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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티카카 Nov 17. 2021

선수 출신은 다르다

어쨌든, 수영 16

동네 가까운 수영장에서 수영을 오래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동네 사람들을 조금씩 알게 된다. 정이 많고 좋은 사람들도 있지만, 과한 관심과 함께 말이 많은 사람들도 있다. 그럴 때는 생각보다 내가 사는 동네가 좁다고 느껴진다. 같은 동네에 살고,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이나 학교가 비슷하거나 무슨 수업들을 듣다 보면 회원 중에 아이 친구의 엄마들도 종종 만난다. 움직이는 동선이 비슷하거나 집이 가깝거나 뭔가 하나가 겹치게 되면, 생각보다 자주 마주치곤 한다.


같이 수영을 하다가 동네에서 마주치면, 한두 번씩 인사를 나누기 시작하고, 커피나 한 잔 마시자고 하다가, 밥이나 한 번 먹을까요? 하다가, 저녁에 술이나 한 잔 합시다! 하면서 만나는 시간이 많아지면 조금씩 더 친해진다. 물론 사람들마다 친해지는 계기나 상황은 각각 다르다.


수영을 좋아하는 사람은 회사 때문에 혹은 이사를 해도 어떻게든 시간을 옮겨서라도 수영을 계속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반을 옮긴 사람들도 간혹 자유수영에서 만나곤 한다. 각자 자신의 일을 하면서 수영을 꾸준히 한다. 오전 수업은 여성 전용이라 그런지 유독 아이와 관련하거나 다른 일들과 관련해 소문과 말들이 더 돌기도 한다.


한 레인에서 초보로 다 같이 수영을 시작하면 괜찮지만, 수영을 그만뒀다가 다시 하는 경우에는 기존의 수영반 사람들의 텃새가 장난이 아니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물론 전혀 없는 곳도 있다). 수영을 잘해서 앞에 서도 문제, 못해서 맨 뒤에 서도 문제다. 수영을 하다가 앞사람의 발을 잡으면 발을 잡는다고 뭐라고 하고, 밀려서 천천히 가면 뒤가 더 밀린다는 말들을 들으면 괴롭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결국 수영을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


신입으로 시작한 신규반의 사람들은 꾸준히 수영을 하다 보면 조금씩 친해지게 된다. 물론 몇 년이 지나면 신규 반에서 같이 수영하는 사람이 20명이었다고 하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그때까지 수영하는 사람은 몇 남지 않는다. 오랫동안 같이 수영하는 멤버들끼리 친해질 수밖에 없다.  


수영 경력이 오래된 사람들은 선생님에 대한 정보도 빠르고, 서로 공유한다. 새로운 선생님이 잘 가르친다고 하면 반을 옮겨 수업을 듣기도 하고, 가르치는 선생님이 못 가르친다고 느끼면, 회원들이 빠져서 반이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반에 회원들이 줄어들면 기존에 있는 다른 반과 합쳐지고 그 레인에 신입반을 개설한다.


원래 운동을 듣던 반에서 1년 반 정도 수영을 하다가 시간대를 옮겨서 반을 바꿨을 때는 처음에 적응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선생님이 나를 젊은 사람(?)이라 앞쪽으로 내 자리를 정해준 것이 문제였다. 맨 뒤에서 회원들에게 젊은 사람이니 잘하겠지 하며, 뒤쪽에서부터 순차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앞쪽으로 가라고 양보를 받으며 조금씩 앞으로 속도에 맞게 적당히 자리를 잡았어야 했다. 이 반의 기본 룰을 의도하지 않게 선생님도 나도 무시하게 된 것이다. 더 수영을 잘하는 반으로 넘어가라고 해서 막상 마스터즈 반으로 수업을 옮기면 내가 설 자리를 내주지 않아 맨 뒤에서 쫓김을 받으며 수영을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럴 때는 반을 옮기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1년 반 정도를 그 반에서 그만두지 않고 버티면서 수영하던 어느 날, 황당한 일이 생겼다. 오리발 없이 이십 대처럼 보이는 새로운 얼굴의 젊은 사람이 수영을 하러 왔다. 지금껏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회원 분들이 그 새로운 사람에게는 2번 자리를 내준 거다. 선생님이 자리를 지정해준 것도 아니고, 그 회원이 잘한다고 판단하고는 앞쪽으로 바로 보낸 것이다. 우와, 1년 6개월 동안 열심히 뒤에서 눈치 보며 수영을 한 건 중요하지 않구나. 아, 20대처럼 젊고 운동을 잘하면 앞자리에 설 수 있구나(앞자리에 서고 싶은 욕심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40대인 나는 꿈도 꾸지 말아야지 라고 깨달았던 적이 있다.


