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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파즈 Nov 09. 2023

아빠, 아빠는 누가 지켜줘?

아빠육아 #29

 이른 퇴근을 하고 오랜만에 첫 딸을 씻기고 나왔습니다. 이제 5살이 되어서 아빠가 씻겨줄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깨끗하게 씻고 나와 로션을 바르고 머리를 말리려 하는 찰나에 딸이 말했습니다. 



"아빠, 아빠, 아빠!"


"응?"


"아빠는 나를 지켜주지?"


"그럼, 당연하지. 아빠는 우리 고은이를 꼭 꼭 지켜주지."


"(얼굴에 웃음을 띠며) 그럼, 아빠는 누가 지켜줘?"


"응.. 그건.." 


"아빠는 누가 지켜주냐고?"


"아빠는 아빠가 스스로 지킬게."


"아빠는 내가 있잖아. 걱정 마."



 나는 크게 성장하지 않았는데 어른으로 불리기 시작한 즈음부터 나는 나를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습니다. 그저 하루를 살아갈 뿐인데.


 결혼을 하고 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나를 보고 해맑게 웃는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아름다운 생명을 나에게 맡겨주셨는데 결코 가볍게 대해서는 안 되겠다고. 내가 꼭 지켜내야 하는 존재이니.


 그러나 천진난만하게 걱정 말라는 고은이의 말에. 아빠한테는 내가 있다는 말에. 가슴이 턱 막히듯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은 나 또한 나약한 인간에 불과한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아장아장 걷던 고은이가 꽤 커서 이제는 유치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나름의 논리가 생겨서 본인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반드시 다시 묻고 확인합니다. (조금은 엄마를 닮았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다시금 글을 남겨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고은이는 곧 한글을 배울 것이고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아빠가 남긴 글을 읽어볼 날이 다가올 것이니.


 삶의 결정적인 순간은 더디게 오는 것처럼 보이나 성급하게 나타납니다. 멀게만 느껴졌던 시간이 성큼 눈앞에 다가온 것입니다. 저는 아빠를 지켜주겠다는 5살 고은이의 따뜻한 마음과 기분 좋은 웃음을 마음 한편에 꼭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을 고은이에게도 꼭 전달되기를 바라며. 


 가을이 찾아온 줄 알았는데 갑자기 추워진 날이었습니다. 분명 쌀쌀한 날이었는데 고은이와 내가 머물던 방에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또 한 번 꽤 좋은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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