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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의 남편이 울었다.

즐거운 추석 2탄. 그냥 지나가지 않는 연휴

by 바크


오십이 넘은 남편이 이번 명절에 유독 예민해 있었다.
항상 허허 웃으며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던 남편이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인지 갱년기 증상처럼 우울하고 무기력해지고 있었다.

더구나 담배까지 끊은 지 10달이 되어가는 터라 스트레스를 풀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명절에 며느리들이 명절증후군을 겪는다는 말을 본인은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 명절은 유독 남편에게 심적으로 힘들었다.

장남이라는 무게를 스스로 짊어지고, 남동생의 집에서 명절을 쇠고 다시 내려와 산소를 가는 일이 갑갑했다고 한다. 가족들을 위해 예민하면 안 되는데, 자신은 자꾸 이상해지고 있다고 했다.


동생네가 불편했고, 편하게 있고 싶었는데 재수 씨가 꽃게를 씻으라고 시키는 통에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고 한다. 웃으며 자신의 감정을 숨기느라 애를 먹었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결국 우리 가족만 산소를 갔다.
작년부터 차례를 지내지 않았기에 누군가는 가야 하지 않았을까.
산소 가는 길도 멀고 험난해서 거의 하루를 다 써야 했다.



남편은 그 뒤로 갈치 낚시를 갔다.
답답한 마음을 뒤로하고, 마음을 진정시킬 생각으로.

남편은 처갓집 방문을 마음 가는 대로 했기 때문에 나는 크게 불만을 품지 않았다. 오히려 남편이 오지 않는 것이 우리 친정집이 더 편안할 수도 있다. 처가에 가면 남편은 마치 벽에 놓인 장롱처럼 붙박이로만 있기 때문에 부모님은 남편이 지루할까 봐 계속 이야기를 하게 된다. 두 시간쯤 흐르면 다리에 쥐가 나기 시작한다.
그 쯤 해서 나는 남편을 돌려보내거나, 남편의 체면을 생각해서 같이 나온다.



그런데 올해는 남편이 갈치잡이를 간다고 하니, 더욱 맘 편하게 부모님과 식사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치는 전날 채비를 하여 새벽에 떠나 배를 타고 먼 섬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약 이틀이 소요된다.

잠을 자지 않고 밤새 낚시를 하고, 싱싱하게 갓 잡은 갈치를 큰 아이스박스에 들고 올 남편을 생각하며 나의 일정도 조절했다. 갈치 손질을 해서 소분해 냉동실에 넣어야 했기 때문에 남편이 많이 잡아오기를 기다렸다.



갈치를 잡고 남편은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자랑을 했다.
시어머니는 해산물을 좋아하셔서 두 명의 누나들과 함께 한달음에 시어머니 집에 모이기로 했다. 나는 개인 사정으로 합류하지 못했고, 잡은 갈치는 전부 시누이들과 시어머니에게 주고 빈손으로 오라고 했다.



그렇게 남편은 시어머니와 갈치를 맛있게 먹고 집에 오는 줄 알았는데, 밤이 깊도록 오질 않았다. 알고 보니 누나들과 엄마와 크게 싸웠다는 것이다.


동생 집에 갔다가 돌아와 산소를 다녀오니 힘들더라고 말했더니,
누나가 대뜸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다. 네가 좋아서 간 거지, 누가 가라고 했냐?” 하고 받아쳤다고 한다.
그러면서 “네 마누라가 힘들다고 하디?” 하며 그 화살이 나에게로 향했다고 한다.

남편은 세 명의 여자들에게 따발총을 맞아가며 당황했다. 급기야 누나들은 섭섭하다며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남편은 잠을 못 자고 갈치를 잡아오느라 예민해져서 그런 것 같다며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누나들은 “그래” 하고 대답하자마자 자신들의 입장만 계속 이야기했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작은누나가 빗발치게 전화를 해서 또 밖에서 몇 시간을 싸웠다.

