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돌아보며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람
스무 살의 웃음, 그 뒤에 숨겨진 고생길
팔순의 엄마의 젊은 시절 사진을 내가 가지고 있었고, 운이 좋게 엄마의 사진으로 AI를 이용하여 움직이는 영상을 만들었다. 스무 살의 그녀의 앞날은 고생길이 훤하고 그 길이 어떤 길인지도 모른 채 활짝 웃고 있다. 우리는 그저 먹고살기 바빴고 그저 알아서 자라야 했다. 알아서 사춘기를 겪고 알아서 극복해야 했다. 알아서 시련이 다가오면 이겨내거나 굴복해야 했고, 그러므로 돈이 있는 사람들에게선 왜 저렇게 사는지 한심하게 보는 눈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모른 것이 무지이고 큰 실수가 온다는 것도 경험에 의해서 알았다. 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내가 태어난 이유
내가 태어난 이유에 대해 나는 끊임없이 생각을 했다. 아무리 봐도 어릴 때부터 사는 것이 좀체 재밌거나 행복하거나 즐겁거나 그런 일들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언니와 오빠는 조용했고 엄마는 마치 나가지 않으면 병이 드는 사람처럼 끊임없이 나가서 일했다. 아빠는 한 달에 한두 번 빨랫감만 들고 잠깐 쪽잠만 자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분명 기억나는 것은 나는 새로운 소식들을 들고 항상 엄마에게 미주알고주알 하루 종일 종알종알 댔다. 엄마는 나의 이야기가 신기하고 재밌어하시며 당신과 다른 나를 참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 인생에서 엄마를 사랑한다는 외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그때 이후로 엄마를 완전하게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었을까? 어쩌면 엄마는 나를 통해 당신이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해 대리만족을 느끼시는 걸까? 엄마에게 나는 자부심으로 살아야겠다는 태어난 이유, 삶의 이유를 찾아내었고 그래서 엄마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겪고 알려주며 엄마는 마치 당신의 일인 양 기뻐하셨다.
소리 없이 쌓인 힘
가난하지만 우리는 명절이면 할머니 집에 가고 명절 음식을 먹으며 절기에 맞춰 엄마는 쑥떡, 오곡밥, 송편, 떡국, 시루떡, 동지팥죽 등으로 일 년의 의식을 치러냈다. 우리는 별다른 이벤트가 없어도 절기마다 찾아오는 먹거리 문화로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자랐다. 생일마다 엄마가 미역국을 끓여주는 일은 크게 다가오지 않았지만, 내가 버틸 수 있는 힘이 소리 없이 강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엄마의 해마다 규칙적으로 해왔던 일상 때문일지 모른다. 그렇게 자라오면서 학교를 가고 친구들을 비교하면서 나는 왜 다른가? 우리는 왜 가난하고 쩔쩔매며 없이 사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에게 네가 옳다, 네 생각대로 해보아라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나는 좀 더 똑 부러지게 살 수 있었을까?
결혼과 현실
도망치듯 시집을 간 뒤로 여기가 내 안식처라 생각했을 때 그 생각이 얼마나 오만했을까?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는지도 모르고 나는 지금까지 평생 내 생각을 이해시키려고 얼마나 참고 기다렸는가?
경험에 비추어 남편과 아내가 바라는 점이 있었으니 :
남편의 바람 : 내 아내가 늘씬하고 이뻤으면, 우리 부모님께 효도했으면, 누나들과 잘 지냈으면, 아들,딸을 낳고 혼자 딱 부러지게 잘 키웠으면, 돈까지 벌어다 주었으면… 이 모든 것을 바라지 않는 남자가 어디 있을까?
아내의 바람 : 내 남편이 일정 이상 월급을 밀리지 않고 잘 가져다줬으면, 집에 와서 아이들을 돌봐줬으면, 밥을 차려주면 설거지 정도는 해줬으면, 명절에는 시댁에 이틀만 자게 해 줬으면…
이렇게만 봐도 남편과 아내의 입장은 범위부터 다르다. 남편은 자신의 부모까지 생각해 주는 어진 아내를 원하고, 아내는 내 가정 안에서 자상한 남편을 원하는 것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 그런데 살고 보니, 물론 내 경험 위주지만 서로 이상적인 부부가 없다. 여전히 서로 의견을 나누며 타협하고 혹은 투쟁한다. 끊임없이 우리는 내 맘대로 살 것을 호소하며 때로는 자본과 힘에 눌려 한쪽이 참고서야 이 관계가 아슬아슬하게 연결된다. 그럼에도 부부의 정은 알게 모르게 쌓인다. 미운 정, 고운 정, 애증까지 복합적인 감정으로 쌓이다 보면 결국 늙어가는 서로의 모습을 보게 된다.
부모님을 보며
부모님을 보니 그러하다. 당신들의 삶을 온전히 받아내고 인정한 것이다. 누가 더 희생했는지를 가를 수 없다. 인간이란 본성 때문이다. 깨닫는 사람은 얼마나 될 것인가? 세상은 무지의 사람들을 끌고 가는 1%의 현자들, 성인들, 리더들 때문이라 그들의 영향에서 대세에 따를 뿐이다. 아빠는 태어나면서 어떠한 가정환경에서 그렇게밖에 자라지 못했다. 엄마는 지독한 가난 때문에 먹고사는 것이 삶의 전부인 양 모든 거친 일들을 싸우며 지켜냈다. 엄마는 인간의 본성 즉 먹고 자는 것을 지켜내고자 아마존의 전사처럼 달려왔다. 아빠도 마찬가지이다. 아빠에게 인생은 아빠만의 정글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기에 가족들도 뒷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
인생은 너무 어렵고 답이 보이 지를 않는다. 다만 확실한 것은 오늘 내가 규칙적으로 나갈 데가 있고 하는 일을 꾸준히 한다면 그것대로 잘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팔순 엄마의 스무 살 사진을 보며 생각한다. 고생만 가득했던 그 길을 활짝 웃으며 걸어갔던 엄마.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를 낳고 키워준 엄마. 나 역시 내 방식대로 내 길을 걸어왔고, 지금도 걷고 있다.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랴. 우리는 각자의 정글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남았고, 그 과정에서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거창한 말이나 이벤트가 아니라, 절기마다 만들어주던 떡, 생일마다 끓여주던 미역국처럼 소리 없이 쌓인 일상들이 우리를 지탱해 주었다. 이제는 안다. 완벽한 삶도, 이상적인 관계도 없다는 것을.
다만 오늘을 꾸준히 살아가고, 건강할 때 배우고, 서로의 정을 쌓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이자 가장 중요한 것임을.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갈 곳이 있고, 할 일이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