼈는지 몇 년을 살고 있냐고 묻더니

14년이나 된다면 너의 집이네 하기에 그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아파트는 대학 옆으로 이사를 하려고 거의 한 달을 돌아다녀 보면서

집세와 건물등을 아이들과 내가 의논해서 내린 최고의 아파트였었다.

그래서 집세를 줄이는 방법으로 다른 곳으로는 가고 싶지가 않은데 

이 건물에서 가장 작은 곳으로 1층으로 가면 150불 싸진다고 하니

지금 살고 있는 꼭대기 층인 4층이 되면 도리어 더 내야 할 것 같았다.


작은 공간으로 이사를 하고 받는 혜택이 그 정도이면 다른 것을 참자고

딸아이에게 설명을 구구절절하게 하면서 어쩌고 싶은지 물었다.

이 아파트는 작은 언덕 위에 있는데 거기에 꼭대기 층이어서 탁 트여 

창밖의 시야에 걸리는 것 없이 전부 하늘이어서 딸이 좋아했었다.





















딸이 방에서 찍은 하늘 사진 


그런 딸도 지금 살고 있는 이곳에서 사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슬그머니 집세 내는 것을 조절하자고 기분 좋을 때 말을 꺼냈는데

딸아이가 500불을 더 내겠다고 하기에 내가 대답 없이 멀뚱거리니

나를 쳐다보면서 약간 억울한 표정으로 1000불 더 내겠다고 했다.


이렇게 딸과 집세를 타협하고 이대로 살기로 정하고는

집세를 많이 내는 딸을 위해서 딸아이의 공간처럼 만들어 주려고 

아들의 물건도 오래된 내 물건들도 추려 버리면서 집안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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