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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두려워합니다. 솔직히.

에세이 #27

by 토파즈
실패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합니다.


이 한 문장을 인정하지 않으려 발버둥 치고 살았는지 모를 일입니다. 뛰어나게 공부를 잘하지 못했고 특별한 재능을 일찍 찾아 각광받으며 청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대학에 들어간 축구팀에서 동기들이 주전으로 뛸 때도 벤치에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군대를 먼저 가서 남은 자리에 뛰었습니다. 동기들이 군대 가서 없으니깐 주전으로 뛴 거라는 이야기가 듣기 싫어서 혼자 열심히 축구 연습을 했습니다.


친구들은 원래 주전이었고 저는 턱걸이였습니다.


대학교 2학년, 21살에 가장 열심히 했던 것은 축구였습니다. 뒤처지지 않고 친구들과 동일선에 서고 싶었습니다. 축구장 필드와 벤치를 가르는 흰색 선, 그것을 넘기 위해 발에 땀이 나도록 애를 썼습니다. 친구들은 원래 주전이었고 저는 겨우 턱걸이로 11명 안에 들어갔습니다.


훈련부장은 매주 엔트리 11명을 발표했습니다. 주전으로 뛰던 친구들은 당당히 자기 이름이 호명되기를 기다렸지만 저는 대단히 긴장했습니다. 무슨 국가대표팀 축구 경기도 아니었는데.


곰곰이 생각하니 대단한 삶이 아니었는데 왜 이다지도 실패를 두려워했는지. 답답했습니다.



.....


그것은 아마 주변의 기대와 실망에 지독하게 연연했던 것입니다.


왜 그렇게 지독하게 연연하며 잘하고 싶었는지. 지금도 그렇습니다. 지금도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고,

실망의 눈빛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실패를 무서워합니다.


DONT SELL YOUR DREAMS
<프라하 여행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존 레논이 한 번도 온 적이 없는 존 레논의 벽입니다.>

프라하 여행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어떤 문구보다 맨 위에 있는 문구가 눈과 마음에 와 닿아 남겨놨습니다. 당시 되게 유치한 문구라고 생각했는데...


상투적인 말이 주는 위안


어느 누구도 실패하기 위해 도전하지 않겠지만 도전했다가 실패했다면 저는 기꺼이 괜찮다고 잘했다고 말해줄 용의가 있습니다. 만약에 딸이 처음 운동회를 참여해서 달리기 시합을 하다가 넘어졌는데 울면서 골인지점을 꼴찌로 통과했다면 솔직히 감동해서 울면서 말할지도 모릅니다.


잘했어. 잘했어! 너무너무 잘했어!


그러나 막상 저에게는 한 번도 그렇게 스스로를 폭넓게 수용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에게 너그럽지 못했는데 딸에게 너그럽게 할 수 있을까? 딸이 인생에서 비바람 치는 날을 지나고 있을 때 기다리며 재촉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다. 나에게 했던 것처럼 다그칠 가능성이 높다.

지금부터라도 실패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라고 생각했는데, 글을 쓰며 뻔한 글을 쓰지 말자고 매번 다짐했는데 오늘은 왜 그렇게 뻔하디 뻔한 글을 쓰고 앉아있는지.


그런데 살다 보면 상투적인 말이 위력을 발휘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화이팅! 힘내! 괜찮아! 수고했어! 고마워! 덕분이야! 네 말이 맞아! 되게 잘했는데! 좋은데! 좋아!'와 같은 뻔한 말인데 어느 때, 어느 상황에서 어이없이 마음을 툭 건들기도 합니다.


축구팀에서 주전으로 자리 잡고 있던 즈음 팀 에이스였던 선배 K는 술자리에서 딱 한 번 저를 두고 말했습니다.


'임마는 축구를 잘 배웠어. 공 잡기 전에 꼭 주변에 누가 있는지 확인하려고 고개를 돌려서 보거든.'
'그럼 그때, 내가 꼭 여기! 여기!라고 소리치거던, 그라믄 딱 내를 보고는 발 앞에 갖다주거든 .'
'그라믄 내가 바로 빈 공간으로 들어가서 게임을 만드는기라.


선배 K는 저를 띄워주는 척하면서 자기 자랑을 늘어놨습니다. 술 먹고 축구 이야기를 하니 뭐 끝도 없는 자기 자랑으로 대부분 호날두, 메시는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수준입니다.


축구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 기본기가 약했습니다. 당시에 코치님은 매일 기본기 훈련을 시키셨고 그때마다 말했습니다.


고개 들어! 고개 들고 볼을 차라고!


무의식 중에 고개를 떨구고 공만 바라보면 어김없이 말했습니다.


고개 들라고! 고개를 들어야 축구를 하지! 공놀이 할 거야?


이것만 제대로 배웠습니다. 대학 축구팀에서 공을 잡든 못 잡든 고개를 떨구지 않고 주변을 살폈고 공만 잡으면 상대적으로 공을 잡기 쉬운 사람에게 공을 보냈습니다. 선배 K가 잘한다고 칭찬하자 더 열심히 그것만 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선배 K가 술자리에서 그렇게 말하고는 다들 고개를 들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겁니다. 에이스가 그렇게 말했으니깐 다들 잘 보여야 주전으로 뛸 수 있으니깐. 막상 선배 K는 술 먹고 한 말이라 하나도 기억을 못 했지만.


실패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모르니깐 무섭고 두려운 것은 아닌가 합니다. 그때마다 지극히 상투적인 말을 되새기려 합니다. 지나치게 상투적이라 아무 감흥도 없는 말이 꼭 그런 때에는 힘을 발휘합니다. 너무 자주 의미 없이 쓰던 말에 진심만 담으면 꽤 괜찮은 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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