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수영 20
신규반으로 수영을 시작했기 때문에 수영을 다니면서 ‘수영장 텃새’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 신규반의 구성원 모두가 수영을 처음 배우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래전에 수영을 하다가 그만둔 사람도 있고, 평영과 접영까지 배웠으나 다 잊어버려서 다시 배우러 온 사람들, 나처럼 한 번도 수영을 배워본 적도 없고 음파도 할 줄 모르는 사람들, 물이 무섭지만 수영은 해보고 싶어서 온 사람들로 제각각 섞여 있었다.
신규반의 1번부터 앞쪽에 서는 사람들은 수영을 배운 경험이 있고, 다른 사람들보다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수영을 배워본 적 없는 나는 맨 끝에 가서 섰다. 처음 배우는 음파도 어렵고, 태생적으로 물에 잘 뜨는 가벼운 몸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수영을 하다 알게 된 사실은, (사람마다 수영하는 스타일은 다 다르지만) 나는 뒤에서 누가 쫓아오면 숨 조절이 안 되어서 수영을 계속할 수 없는 스타일이었다. 산을 올라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내 뒤를 따라온다고 생각하면 신경이 쓰여 산을 제대로 편하게 오를 수 없는 타입이어서, 늘 맨 뒤에 서서 내 속도대로 선두와 앞선 사람들을 따라가곤 했다. 그렇기에 수영에서도 천천히 맨 뒤에 서서 조금씩 앞사람을 따라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뒤쪽에서 같이 수영하는 사람들과 인사는 주고받곤 했지만, 1년 후에는 우리 반에 수영을 계속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회원이 줄어 결국 반이 없어지고, 같은 시간대의 마스터즈반이랑 합쳐진다고 했다. 분명 난 수영 자세를 교정하는 반에 있었는데, 상급반도 아니고 마스터반이라니(보통 신규-영법 교정-상급-마스터즈-실버로 구성). ㅜㅜ 주 2회는 그 시간밖에 수영을 할 수 없었기에 마스터즈반으로 가서 수영을 계속 배우기로 했다. 반도 바뀌고 선생님도 바뀌면서 함께 수영하는 친구들과도 뿔뿔이 흩어졌다. 새로운 반으로 옮기고는 누구나 그렇듯이 맨 처음엔 적응이 무척 어려웠다. 심지어 그 반은 10년 이상 같이 수영하는 사람들로 이뤄진 반이었고, 똑같은 모양의 수모를 맞춰 쓰고 수영을 하는 반이었다. 각자 자기 자리가 정해져 있었고, 오랫동안 함께 수영한 만큼 친한 듯했다.
그 이후 2년 정도 그 반에서 수영을 했음에도, 아직도 그 반에 적응하지 못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수영을 가지 않아야 하지만, 평일에 ‘하루라도 수영을 쉬면 입에 가시가 돋친다(잉?)’라는 패러디 명언을 기억하며, 뒤에 서서 수영하려고 해도 주어진 내 자리를 지켜야 했고, 앞으로도 뒤로도 자리를 바꿀 수 없었다.
주 3회 같이 수영하는 상급반 사람들은 거의 얼굴을 익혀서인지, 큰 문제와 다툼 없이 텃새 없이 편하게 수영하는 반도 있구나 생각하며 좋은 반에서 수영하는구나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같은 반 뒤쪽에 서서 수영하는 회원들은 그 나름대로 역시 자리 때문에 텃세를 느꼈다고 했다. 내가 그 자리에 없어서 알지 못했던 거였다. 빨리 가지 않으면서 절대 앞으로 가라고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가끔 어쩔 수 없이 속도가 나서 다리를 치거나 바짝 붙어가면, 갑자기 일어서서 돌아보고는 정색하고 간격을 두고 오라고 말한다고 했다. 그러면 스트레스가 많이 쌓일 것 같다.
