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라고 착각하는 상호 독백

기승전'듣기' 4. 듣고 있는 게 아니라 할 말을 준비하고 있을 뿐

by 단비

생각은 말보다 빠르다.

수없이 잡다한 생각들이 떠오를 때, 우리는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고 한다. 이것은 뇌과학적으로도 일리가 있다. 인간은 보통 하루에 60,000개 정도, 1분당 40개 이상의 생각을 한다니 말이다. 한 가지 얘기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말의 속도가 음속(音速)이라면 생각의 속도는 광속(光速)인 셈이다. 말을 하거나 들으면서 생각이 곁으로 새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맥락에 상관없이 이 말에서 저 말로 화제는 계속 바뀌고, 누구와 말하는 건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대화는 생각보다 매우 흔히 볼 수 있다. 사실 대화라기보다 마주 보고 나누는 상호 독백에 가까울 정도다.


드문드문 듣고, 많은 부분을 놓친다.

의도적으로 애써서 집중하지 않는 한, 우리는 대화 중에 딴생각을 하기 십상이다. 처리해야 할 이런저런 일들, 전혀 상관없이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에 빠져서 상대가 하는 말의 많은 부분을 놓치게 된다. 순간 정신을 다잡고 대화 상황으로 잠시 되돌아왔다가도 금방 다시 딴생각에 빠지기를 반복한다. 우리는 잠깐씩 상대방의 얘기를 듣고 대부분 딴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들은 내용과 놓친 내용의 사이사이를 짐작으로 메운다.

문제는 실제로 듣지 못한 부분들을 드문드문 들은 내용에 맞추어 짐작으로 메워 넣는 것이다. 여기에는 듣는 이의 경험이나 지식, 그리고 개인적인 선입견이 작용한다. 당연히 상대가 원래 한 말에 대한 오해와 왜곡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겉으로 드러난 두 귀를 상대에게 기울였을 뿐, 실제 듣고 있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다.

듣고 있는 게 아니라 할 말을 준비하고 있을 때가 많다.

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집중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음에 할 말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화를 재미있고 인상적으로 이끌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 또는 자신의 말이 미칠 영향을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 됐든 적절한 반응을 하기 위한 최상의 방법은 상대의 말을 놓치지 않고 듣는 것이다. 상대의 말을 많이 놓칠수록 적절하지 못한 반응을 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들으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있을 때, 진짜로 들을 수 있다.

듣기는 상당한 노력과 반복적인 연습이 필요한 작업이다. 들고자 하는 동기와 필요를 잊지 말아야 하고,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곁가지 생각들을 의식적으로 잠재워야 한다. 말을 듣는 동안 생기는 여분의 뇌 공간을 자신의 생각으로 채우는 게 아니라, 상대가 한 말의 이면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광속으로 달리는 자신의 생각을 멈추고, 음속으로 전달되는 타인의 진심을 기다려야 한다.



Ai로 생성한 이미지

'듣기'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잘 듣기 위해 스스로 학습하는 중입니다.

매주 '듣기'에 대한 자습 노트이자, 실제 경험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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