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전'듣기' 2. 제대로 듣고 있다는 증거
상대가 한 말을 경계나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이는 겉으로 한 말과 그 이면에 담긴 속뜻이 전혀 다를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예의상, 또는 상황상 어쩔 수 없이 괜찮지 않으면서 괜찮다고 하거나, 싫은데도 좋다고 말할 때가 있다. 결국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곧이곧대로 말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어떤 문화에서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부정적인 의사 표현은 되도록 우회적으로 돌려서 말하는 경향이 있다. 보통 상대의 요청을 거절할 때가 그렇다. 예를 들어 "저 좀 도와주시겠어요?"라는 말에 "안 돼요"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제가 지금 바빠서요."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회적 관계에서 예의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돌려 말하는 것에 매우 익숙해져 있다.
돌려 말하게 된 배경이 사회생활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기 위한 것에 있다 해도, 그것이 항상 순기능만 가지는 것은 아니다. 최근 좋은 직장에 취업하고서도 금방 퇴사하는 이유가 구성원과의 소통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통에 어려움을 느낄수록 여럿이 함께 일하는 것에 대해 흥미나 자신을 잃게 된다.
직설적이지 않게 돌려 말하는 화법을 적절하게 구사하는 것은 부드러운 소통을 이끌 수도 있지만, 잘못 오용되거나 지나치게 만연화 되면 불필요한 오해와 불신을 쌓을 수도 있다. 자신의 견해나 입장을 분명하게 표명하지는 않으면서 상대가 알아서 자신에게 맞춰주기를 바랄 때, 듣는 이는 상대의 의중을 알아차리는 일이 수수께끼를 푸는 것처럼 어렵고 힘들게 느껴진다.
세대와 문화, 또 다른 여러 요인에 따라 같은 말이라도 다르게 들릴 수 있다. 말했다는 것과 들었다는 내용이 판이하게 서로 다른 상황을 우리는 꽤 자주 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한 번 말하면 알아들어야지"라는 암묵적인 소통의 규율을 따르며 알아듣지 못했으면서도 적당히 알아들은 척한다.
그러나 여러 번 말했어도 전혀 알아듣지 못할 수도 있는 게 소통의 생생한 현실이다. 적극적으로 잘 듣는다는 건 모든 말을 한 번에 다 알아듣는 것이 아니다. 알아듣지 못했을 때 다시 한번 쉽게 풀어서 말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진짜 제대로 듣고 있다는 증거다. 잘 듣는 일은 못 알아들은 것을 못 알아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 때 가능해진다.
'듣기'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잘 듣기 위해 스스로 학습하는 중입니다.
매주 '듣기'에 대한 자습 노트이자, 실제 경험을 연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