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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닙니다.

by 바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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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재능과 조경의 간극


주변에 땅을 사서 귀농하거나 주택을 구입해 마당이 생긴 지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다들 각자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고, 똑똑하며 제법 미적 감각도 있는 이들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사람들의 재능을 'AI 재능'이라고 부른다.


AI 재능이란


AI는 자신이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표준값이나 중간값까지는 잘 수행한다. 빠르게 훑어볼 때 "호오, 그럴듯한데? 제법인데?" 하는 느낌을 준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여기서부터 더 발전시키려 하면 엉망이 되거나, 오히려 처음보다 더 이상해지는 경우가 있다.


디자인 분야에는 분명 "저 사람 센스 대단한데? 손만 대도 장난 아니네" 싶은 일반인들이 넘쳐난다. 축복받은 재능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왜 그 이상을 넘어가지 못할까?


바로 기본기가 전혀 없거나 기본을 아예 모르기 때문이다.


어찌어찌 자신의 감성대로 5초 정도 멋지다는 작품을 만들어내지만, 사람이 머물다 갈 수 있는 공간이나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디자인을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괜히 학과가 있는 게 아니고, 괜히 공부해야 할 것들이 넘쳐나는 게 아니다.


감성만으로는 부족하다


재능 있는 사람들은 기본 개념을 무시하고, 본인이 느끼는 순간의 감성으로만 공간을 디자인한다.


정원에 대해 특히 아쉬운 점이 바로 이것이다.


사람들은 정원을 볼 때 풀, 나무, 초록... 이렇게만 바라본다. 풀은 그냥 풀과 꽃이 있을 것이고, 나무는 큰 나무로 뭉뚱그려 본다.


주택을 구입하고 집을 짓고 인테리어를 하다 보니, 대문은 어떻게 하고 길은 어떻게 만들고 녹지를 어떻게 할지는 맨 마지막으로 밀려난다.


가관이 아닌 현실


그래서 이들의 집에 가면 가관이다.



대문이 없다


사람이 걸어갈 동선조차 없다


대문이 있어도 조경석으로 벽을 채우고 사이사이 관목을 심은 곳에 잡초가 엉켜, 하나의 덤불숲을 이루는데도 이들은 그게 보이지 않는다



식물은 일반인들에게 '초록 그 자체'일뿐이다. 파 하나 심어놓고 알아서 잘 자라거나 물만 주면 된다고 아주 쉽게 생각한다.


어쩌면 가장 억울한 학문이 조경이 아닐까 싶다. 조경학자가 보면 기가 막힐 일이다.


"풀 한 포기 자연스럽게 두는 게 세상 이치"라고 하면서도, 집과 실내 인테리어는 자연스럽게 두지 못하고 시공하고 최대한 미감을 살려 세련된 집을 가꾸고 싶어 하는 것과 대치된다.


나무를 선물하다


어느 날 귀농하는 지인에게 묘목 몇 가지를 가져다주었다. 아무거나 심을 수 있는 게 아니라서, 기후와 토질에 맞게 잘 자랄 수 있는 유실수를 골라서 사다 주었다.


나뭇가지처럼 생긴 나무를 보며 "이게 무슨 막대기냐" 하는 생소한 반응에, 선물 같지도 않았을 것이다.


분명 이 나무들을 어디에 심을지 고심하면 좋겠지만, 집주인이 어련히 알아서 할까.


나는 나무를 잘 심어놓고 물을 정기적으로 줘야 나무가 잘 자란다고 조언했지만,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거 나무는 자연스럽게... 응? 비가 오면 비 오는 대로 맞고, 해가 뜨면 해 뜨는 대로 가만히 두면 지가 알아서 클 거야~"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나무와 잔디, 공원의 꽃과 관목은 모두 지자체의 관리하에 이루어진다. 늘 때때로 단장하기 때문에, 한 번 심어놓으면 그대로 형태를 유지할 거라 생각하지만, 식물도 디자인으로 접근해야 한다.



수형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4계절에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관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모두가 계산되어 있는 공간 디자인임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몇 년 후


아니나 다를까, 몇 년이 지난 후 그 집 마당 한쪽에 2미터 가까이 자란 큰 덤불이 있었다.


"저 지저분한 나무는 뭐예요?"


몇 년 전 내가 선물한 나무가 그렇게 자라서 잡초처럼 무성하게 서 있는 꼴을 보니 가슴 한편이 저릿하게 아파왔다.


집주인은 꽃밭을 가꾸었다며 보여주었다. 마당 한 평 정도 되는 공간에 여러 가지 꽃들이 아무렇게나 우후죽순 자라나 있었다.


그제야 집주인의 시각이 어디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지 알게 되었다.


집주인은 꽃 한 송이 한 송이에 집중했고, 나 같은 조경업에 발을 담근 사람에게는 공간이 우선 보였던 것이다.


아무리 봐도 꽃 한 송이보다 꽃을 둘러싼 경계 없는 공간이 보이며, 이 넓은 땅이 너무도 아깝고 또 아까웠다.


또 다른 집


다른 집도 마찬가지였다.


이 집은 이미 주택 단지로 조성된 오래된 주택을 구입해 들어간 곳이다. 마당엔 주택을 처음 지었을 때부터 있었을 교목들이 울타리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정 가운데엔 수돗가가 있고, 수돗가 옆에는 목련이 심어져 있었다. 옛날 애니메이션 '달려라 하니'에 나오는 하니와 엄마의 추억이 깃든 2층집 앞마당처럼, 대추나무가 아닌 목련 한 그루가 왜 덩그러니 있는지 꽤 레트로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 그 집을 다시 갔을 때:



대문은 새로 교체되어 있었다


겨울 동안 눈이 많이 내려 나무 몇 그루가 눈의 무게를 못 이겨 축 처져 있었다


울타리에는 죽은 나무와 살아있는 나무가 여기저기 섞여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 수돗가와 목련나무 아래, 아주 작은 편백나무가 갑자기 심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려고 침엽수를 놓고 싶었던 모양이었지만, 이 근본 없는 모습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무는 정리해서 살릴 것은 살려놓고, 망가진 수형도 잘 다듬어야 한다. 집의 출입구는 사람의 얼굴인데, 나는 그 집을 방문할 때 너무 아쉬움이 들었다.


보이지 않는 것들


일반인들 중 특히 오류를 범하는 사람들은 그 'AI 정도의 재능' 때문에 자신의 미적 센스에 대한 고집이 보통이 아니다.


정원은 늘 시간이 남으면 하는 맨 마지막 순위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만약 캐나다나 미국을 여행 가면, 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마당을 집의 얼굴로 여긴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풍수지리에도 집 앞이 깔끔하면 좋은 기운이 들어온다고 했다.


풀은 녹색 그 자체가 아니다. 잡초와 관상용 식재로 구분되어 있다.


잡초는 잡초끼리 자라게 두고, 깔끔하게 조성된 공간은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준다.


맺음말


이 어찌 안타깝지 않을 수 있을까.


애매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안타까운 편견들을, 오늘도 조경업에 발을 살짝 담그고 먹고사는 나만 머리 아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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