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어떻게 지내야 한다는 명확한 규칙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시어머니가 계시는 동안은 시어머니의 방식을 따르게 된다. 지방으로 내려온 이후, 같은 지역에 살게 되면서 추석의 모든 것은 더욱 시어머니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작은아들은 멀리 경기도에서 귀성길 정체 속에 꽤 오래 시달렸다. 어느 순간부터는 조카가 아프다는 이유로 시동생만 홀로 내려오는 일이 잦아졌다. 어머니는 연로하시고, 이제 차례도 지겹지만 그 세대에게 이 전통을 끊는 일은 쉽지 않다.
시어머니에게는 네 명의 자녀가 있다. 그중 세 집은 차례를 아예 지내지 않는다.
그리고 장남이자 맏며느리인 나에게, 어머니는 그 차례의 부담을 고스란히 맡기신다.
하지만 그것이 전혀 힘들기만 한 일은 아니다.
차례 음식을 대충 하는 것도 아니고, 평소 우리가 반찬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준비하기 때문에, 끼니를 고민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낫다. 다만 몇 인분을 해야 할지 매번 고민이다.
그런데 시어머니의 방식에서는 우리가 정성껏 차린 차례상이, 늘 차례를 지내지 않는 환갑의 시누이 집으로 보내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우리 집의 차례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매 명절마다 떠올린다.
혼자 내려오는 시동생의 귀성길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올해는 시동생이 사는 지역에 전원주택을 지어두었기에, 그곳에서 추석 명절을 쇠자는 제안이 나왔다. 우리의 명절 규칙은 언제나 “그때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기”였기에, 남편이 승낙하면서 어머니는 졸지에 경기도로 명
절을 보내게 되었다.
연휴가 길어 4남매의 스케줄은 각자의 인생처럼 따로따로 흩어졌다. 한 가족이 모두 모이는 일은 더는 불가능하다.
본래 차례란, 시집간 여자는 출가외인이라 하여 남편 집안의 조상께 예를 올리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일가친척을 만나며 성묘하는 의례였다. 하지만 오늘날 그 의미는 많이 희미해져, 머지않아 옛 관습으로만 남을 것이다.
나는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차례는 생략하고 성묘로 대신하면 어떨까요? 경기도에서 2박 3일을 보내고 다시 내려와 차례상을 차리기엔 너무 힘드실 것 같아요.”
남의 집 차례에 의견을 내는 게 맞는 일인가 싶어 잠시 망설였지만, 싫은 것은 싫은 것이었다.
여자는 장을 보고 음식을 마련하고 조리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맞벌이로 회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출근해서 돈을 버는 일이 집안일보다 더 중요하다.
같이 나눠 먹는 건 의미가 있지만, 싱크대 앞의 노동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만약 그 노동에 가치가 있었다면, 남자들도 서로 앞다투어하려 하지 않았겠는가.
아무튼 명절에 작은아들 집으로 갔는데, 작은며느리가 오랜만에 시댁 식구들을 초대하기 위해 며칠 전부터 준비한 정성이 한눈에 보였다. 손님 치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음식은 정갈했고 맛있었다.
다만 개인의 별장에 초대받은 것이었기에, 조금 불편한 점도 있었다.
이불이 부족해 우리 가족은 잠잘 준비를 따로 해야 했다. 텐트와 침낭을 챙겨갔다.
다행히 별장이 넓어 수리되지 않은 방이 있어 바람은 피할 수 있었다. 나는 머리만 대면 어디서든 잘 자는 편이라 괜찮았지만, 나머지 식구들은 모기와 사투를 벌였다.
정비된 숙소는 별장 주인인 시동생 부부와 어머니가 묵으셨고, 손님인 우리는 수리 중인 방에서 잠을 청했다. 그래도 나는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워낙 야외에서도 잘 자는 편이니까.
하지만 남편은 꽤 실망한 눈치였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은근히 불평했다.
“손님을 초대했으면 편히 머물 수 있게 신경 써야지. 침낭을 챙겨 오라 하질 않나, 모기에 물려 한숨도 못 잤잖아. 주인들은 좋은 방에서 자고 손님은 뒷전이라니, 최악의 명절이었어.”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주인은 손님이 떠난 뒤 청소와 빨래로 고생할 것이고, 차라리 돈이 들더라도 모두가 편히 쉴 수 있는 펜션이나 리조트를 잡는 게 낫겠다 싶었다. 겉으론 하하 호호 웃었지만, 그 안엔 불편함이 가득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시동생은 지방으로 혼자 내려가 명절을 보내기 싫어서 내린 특단의 조치였을 것이다.
차례의 부담이 없는 사람들은 명절이 그저 ‘잘 먹고 쉬는 날’이지만, 나는 여전히 성묘와 차례 중 무엇을 해야 할지, 어머니의 말씀이 있기 전까지 고민해야 했다.
누가 이 ‘명절 이후의 숙제’를 생각해 보았을까.
결국 우리는 2박 3일을 보내고, 어머니는 시누이 집으로 가시며 올해 차례는 생략하고 성묘로 대신하기로 했다. 장장 8시간을 달려 집에 돌아온 우리 가족은 넉다운되어 쓰러졌고, 다음 날 새벽같이 일어나 다시 두메산골의 산소로 향했다. 성묘의 대장정이었다.
시어머니의 네 남매 중 차례를 지내는 사람은 오직 우리뿐이다.
나머지 남매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자식들도 잘 나가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차례를 지내지 않고, 추석의 근원을 묻지 않는 그들은 모두 부자이고 성공했다.
반면 근원을 쫓으며 의미를 생각하는 나는 언제나 그들보다 가난하다.
명절마다 이 대비는 선명하다.
어머니의 팔자대로, 운명대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그런 운명론자 앞에서 나는 더욱 힘이 빠진다.
차례란, 종교적 의식이라기보다 돌아가신 조상님을 잠시 떠올리는 시간이며, 공식적인 휴식 속에 만나기 힘든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사회적 연결의 장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명절을 ‘개인의 연휴’로 받아들이며,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을 불편해한다. 나는 그런 현실을 이해한다. 나 역시 여전히 그것을 숙제로 안고 산다.
한때 나도 명절이 너무 싫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고 보니, 이제는 시어머니의 시선으로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명절에 우리 가족이 조상을 찾아뵙고 즐겁게 보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명절을 좋은 기억으로 남길 수 있을까.”
그게 내게 남겨진 숙제다.
명절의 형식—차례를 지내느냐 마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이 함께 모여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작은며느리의 집에서 느낀 불편함도, 남편의 실망도 결국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본질을 향하고 있다.
어쩌면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각 가정이 스스로 답해야 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추석은, 우리 가족이 어떤 방식으로 조상을 기억하고 함께 할지를 정하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그때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는” 시어머니의 규칙처럼 각각 집마다 방식이 다양하고 정해져 있지 않다.
성묘로 차례를 대신하자는 내 제안이나, 모두가 편히 쉴 수 있는 펜션을 선택하자는 생각은 결국 형식보다 본질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
내가 하는 이 고민 자체가,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명절을 물려주는 일 아닐까.
이 시대에 요구하는 명절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어야 하고, 부담이 아니라 기쁨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질문하고 고민하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추석이란, 정해진 답이 없다.
각자의 가정이,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다시 써야 할 ‘새로운 추석’ 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