수영은 배려의 운동이다. 자기보다 못하는 사람이 자기보다 앞쪽에 서도 속도를 내지 않고 부딪치지 않게 조절하면서 가야 한다. 천천히 팔을 저어 앞으로 가면서, 발차기는 하지 않는다. 발차기를 하게 되면 앞사람의 발을 잡게 될 테니까. 애매한 위치에 서서 운동을 하게 되면, 막힌다고 앞지를 수도 없고, 뒤쪽에 선 사람이 쫓아오니까 내 속도대로 갈 수도 없어서, 페이스에 말려서 운동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앞뒤 사람들의 속도에 맞게 수영을 하는 일도 결코 쉬운 게 아니다.


레인의 1번이 되면 앞사람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만, 뒷사람들의 속도를 살피면서 수영해야 한다. 빨리 혼자만 앞서 가도, 뒷사람들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 속도대로 천천히 가도 문제다. 1번이 천천히 가면 뒤에선 사람들이 운동이 되지 않는다고 난리, 1번이 빨리 가면 너무 빨리 가서 쫓아가며 운동하기 어렵다고 난리, 이래도 저래도 온통 난리부르스다.


1번은 항상 부담감 100배다. 빨리 가도 부담, 천천히 가도 부담. 1번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강습반의 분위기가 바뀐다. 1번은 선생님의 말도 잘 알아들어야 한다. 어떤 것을 중심으로 수업하는지도 주의 깊게 들어야 하고, 어떤 영법으로 몇 바퀴씩 돌아야 하는지도 기억하면서 운동을 해야 한다. 내 뒤의 사람들과 레인의 맨 마지막 사람들이 밀리지 않게 속도도 조절해야 한다. 결석을 자주 해도 안 된다. 1번이 수영하는 사람들의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수영반 사람들끼리 친목 모임을 가지면 1번이 연락하고, 총무도 한다. 1번은 운동 잘하는 젊은 사람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1번은 어렵고, 다들 부담스러워한다. 1번에 욕심을 내는 사람들도 있다. 1번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수영이 달라지니, 분위기를 조성하는 중요한 사람이 된다. 잘해서 1번인 경우도 있지만, 거의 빠지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1번이 자주 빠져서 2번이나 3번이 1번이 되기도 한다. 혹 실력이 좋아져서 앞에 선 사람들이 옆반으로 반을 옮기게 되면 갑자기 자기가 하던 반에서 1번이 되는 경우도 있다.


‘선출’인 1번도 있다. 선수 출신의 1번은 수영하는 게 다르다. 팔 동작도, 물 잡이도, 발 동작도, 모두 다르다. 선수 출신의 수영을 보면 ‘와’ 하는 소리를 저절로 나온다. 25미터를 양팔 접영 몇 번 만에 가볍게 가면 입이 떡 하고 벌어진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수영을 배워야 했나 보다. 어린아이 때 잘 배운 사람이 커서 수영을 쉬다가, 다시 수영해도 수영의 감각은 남아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자전거처럼. 어릴 때 수영 배운 사람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 바닷가에서 아빠한테 헤드업 평영을 배운 게 내 수영의 전부였다. 일곱 살인가 여덟 살 때 바다의 짠물을 엄청 먹으면서 배운 기억이 있다. 마흔 살쯤 처음으로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수영이 좋다. 아빠는 수영 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고, 계곡에서 바닷가에서 스스로 터득한 개구리헤엄만 했다. 아빠가 어렸을 때는 계곡이나 바닷가에서 물놀이를 많이 했기 때문에 '음파' 이런 거 하지 않고도 스스로 수영을 알음알음 터득한 것이다.


워낙 헤엄을 잘 쳐서 ‘물개’라고 불렸다는, 어떤 물에 빠뜨려도 수영으로 잘 빠져나왔다는 아빠. 이제는 나이가 많아져 물속에서 뜨지도 않는다고 한다. 수영은커녕 물속에서 걷기도 어려운 상태. 일흔 살이 넘은 아빠는, 젊을 때 고생을 많이 한 아빠는, 몸을 많이 썼기에 이곳저곳이 다 고장이다. 특히 다리가. 아파서 걷기가 어렵다고, 동네 수영장에 가서 수영을 배우고 싶다고 하셨다. 수영보다는 물속에서 걷는 게 다리에 좋다는 얘기를 듣고는 걷기라도 제대로 하고 싶다고. 


아빠가 사시는 곳의 주변 수영장을 검색했다. 등록 방법부터 수영장 이용 안내와 수영장의 규칙도 찬찬히 설명해드려야 한다. 나이가 드신 후 새로운 것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다. 빨리빨리 바뀌는 스마트한 상황 때문에 아빠한테 하나씩 알려드리고 반복하지 않으면 따라 하기가 어렵다(2G 폰을 쓰고 전화만 쓰신다. 문자 메시지 삭제도 어려워하신다). 혼자서도 능숙하게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몇 번 같이 가야겠다. 그곳에서 나는 수영해야지. 아빠는 걷고, 나는 수영하고. 이걸 꿈꿨으나, 코로나로 거의 시작도 못했다. 언제쯤 가능할까? 아빠와 수영장에 함께 가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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