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하라리
유발 하라리의 방대한 사유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나는 아직 더 멀리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의 책들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사피엔스』로부터 시작해 『호모 데우스』, 그리고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으로 이어지는 이 세 권은 인류의 과거, 미래, 그리고 현재를 각각 조망한다. 특히 『호모 데우스』가 인류의 진화와 미래 사회를 거시적 차원에서 다뤘다면,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그 예측을 바탕으로 지금 우리가 고민하고 대비해야 할 현실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정치, 경제, 생명공학, 윤리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는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깨달았다.
기술의 도구로 사라지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면, 최소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주체성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호모 데우스』에서 하라리는 기업과 생명공학이 결합해 인간이 신적 존재로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 미래는 모두에게 열려 있지 않다. 초월적 존재가 되는 건 선택받은 일부, 즉 상위 1%의 몫일 수 있다.
『21가지 제언』은 이 예측을 구체화하며,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 인류가 맞이할 위험을 경고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개인에게 돌린다.
그의 말처럼, 정답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할 딜레마는 분명히 존재한다.
예를 들어보자.
완전 자율주행을 실현한 테슬라가 도로 위를 달린다. 이 차량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사고율을 획기적으로 줄인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작스레 아이가 도로로 뛰어든다.
선택 A: 아이를 치고 차주를 살린다.
선택 B: 아이를 살리기 위해 중앙선을 넘어 다른 차량과 충돌한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은 ‘아이를 살려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이 차량을 구매할 땐 ‘운전자 보호’ 옵션을 선택한다고 한다. 결국 기업은 윤리적 선택의 무게를 소비자에게 넘긴다.
테슬라는 이런 선택지를 제공한다.
긴급 상황 시 운전자 보호
긴급 상황 시 보행자 보호
이제는 생명을 선택하는 윤리마저도 ‘소비자 선택사항’이 되었다.
하라리는 이런 질문을 통해 우리가 어떤 사회로 나아가는지 냉정하게 직시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모든 흐름의 끝에는 정보의 독점, 생명공학의 비약적 발전, 그리고 인간 종의 분화라는 거대한 전환점이 놓여 있다.
하라리는 말한다.
“21세기의 변화는 더 이상 서서히 오지 않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미래가 현재를 집어삼킨다.”
실제로 우리도 그 흐름을 목격하고 있다.
얼마 전 트위터에서 본 이야기다.
한 노인이 구직활동을 위해 워크넷에 접속하려 했지만, 인증 절차에서부터 막혀버렸다. 이후의 절차도 이메일, 로그인, 속도 경쟁이 이어지며 결국 디지털 접근 자체가 생존의 문턱이 되어버린 현실이 드러났다.
청소년기에는 도전과 흡입력이 있지만, 중년 이후에는 익숙한 것을 지키려 한다.
이는 뇌인지과학으로도 설명된다. 나이가 들수록 해마 기능이 떨어지고, 새로운 뉴런 연결이 어렵고, 기존의 세계관에 머무르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이대로 가면 우리는 기술 사회의 ‘멍청한 화석’이 될 수도 있다.
앞으로는 낯섦이 새로운 일상이 된다.
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고정된 지식이 아니라, 정신적 탄력성과 감정적 균형감이다. 기존의 익숙함을 버리고, 자신이 모르던 세계를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야말로 21세기의 생존 기술이다. 하지만 이것은 쉽지 않다. 정답이 정해진 수학공식이 아니다.
“미지의 것을 포용하라”는 말은, 획일적인 교육을 받아온 우리에게는 근본적인 도전이다. 그리고 그 교육을 받은 교사들 또한 이 새로운 교육을 가르치기 어렵다.
그래서 하라리는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남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기술에 기대거나, 타인의 경험에만 의존한다면 우리는 결국 기술의 인질로 전락하게 된다.
지금 필요한 건 지식이 아니라 자기 인식이다.
『21가지 제언』은 이 질문 앞에서 ‘정답’을 내놓지 않는다.
대신 우리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이 문을 열어보라고 제안한다.
그리고 그 문 너머에는, 아마도 더 나은 인간, 더 나은 공동체, 더 나은 세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코로나 이전에 출간되었지만, 지금 우리의 삶을 통찰하는 데 있어 놀라울 만큼 정확하다.
다음 책 『넥서스』에서 하라리가 어떤 새로운 질문을 던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비루한 나의 독서일기지만 그의 엄청난 깊은 뜻을 다 담을 수가 없다. 책에 있는 내용을 눈을 감고 어떻게 써야 할지 나의 감상위주로 쓰다 보니 책의 일부 내용만 부각된 것 같다. 스포는 아니고 전체 맥락중에 극히 일부분을 가장 인상깊게 본 것이라 자유자재로 썼다.
모두들 꼭 읽어보세요.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