누나가 서운했던 점을 줄줄 읊어대니, 남편도 서운한 이야기들을 쏟아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누나는 “혈육이 가장 소중하더라” 하면서 올케를 흉보기 시작했다.


남편은 말했다.
“이제는 더 이상 내 앞에서 우리 이야기를 하는 중에 아내 이야기를 하지 말아 달라.”


누나가 흥분을 하며 “네 부인이 나를 얼마나 무시하는지 아냐”라며 나의 무례함을 따지고 들었다고 한다.


남편은 나와 25년을 함께 했다.
누나와 지냈던 기억보다 아내와 함께한 시간이 더 길었기에, 이제는 아내를 존중하기로 결심했었다고 한다. 결혼생활 내내 은연중 아내에 대한 흉을 보는 누나를 보며 참아왔지만, 오십이 넘어서는 더는 견딜 수 없어서 그만 자신의 생각을 말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누나가 입에 거품을 물고 화를 낼 줄은 몰랐다고 한다.
엄마와 두 누나가 남편 앞에서 펑펑 울며 섭섭하다는 둥 하니, 남편은 그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런 일이 있는지도 모른 채 남편이 왜 안 오는지 걱정이 되었다. 밤새 낚시를 했다면 체력이 바닥일 것이고, 몸이 피곤할 텐데 건강이 걱정되었다.

남편을 빨리 재울 생각에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남편이 얼굴살이 쪽 빠진 모습으로 들어오자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누나들과 싸우느라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했다. 낚시 가서 싱싱한 갈치를 들고 맛있게 먹고 즐겁게 지낼 명절 연휴에, 배는 부르고 시간이 남아도니 남편을 집으로 돌려보낼 생각은 하지 않고 계속 훈계하려 했다는 말을 들으니 나도 화가 났다.



내 남편이고, 나와 평생 살 사람인데. 사랑하는 혈육이라면서 남동생이 피곤하고 예민하다는 걸 왜 알면서도 모른 체할까. 남편이 피곤하면 집에 가서 자고, 다음에 정신 멀쩡할 때 대화를 하자 하면 좋았을 텐데. 참 아쉬웠다. 사람은 자기 입장대로 혈육의 정을 해석하는 것 같다.



남편은 나에게 인정받고 싶어 갈치를 잡아 나를 보여주려 했지만, 어머니와 누나들이 먹고 싶다고 하니 그쪽으로 방향을 튼 것인데, 본인이 실수를 한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며 사람들의 모순을 짚어주었다. (나도 모순덩어리 인간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자.”

남편은 “내가 예민했나 봐”라며 자책하면서도, 누나들과 어머니의 말에 너무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속으로 나는 이 상황이 남편에게 미안했지만, 너무 코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시누이들이 내 흉을 보건 말건, 그건 중요치 않다.
본래 자존감은 자기가 세워야 하는데, 손아랫 올케에게 무엇이 서운했는지 나를 통해 자존감을 세우려는 그녀들을 생각하면 솔직히 미안하지만, 전혀 해주고 싶지 않다.


시누이들은 자신이 옳다는 확신 속에서 누군가를 악인으로 만들어야 한다.
무조건 내가 악인이어야 그들의 뇌의 맥락에서 타당한 이유가 생긴다. 나와 직접 대화를 나눌 용기는 없으면서, 남편에게 쪼르르 “네 아내가 나를 무시한다”며 검증되지 않은 감정을 쏟아낸다.


남편으로서는 25년을 지켜온 아내가 그런 사람이 아님을 이제야 확신하게 된 것이다. 나는 남편을 달래며 모두 조금만 틀어져도 얼굴 안보겠다 갈라서지만 우리 가족은 그럼에도 잘 모이고 화목한 편이라며 독특한 성격들이지만 본심은 선한 사람들이다고 진정시켜 주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남편이 나와의 관계를 더 확고히 하게 된 건, 그나마 긍정적인 변화다.


누나는 “올케는 안 볼 거야”라 했고, 남편은 “매형 보기 싫다고 말하면 누나가 기분이 좋겠냐”라고 응수했다.
그러자 누나는 “우리 남편은 착한 사람이야” 하며 남편을 더욱 어이없게 만들었다.


