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복의 시작
푸른색을 좋아한다. 시원하고 강렬하고 어른스러워 보이는 이미지가 좋다. 그런 이미지를 갖고 싶어 푸른색을 좋아하는지 정말 그 색을 좋아하는지? 아마 둘 다일 것이다. 나는 좋아 보이면 갖고 싶고 해보고 싶은 욕심 많은 사람이니까.
푸른색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인 여름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끈적한 게 온몸에 찰싹 달라 불어 떨어지지도 않는 게 불쾌하기 짝이 없다. 그런 여름에 좋아하는 건 오직 바다뿐이다. 푸르고 널찍한 바다는 보기만 해도 숨통이 트이며 쏴아아 밀려오는 파도의 끊임없는 생명력은 다 죽어가던 활기도 다시 소생시킨다. 여름을 여름답게 하는 건 바다다. 가히 여름의 주인은 바다다.
바다를 그리 좋아하니 수영을 잘하는 사람인가 싶겠지만 전혀 아니다. 수영은 고사하고 물이 가슴께까지만 차올라도 겁이 나고, 발이 닿지 않는 수심까지 들어가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무엇이든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멀리서 볼 땐 시원하고 푸르게만 보인 것이, 가까이 가서 몸을 담그면 나를 삼킨 괴물처럼 느껴진다. 바다에서 나는 그저 엑스트라다. 흔해 빠진 사망 플래그를 따라 호기롭게 자진해서 괴물의 입 속에 들어와 놓고 '으아아 살려줘~'하며 잡아먹히고 마는 엑스트라. 주변에서 바다와 한 몸이 되어 자유롭게 유영하고 즐기는 사람들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엑스트라. 모래밭에서 나를 제외한 그들의 풍경을 감상하는 엑스트라.
언제부터 물이 무서웠는지 생각해 보면, 초등학생 때 재미 삼아 다니던 교회에서 워터파크에 갔던 날이 생각난다. 다 같이 풀장에서 놀고 있었고 나는 튜브를 끼고 있었던 것 같다. 갑자기 튜브가 빠졌나, 누가 나한테 장난을 쳤었나. 의지하고 있던 모든 것이 갑자기 사라졌고 물에 풍덩 빠진 채 허우적댔었다. 다행히 중고등학생이던 누군가가 나를 끌어올려줘서 혼미한 정신을 겨우겨우 잡아가며 물에서 빠져나왔지만 그때의 그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과 어린 나이에 느낀 생명 위협이 뇌에 각인된 듯하다. 그때부터 ‘물은 무섭다’ 공식이 근의 공식처럼 영영 잊을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자라면서 미디어로 접한 온갖 물귀신, 상어, 바다 괴물, 급류의 위험성(자연이 제일 무섭다) 등이 물 공포증에 박차를 가했다. ‘물은 무섭고 바다는 진짜 무서운 곳’이라고 공식은 수정되었다.
물에서 멋있게 헤엄 한번 못 쳐보고 지나온 세월이 27년. 올해는 왠지 느낌이 다르다. 곡선 없이 직선으로만 이루어진 7이라는 숫자가 바다와 닮았다고 말하면 몇 명이나 공감해 줄까? 간단하고 시원하게 뻗은 게 강렬하고 어른스럽게 느껴진다. (21도 시원해 보이긴 하지만 단순해 보이고 24는 답답해 보인다.) 27살이 된 올해는 꼭 수영을 배우고 싶다. 공포증이란 건 내가 대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그 미지의 세계에서 오는 불확실성에 두려움이 더 크게 작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
27살인 나는 이성적으로 생각할 줄 안다. 물귀신, 상어, 바다 괴물은 만나기 어렵고 급류의 위험성은 안전수칙을 잘 지키고 수영을 잘하면 빠져나올 수 있다. 싫어하는 여름에 나도 하나쯤 좋아하는 걸 가져봐야지. 그저 싫고 아쉽기만 한 계절로 남겨둘 순 없다. 무엇보다 그 자유롭고 드넓은 품에 나도 제대로 안겨보고 싶다. 올해는 수영을 배우리라. 이 미지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올해 큰 목표 중 하나다. 도전적인 여름이 지나면 나는 어떤 얼굴이 되어 있을까? 도전과 여름이 한 문장 안에 있다니. 상상만 해도 멋있는 계절로 기억되리라. 혐름에서 갓름으로 기억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