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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일 Jan 23. 2024

오늘도 마음을 그립니다.

그리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유 

짝꿍과 카페 KITRI에서  나란히 창밖을 보고 앉아 따뜻하고 쌉싸름한 말차라떼와 시원하고 상콤한 에이드를  나누며            각자 가방에 챙겨 온 책을 읽었다.


언제부턴가 그리는 일을 하고 있다. 

무언가를 그리는 것을 좋아한 지는 꽤 오래 되었는데 

꾸준히 그리기 시작한 것은 친구로부터 무려 132색 프리즈마 색연필을 선물로 받은 이후부터다. 


사실 색연필을 사달라고 조른 것은 나였다. 

우울의 늪에서 겨우 빠져 나와, 마치 새로 태어난 사람처럼 무언가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그때가 생일 무렵이었다. 


"선물로 뭐 받고 싶어?" 

친구가 물었다. 

"음... 글쎄..." 

한번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그러곤 불쑥 떠오른 단어를 입밖으로 뱉었다. 

"색연필 갖고 싶은데..." 

말을 흐린 이유는 가격이 꽤 비싸기 때문이었다. 

어떤 색연필을 갖고 싶으냐고 묻기도 전에 내 머릿속에는 '프리즈마! 그리고 132색' 이 박혀 있었다. 

얼마전부터 눈독 들이던 녀석이었다. 

"근데 많이 비싸... ㅎㅎㅎㅎ" 


친구는 가격을 되묻지도 않았다. 

"그래? 그럼 내가 새로 태어난 아가를 위해 선물해주지!" 

그러곤 며칠 후 집 현관 앞에 선물이 도착했다. 


틴케이스를 열자 오색찬란한 연필이 가지런히 층층이 놓여있었다. 

한층 한층 꺼풀을 벗겨낼때마다 '우와~ 우와' 감탄이 새어 나왔다. 

첫 그림이 어떤 것인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기록을 잘 해뒀어야 했는데....) 


그리고 나는 시간이 날때마다, 아니 시간을 내어 그림을 그려냈다. 

주로 꽃을 그렸다. 꽃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꽃은 그리기가 쉬웠다. 

나중에 그림을 그리는 분 말씀이, 움직이는 사람이나 동물보다 식물이 그리기 쉽다고. 

그 분명한 사실은 몰랐지만 그리다 보면 내 그림도 꽃처럼 예뻐 보여서 좋았다. 


그리고 몇년의 시간이 흘렀고, 

꽃을 식물을 그리다 보니 거기에 쓰이는 색은 연필이 반 이상 줄어들기도 했다. 

132색 중 여전히 키가 큰 녀석들이 있는데 비교하자니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 


올해, 새해를 시작하면서 역시 꽃을 그렸지만 다른 것도 그리기로 했다. 

추억을 한 장 한 장, 그림으로 남겨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내 사람,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 시간을 그리기도 하고 

SNS 지인들의 창에서 본 장면을 그리기도 하고 

벗님의 반려 동물을 그리기도 한다. 


 

숲 같은 사람과 숲길을 걸었다. 그 길 끝에 오두막 찻집이 있었고 차를 마시며 따스한 대화를 나누었다. 
기후위기를 걱정하면서도 봄날같이 따스한 날에 첫만남을 한 것이 무지 고맙기도 했던.... 잔뜩 받은 선물을 기억하고 싶었다. 
짝꿍과 함께 먹은 브런치! 접시 하나에 소담하게 담겨나온 메뉴들을 하나하나 맛보며 여행온 기분을 내다. 
벗님의 인스타그램에서 본 냥이, 사진이 참 예쁘다고 그려도 되냐고 물어보았는데 실물보다 아쉽게 그려졌다.                      

그리다 보니 자연스레 마음이 담긴다. 

마음을 담다 보니 썩 잘그린 것이 아니더라도 애정이 생긴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사람을, 반려 동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보니 절로 생기는 마음이다. 


그리다 보니 더 잘 그리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 

그 욕심이 그림을 잡아먹을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단 걸 안다. 

다행히 아직은 욕심보다 즐거움이 크다. 

살짝 더 잘 그리지 못해 부끄러운 마음이 들더라도 기꺼이 내 마음을 바라보면서 

그림의 주인공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그러니 나는 좋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그림을 그리는 이 시간이 

마음을 담아 내는 이 그림이... 


올해는 자주자주 그려보려고 한다. 

그림 한 장에 추억 한 장 마음 한 장 담아서... 


한 달에 두번, 모여서 그림그리는 시간이 있는데 무얼 그릴까 하다가 아침에 페북에서 본 장면을 그렸다. 포도농장의 거위들


추신. 친구 M, 고마워~ 덕분에 행복하게 그리고 있어. ^_^

(올해 네 생일에는 그림 선물해줄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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