누나는 현재 직장에서 높은 위치에 있고, 남편은 사업가로 돈을 쓸어 모으며 산다.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다들 돈도 많고 잘 살면서 왜 그렇게 한가로이 감정싸움을 하냐고.” 나는 내일 할 일, 스케줄, 먹고살 일 때문에 그런 감정에 싸울 겨를이 없다.

남편도 어지간히 시간이 남아돌고, 연휴가 길다 보니 누나들과 쓸데없는 소모전을 한 것 같다.

그렇게 남은 연휴 동안 남편은 남들과 대화를 나누다가도 눈물이 나오고, 나와 대화를 나누다가도 울었다.

“내가 왜 이렇게 눈물이 나오는지 모르겠어. 갱년기인가 봐.” 내가 볼 땐, 서운한 감정이 컸던 것 같다.

50대가 되면서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겪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거기에 금연까지 겹치면 감정 조절이 더 어려워진다.

명절의 장남으로서 느끼는 책임감, 동생 집에서의 불편함, 산소 방문의 부담. 이 모든 게 쌓였는데 정작 가족들에게서 위로 한마디 듣지 못한 상실감이 컸던 것이다.


남편은 그냥 따뜻한 말 한마디를 듣고 싶었다. “산소 다녀오느라 피곤했겠구나.”라는 아주 짧은 한마디조차 사람을 살릴 수 있고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다. 또한 처세술에 가장 돈 안드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자기 핏줄이라는 사람에게서 돌아온 말은
“나도 힘들어, 너만 힘드냐?”였다. 밤새 잡아온 갈치를 맛있게 먹고서는 집에 돌려보내 주지 않았으면서,

누구보다 가족, 혈육이 더 소중하다고 말하는 모순. 남편은 그 모순 속에서 깊은 서운함을 느꼈다.


“혈육이 가장 소중하다”라고 말하면서 정작 피곤한 동생을 집에 보내주지 않고 계속 훈계한 상황.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모순이다. 진정으로 소중하다면, 상대의 상태를 먼저 살폈어야 했다. ktx 타고 봐도 남편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왜 모를까? 모두 다 자기감정에 치우쳐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채근담을 읽으며 남편은 마음을 잡으려 노력 중이다.


나는 쉰 살의 남자를 모르겠다.
“내가 갱년기 오면 당신은 나 챙겨줄 거야?” 물어봤더니, 그는 “혼자 이겨내 봐”란다.


소리 내어 크게 웃었다.
참으로 이 좋은 명절에, 다들 왜 이렇게 시간 아깝게 싸우는지 모르겠다.



뭣이 중요한디.
남 흉보기에 이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 이 남매들의 문제를 점검해보건데

각자는 독립된 인격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관계의 벽이 있는데, 우리는 서로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그 경계를 아무렇지 않게 넘나든다. 그러면서 개인이 숨기고 싶어 하는 곳까지 침범당하게 되는데, 이것은 가족·친구·가까운 지인과도 마찬가지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지켜야 할 선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지켜야 할 선

형제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선


우리는 가깝다고 생각하면서 무례를 범하지 않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타인보다 핏줄이라면서 그 분노의 화살이 타인에게 당연하게 가는 것도 옳지 못하다.
서운한 감정이 들었던 건 상대방에게 그만큼 기대가 컸을 수도 있고, ‘무시받았다’는 느낌도 오해에서 비롯된것은 아닌지. 정말 상처를 받았다면 조심스럽게 되물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과연 ‘선’은 누가 넘는 것인가?


헤르만 헤세가 나이 들어서도 꾸준히 써온 주제, 자아 찾기.
그것은 나를 바로 알면서 외부의 영향에 과도하게 흔들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라는 뜻일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수행자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이라는 것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상대방에게 함부로 대하는지조차 깨닫지 못한다. 또한 자존감을 스스로의 안에서 찾게 됨으로써 확증편향의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 모두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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