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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모닝 Feb 07. 2023

아빠의 생일-절망 편


'희망 편'을 먼저 읽으시면 절망이 조금 더 와닿습니다. 



 다음 날, 아빠를 만나기 위해 아빠가 사는 동네로 갔다. 부모님이 이혼하기 전까지,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까지 지내던 그 동네에는 이제 아빠만 남아 있었다. 우리가 살던 집도, 내가 자주 가던 놀이터도, 늘 외상을 달아두고 라면이나 과자를 사 오던 슈퍼도 없어졌는데 오직 아빠만 그 동네를 벗어나지 못하고 둥둥 떠다녔다. ‘떠다녔다.’ 그 작은 동네에서조차 자리를 잡지 못한 채 그렇게 떠다녔다.


 그때는 그렇게 될 줄 몰랐으나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있다. 그 기억 속의 장소와 비슷한 곳에만 가도 그 기억을 떠오르게 해서 생각이 많아지는 그런 기억이.


 

 내가 초등학생 때 아빠는 호프집에 자주 갔다. 맥주와 치킨을 먹으며 호프집 여사장과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던 것 같다. 그때 엄마와 아빠의 사이가 점점 멀어지는 이유가 아빠가 호프집에 자주 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나는, 거기서 도대체 누구를 만나길래, 거기 사장이 누구길래 그렇게 자주 가는 건지 꼭 밝혀내겠다며 아빠의 뒤를 밟은 적이 있었다. 아빠는 처음에 내가 따라오는 걸 눈치채고 돌아가라며 몇 번이나 말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따라간 끝에 한 호프집에 나도 들어갈 수 있었다. 아빠에게 여기서 뭐 하는 거냐며 집에 가자고 말했지만, 그는 내 말을 웃어넘겼고, 나는 거기서 여사장이 만들어준 치킨에 콜라를 대충 먹고 혼자 집으로 왔었다. 그 이후에도 아빠의 호프집 나들이는 이어졌다. 심지어 이곳저곳, 다양하게도 다녔다. 지켜본 바로, 딱히 여사장들과 그런 관계는 아닌 것 같았다. 친구가 없던 아빠의 유일한 말동무가 호프집 여사장들이 아니었나 싶은 건, 인제 와서야 드는 생각이다.


 그래서 호프집은 친구도 하나 없고 무능했던 젊은 아빠를 떠올리게 하고, 부모님 사이를 좋게 만들어보겠다고 기어이 호프집까지 따라갔던 가던 어린 나를 떠올리게 한다. 피아노 학원 다니고 싶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친구들 다 다니던 태권도 학원 보내 달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그런 데 갈 시간에 나한테 신경 좀 써주지, 하며 사랑받지 못한 나를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올해 가장 좋은 소식은 아빠가 드디어 이 동네를 떠난다는 것이다. 다른 동네로 다음 달에 이사한다고 했다. 내가 사는 집과 가까워지고 이 동네와는 멀어진다. 좋은 기억이 별로 없는 이 동네는 이제 안녕, 오늘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빠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었다.


“아빠, 어디야? 나 동네 도착했어”

“어 거기 앞에 ‘참사랑 교회’ 보이지? 그 앞으로 와”

“어디? ‘참사람 교회’.. 아 봤어, 갈게”


 아빠 생일을 맞이해 내가 맛있는 갈비 사준다고 했는데 웬 텅텅 빈 거리에 오라고 한 건지, 아빠가 나를 기다리고 있던 장소에 다다르니 알 수 있었다. 아빠가 서 있던 자리에는 호프집이 있었다.


“여기? 여기를 가자고?”

“아빠 고향 동생이 하는 곳이야. 들어가자”

“내가 갈비 사준다고 했잖아, 무슨 호프집이야!”

“안에 갈비찜 해놓으라고 했어. 일단 들어가 봐”


 갈비 사준다니까 호프집에 갈비찜을 주문해 뒀다는 건 또 무슨 소리인지. 일단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여사장은 나를 향해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어릴 때 만난 여사장들은 내가 귀엽다며 온갖 질문을 해댔지만, 나이 27살 먹은 성인 자녀에게 여사장은 그저 어색한 미소만 보일 뿐이었다.


 내가 거기 있던 시간은 채 3분도 되지 않는다. 나는 의자에 앉지도 않고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을 뱉어냈고, 변한 것 하나 없이 여전히 나를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아빠와 불쌍한 내 속의 어린 나를 떠올렸고, 울며 가게를 나왔다. 들어갈 땐 27살이었지만 나갈 땐 다시 10살 때의 나처럼 혼자 나왔다. 생일 축하한다는 말도 못 했다.


 집에 도착해 서러운 마음을 삭이며 청소했다. 오늘의 기억이 새로운 상처로 남지 않게 깨끗하게 치워버리고 싶었다. 청소를 마치고 던져둔 휴대전화를 보니 아빠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 아빠 너무 미워하지 마


 내가 나를 불쌍히 여기는 만큼 아빠도 아빠를 가장 불쌍히 여기고 있는 걸까. 자신은 사랑받지 못하고 미움받는 존재로 생각하는 걸까. 아빠는 결국 혼자서 그 갈비찜을 먹고 집에 갔을까. 청소한 보람도 없이 결국 새로운 상처가 생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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