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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모닝 Feb 08. 2023

어릴 땐 쉽게 친해졌는데 웃기지 못하고 취하지 않아도


 술은 기분이 좋을 때도 먹고 나쁠 때도 먹고, 친한 사람들과 더욱 친해지기 위해 먹고 낯선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서도 먹고, 술 취한 나는 진짜 내 모습이기도 하고 진짜 내 모습을 감춘 나이기도 하다.


 예전에 자주 듣던 헤르쯔 아날로그의 ‘애정결핍’이라는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 어릴 땐 다들 쉽게 친해졌는데

웃기지 못하고 취하지 않아도 -


 정말, 어릴 땐 시답잖은 것에도 자주 웃고 금방 친해졌는데 어느새 어색한 미소만 짓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때로는 둘 사이에 감도는 어색함마저 즐거운 상대가 있는가 하면 단 한 순간의 어색함도 못 견디겠어서 빨리 취해버리고 싶은 상대도 있다. 어서 취해버려서 이 자리를 마무리하고 알쏭달쏭한 정신으로 각자의 집으로 가서 편히 쉬고 싶은 그런 사람. 집에 도착해서 간단한 안부를 묻고 한두 달 간은 서로 연락하지 않을 그런 관계.




 그 날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막걸리를 먹기로 한 날이었다. 대외활동에서 만나 같은 조로 활동했던  친구였고 각자 취업 후에는 연락이 정말 뜸했다. 우연히 마주쳐도 못 알아볼 정도였는데 SNS에서 연락을 하게 된 뒤로 가끔씩 안부를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언제 한번 만나자’, ‘술 한 번 먹자’와 같은 속이 텅텅 빈 대화가 일주일을 지나 한달 째 이어지자 한번은 만나야 끝나겠구나, 싶어서 날짜를 잡은 게 바로 그날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마저 어색함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부랴부랴 막걸리 집으로 직행했다. 바깥에 있기에는 날이 너무 더웠고 퇴근 후라 배고픈 시간이었으며 무엇보다 어서 술을 먹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도파민의 힘을 빌려 어색함을 깨고 싶었다. 사계절을 모티프로 4가지 맛의 막걸리를 파는 ‘느린마을 양조장’에서 사계절의 마지막인 겨울에 도착하자, 어색함은 사라지고 서로의 고민이나 회사 얘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몇 시간만에 이렇게 깊은 얘기를 나누는 사이가 될 수 있다니, 도파민의 힘도 있겠지만 어쩌면 서로를 잘 몰라서 할 수 있었던 대화였던 것 같다. 내일 또 봐야하는 회사 사람도 아니고 자주 연락하는 사이도 아니니, 또 친구도 나도 취했으니 당연히 기억하지 못할 거라는 가정 하에 서로를 대나무숲처럼 여기며 장르 불문의 온갖 얘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 중에는 안하면 더 좋았을 이야기도 있었지만 술에 취한 사람의 정신에는 필터가 없으므로 말하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다음 날, 과음의 여파로 아침 내내 속을 게워내면서 머리를 부여잡았다.


‘다시는 술 마시지 말아야지’,

‘그 얘기는 하지말걸..’


 속이 텅텅 빈 후회를 하며 속을 게워냈다. 막걸리를 잔뜩 마시고 속을 그렇게나 게워 낸 것은 처음이었다. 막걸리의 산성이 위에서 업그레이드 된 것인지 속을 한참 게워 낸 뒤에는 혀가 따끔거릴 정도의 아픔이 느껴졌다. 그날은 하루종일 따끔거리는 혀를 느끼며 어제의 과음과 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말들을 곱씹으며 후회했다. 여전히 그 친구와는 한두 달에 한 번 꼴로 연락한다. 술로 급하게 쌓은 친분의 결말은 텅텅 비었고, 끝이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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