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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한국인의 행동

나는 이 행동이 어렵다.

by seungmom

일본에서도 물건을 테이블에 두고 자리를 잡는 일은 꺼렸다.

일본인 친구들이 잃어버려도 상관이 없는 허름한 빈 안경집이나 휴지등을

이 자리는 사람이 있다고 앉지 말라는 표시로 놔두라고 나를 가르쳤다.


그래서 일본에서 내가 쓰던 고가품은 아니지만 아끼는 물건을

테이블에 두고 자리를 떠난 적이 있었는지 떠올리려고 해도 없는데

그래서인지 손때 묻은 내 물건을 잃어버린 기억도 거의 없다.


난 물건이 새것이면 잃어버려도 아깝다는 생각을 덜한다.

그런데 오랫동안 가방에 넣어 두면서 썼던 익숙해진 물건들에는

엄청나게 미련을 떨면서 아쉬워하며 찾도록 노력을 했는데

그런 물건은 나의 일부라는 생각에 그냥 버려지면 안 될 것 같았다.


미국에서는 절대로 두고 떠나면 안 되는 철칙을 가지고 살았다.

들고 있는 가방도 가능한 누구와도 스치지 않게 애를 쓰면서

비싸 보일 것 같다는 물건은 밖에서는 꺼내어 쓰지 않았는데

한인 마트같이 한국인이 많은 곳에 가면 그 긴장이 사라졌다.


딸아이 덕분에 UCLA 학교 옆에서 살아 학교 도서관에 자주 갔었는데

아트 도서관에는 셔틀버스에서 내려 가깝고 빈자리가 많아 좋았다.

학교 안의 여러 도서관 중에 변두리에 있어 그런지 조금 어수선했지만

내가 가기에는 가장 마음이 편해서 샌드위치를 싸들고 갈 때도 있었다.












도서관의 분위기는 내가 상상하는 그런 느낌으로 정말 좋았다.

젊은이들이 책들이 있는 그곳에서 잠시 머물 수 있다는 기분이 좋아

노트북에 커피까지 싸 들고 가서 진을 치고 앉아 한나절을 보냈는데

샌드위치를 먹자고 도서관 옆 공원에 나가면 다람쥐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찐한 추억거리를 만들어 줬던 도서관이 슬슬 멀어졌는데

반드시 한번 이상은 가야 하는 화장실이 너무 번거로워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커피도 물도 마시지 않고 도서관에 머무는 시간도 줄여 봤는데

이렇게까지 하면서 도서관에 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화장실에 가려면 모든 것을 다 싸 들고 가야 하는 것으로

그러고 와서는 노트북부터 모두 다시 꺼내어 놓으려면 왠지 짜증이 났다.

잠깐 자리를 비우는 일이 왜 이렇게 복잡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어떤 거창한 일을 하려고 도서관에 왔는지 행동에 결과에 납득이 안되었다.

그렇게 도서관에 가는 것에 대한 가치가 줄어 가는 횟수도 줄었는데

어쩌다 가 볼까 하는 마음이 생겨도 화장실을 떠올리면 관두게 되었다.


이런 습관이 몸과 마음을 지배하는지 이 나라 대한민국 카페에 앉아서도

펼쳐 놓은 노트북을 다 들고 가야 하는지 안 그래도 되는 것인지 망설인다.

한 번은 옆자리 젊은이에게 봐 달라고 부탁을 하고 자리를 떠났는데

왜 미국에서는 이러지 못했는지 생각을 해 보니 그럴 젊은이가 아니었다.


한국은 정직하다고 남의 물건을 집어 가지 않는다고 하는데

실지로 내 오피스텔에는 택배의 물건들이 거의 다 밖에 놓여 있다.

택배 아저씨도 그냥 문 앞에 두고 가시는데 걱정하는 기색은 없다.

이런 나라에서 나도 택배를 문 앞에 두세요 하고는 불안을 느끼는데

이 정직한 한국인을 믿지 못하는 것인지 나도 모르게 걱정을 한다.


미국의 아파트에는 소포를 두는 방이 따로 있고 거기에는 카메라가 있다.

일본의 아파트에는 소포 보관함이 있어 나만 아는 비밀번호로 열 수 있다.

이런 나라들에서 살다 온 나는 아직도 한국의 시스템에 적응을 못하고 있다.












한 번은 피자집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20년이 지난 낡은 작은 손 타월을

집에 와서 점심을 먹은 식당에 두고 왔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 오랫동안 썼던 것이어서 정이 푹 들어 있던 손 타월이었는데

너무 낡아서 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고 너무 멀어서 가야 하나 하다가

그 많은 시간 동안 곁에 있던 물건을 남의 손으로 버리는 것은 아니라고

택시를 타고 갔더니 식당 주인이 챙겨 두었다며 주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나도 빨리 이런 정직함을 뼛속까지 믿고 지냈으면 하는데

친지와 뷔페에 가서도 나는 내 가방을 어깨에 메고 음식을 담으러 갔다.

한국에서는 비싼 휴대폰도 자리를 잡는다고 테이블에 둔다고 하는데

난 아직도 그럴 용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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