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그리다 보면 ... 수선화
그림을 그리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가라앉기 보다 살포시 내려 앉는 듯한 느낌인데 걱정 근심이 어느새 사라지기도 하고
어떤 생각없이 그저 느낌으로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슥삭슥삭 색연필이 종이랑 만나며 내는 소리는 참 예쁘다.
몇번 움직이다 보면 자기의 색깔을 종이에 묻히는데 그 묻어나는 색감이 마음을 피어나게 한다.
색연필!
어릴때 쓰던 색연필은 지구색연필이었다.
플라스틱 몸통안에 곧게 뻗은 색색의 심이 들어 있었고, 꽁지를 돌리면 머리에서 색심이 조금씩 올라왔다.
부드럽게 발리는 느낌이 좋았고 보통은 12색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132색이니 세상이 참 크게 변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연필모양으로 심이 다양한 색을 가졌다.
어릴 때도 연필 모양의 색연필이 있었는데 색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고, 발림도 좀 거칠었다.
나무를 깎아 만든 작은 나무연필은 손에 쥐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뾰족한 철심이 박혀 있는 볼펜이 날카롭고 세련된 글자를 만드는 동안
연필은 슥슥 투박하지만 부드러운 모양을 만들어낸다.
그런 연필이 만들어내는 그림 역시 부드럽고 온기가 느껴진다.
다양한 색을 지닌 연필을 가까이 두고 지낸지 3년 정도 되었다.
내가 주로 그리는 것은 처음부터 꽃이었다.
왜 꽃이었을까?
꽃을 유난히 좋아하기도 하고, 걷다 보면 다니다 보면 쉽게 만나는 것이 꽃이기도 했다.
132색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서 좋았던 이유도 있다.
있는 그대로 자연의 색을 구현해내기는 어려워도 알록달록 색을 입히다 보면 그 자체로 힐링이었다.
무엇보다 그리기도 쉬웠다.
인물을 그렸다면 이렇게 꾸준히 그리지 못했을 수도...
요즘 들어 인물을 그려보고 있는데 윤곽을 잡고 입체감을 드러내는 것이 영 어렵다.
입춘이 지나고 어제는 오랜만에 꽃을 그려보았다.
분홍빛 튤립과 노오란 수선화,
그리다 보니 두번째 그린 수선화에 조금 더 애정이 간다.
튤립을 그리면서 손이, 마음이 풀려서일까?
하얀 종이 위에 피어나는 꽃들을 보며 내 마음도 활짝 피어났다.
설레이는 봄
이 봄을 잘 지내보겠다고 다짐하면서 어여쁜 꽃처럼 마음을 피어냈다.
수선화는 12월에서 3월까지 주로 피는데 '자기애' 라는 꽃말을 갖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참 곱게 생겼다.
여려 보이지만,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온 몸으로 뿜어내는 꽃.
수선화는 화분 등에 옮겨 심기도 하지만 군락을 이루어 필 때 그 어울림이 더 좋은 꽃이기도 하다.
수선화처럼,
나도 나를 충분히 사랑하고 싶다.
다른 사람에게 마음 내어주는 일은 즐겨 하면서 정작 나를 돌보는 일에 소홀하다면 억울할 일이다.
언제나 그 누구보다 나를 아껴주고 예뻐해주어야 할 나를 미루지 말아야지.
2024년, 나를 아끼는 따스한 봄을 보내고 싶다.
그리고 모두가 그랬으면 좋겠다.
수선화처럼, 자기를 사랑하며 지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