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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거니?

에세이 #47

by 토파즈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거니?'


신은 생을 마감한 인간에게 물을 것입니다. 삶이 얼마나 즐거웠고 또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기회가 왔을 때 어떻게 결과를 만들었고 위기가 왔을 때 어떻게 극복했는지. 도표와 차트를 놓고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루이보스차 한 잔을 두고 대화를 주고받지 않을까요?


삶은 이야기입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주어진 시간에 어떤 이야기를 채워가느냐가 결국 일상이고 삶입니다. 퇴근하고 집에서 아내와 오늘 있었던 일을 나누는 것부터 가족에게 마음이 상해 끙끙 앓다가도 결국 누구 하나 큰 마음먹고 전화하는 것까지 또는 다툰 친구와 화해하기 위해 먼저 손을 내밀고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해 다시 찾아가는 것까지.


고객을 만나 상품을 설명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발표하는 과정도 이야기입니다. 꼬마 아이가 처음 입을 떼고 누군가를 부르는 그 기적 같은 순간 역시 이야기입니다. 가끔 세상이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궁금증을 일으키는 사람을 만나면 꼭 물어봅니다. 어떻게 살아왔냐고. 진심으로 물어보면 자연스럽게 말을 꺼냅니다. 세상에 태어난 누구나 독특한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크든 작든 경험을 축적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은 자기 철학과 삶의 방식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을 만나면 묻지 않고 배길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정말 1도 궁금하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사람. 특히 상대가 누구인지 살피지도 않고 무조건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말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종종 만나면 오히려 더 조심하게 됩니다. 나와 나눴던 이야기도 저런 방식으로 쏟아내지 않을까?라는 걱정에.


이야기의 탄생,
도전과 절망으로부터.


이야기는 무모할 만큼 힘든 일에 도전했거나 살다 보니 뜻하지 않은 큰 파도가 밀려와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는 순간 탄생합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대체로 그렇습니다. 어느 날 세상을 둥둥 떠다니던 행운과 고통이 내 삶에 내려와 앉습니다. 그렇게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게 합니다. 이전과 전혀 다른 선택을 하게 하고 도전에 나서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쓸 준비를 합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내일을 향해 조심스럽게 첫 발걸음을 내딛기도 하고 때론 대담하게 크게 한 걸음 나아가 보는 것입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고 무지막지한 분노를 경험하기도 하고 끊임없는 신체적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갑니다. 절박하고 간절하게 소원하면서.


어떤 날은 어서 하루가 끝나고 잠자리에 들어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싶을 만큼 처절한 시간도 있습니다. 그렇게 도전하며 인내하고 감내합니다. 그렇게 긴장되거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나름의 방식으로 이겨내려는 의지를 갖고 버티면 어느덧 이야기는 완성되고 삶은 다시 안정을 찾습니다. 한 편의 이야기가 끝나는 겁니다.


삶은 무료하게 일상을 따라 지나가다 또 만납니다. 도전과 절망을. 그리고 다시 이야기를 써내려 갑니다. 그래서 어찌 보면 삶은 시시하며 진중하고, 지루하며 무겁기도 한 것이 아닐까요?


이야기의 끝은 무료한 일상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일상을 올바르게 축적한 사람이 도전과 절망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 올바른 선택을 합니다. 사실 매일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어느 인간이 제대로 버틸 수 있겠습니까?


심심하고 느리게 가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결국 이야기의 끝을 해피엔딩으로 하느냐 새드엔딩으로 하느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은 사람을 만나는 시간을 어떻게 다르게 보낼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 삶의 사소한 부분부터 새롭게 바꿔가려고 노력하고 실행하는 것. 이런 것이 모여 작은 것부터 '새로움'을 만드는 노력이 쌓여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강력하고 힘이 있습니다. 강인한 삶을 살아내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나름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것을 숱하게 보았습니다. 사람이 가진 이야기, 그것은 삶을 반영한 하나의 표상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하여 삶은 곧 이야기입니다.

이야기가 풍부한 사람이 곧 삶이 풍부한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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