수영은 과연 뭘까?라는 생각이 든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하는 운동이 아닐까? 왜 그렇게 자리와 욕심 때문에 신경전을 벌이고 스트레스를 받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각자 삶이 다르듯 수영을 하는 스타일도 다른 거겠지, 그러려니 하고 수영한다. 진짜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지만, 수영장에서 싸움이 나면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할 수 없기에, 혹시나 누군가 개입하면 더 크게 사건이 될까 봐 대부분 그냥 참고 조용히 넘어갈 때도 있다. 말을 보탰다가는 더 사달이 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수영장에 적응하는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사람마다 다를 것 같다. 한두 번 수업을 해보고 내 수준이 그 반의 수영 진도와 맞지 않아 재빨리 반을 바꾸기도 하고, 선생님이 내가 원하는 스타일대로 가르쳐주지 않아 반을 옮기고, 열심히 하려고 반을 옮겼더니 텃세가 심해 그만두기도 한다. 그것과 상관없이 자신이 하던 반에서 선생님이 바뀌어도 받아들이면서 하루하루 자신의 수영을 하기도 한다. 자신의 수영 실력을 늘리는 데 중점을 두고 수영하는 사람들은 주변의 상황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선생님을 따라 반을 옮기기도 하고 친구들을 따라 다른 반으로 가기도 한다. 수영할 때 앞뒤에 너무 이상한 사람(?)만 서지 않는다면, 대충 적응하며 지낸다. 오랫동안 앞뒤에 서면서도 말은 안 섞고 인사만 하는 사람도 있고, 인사를 무시하거나 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친해져서 수영장 밖에서도 만나 친구가 되는 경우도 있다.
수영이라는 운동이 신기한 게 혼자 하는 운동이지만 혼자 할 수 없는 운동이기도 하다. 일명 ‘수태기’라는 수영 권태기가 오면 수영을 오래 한 사람도, 수영을 잘하는 사람도 수영장에 가기 싫어진다. 계속 안 되는 자세를 지적받거나 선생님이 바뀌어서, 교정 방법이 달라져서 수영이 잘 안 된다고 느끼면 수영장에 가기 싫어진다. 칭찬을 듣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지적만 계속 받아도 마찬가지다. 특별히 안 되는 어떤 자세의 교정을 원하는 회원들도 있다. 선생님이 지적을 하지 않는 경우는 잘하는 경우이거나 교정이 힘든 경우이다. 지적을 하지 않는 선생님에게는 어떤 것을 고쳐야 하는지 물어보는 회원들도 있다.
수영장에 가기 싫어진다는 거, 수영이 힘들다는 거, 수영이 재미가 없다는 거, 물을 잘 타지 못하는 거. 이런저런 '수태기'의 신호. 그때는 새로운 장비 등을 사서 수영장에 가고 싶게 만들거나 같이 수영하는 사람이 수업에 빠지지 말라고 한다. 사람의 심리라는 게 이상하게도 한 번 수영을 빠지면 두 번째도 빠지게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되고 반복되면... 결국 수영을 그만둔다.
수영을 매일 하는 습관으로 만들 필요도 있다. 월수금, 이렇게 주 3일만 하거나 화목, 주 2일 하다 보면 가끔 요일을 착각하기도 하고, 오리발을 가져가는 날인지 아닌지도 헷갈리게 되고, 수업하는 날인데도 요일을 착각하고 가지 않는 날도 생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수영을 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되면 당연하게 수영을 가야지 하고 습관적으로 준비물을 챙겨 나간다. 준비물을 빼놓고 오는 경우도 간혹 있는데, 그럴 때면 아는 사람들에게 빌려서 수업을 듣기도 한다. 수경, 수모, 수영복만 있으면 되니까. 세 가지를 다 빌려하는 경우도 있다. 수영복 사이즈만 맞으면 된다.
코로나 이후 거의 2년 만에 시작한 수영은 힘들었다. 발차기가 되지 않았고 어깨 롤링도 잘 되지 않았다. 완전 신규반으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오랫동안 수영을 쉬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장 힘든 건 기본인 자유형이 잘 나가지 않는다는 거였다. ㅠㅠ 자유형을 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오른쪽 호흡하며 팔을 돌리고, 발을 차며 앞으로 빨리 나가기도 어려운데, 선생님이 시켜서 왼쪽 호흡하며 자유형을 했더니, 거기서부터 바로 멘붕이 왔다. 제대로 숨을 쉬지도 못하고, 고개를 잘 돌리지 못해 물도 먹고 팔도 제멋대로 뻗고 난리도 아니었다. 뒷사람이 내 발에 채일 정도로 가까이 왔다는 사실. 내가 전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