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나무는 한 계절만을 위해 살지 않는다.
꽃이 피는 순간에도,
평범하게 보이는 순간에도,
열매를 맺는 순간에도,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순간에도
모든 시간 벚나무가 벚나무이듯.
3월 말. 주변엔 온통 벚꽃 이야기뿐이다.
벚꽃 하면 우리 가족이 늘 동시에 떠올리는 기억이 있다. 내가 7살쯤 됐을 때의 이야기이다.
가족들이 다 같이 여의도 벚꽃 축제를 갔었는데, 그 많은 인파 속에서 4살이 된 동생 두 명과 나, 엄마, 아빠, 할머니까지 무려 6명의 대가족이 다 같이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챙길 사람이 많았던 부모님은 정말로 정신이 없었다.
그 당시 나에겐 나쁜 버릇이 있었는데, 가족과 같이 다니면 꼭 숨는다는 거였다.
내가 없어지면 알아차리기나 할까?
우리 가족은 내가 없어도 행복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아빠와 잡고 가던 손을 슬쩍 빼고 뒤로 빠졌다. 앞서 가는 우리 가족의 모습은 내가 껴있지 않아도 완벽한 가족처럼 보였다. 가족들이 내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언제 알아차릴까 속으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실망감에 내 걸음은 점점 느려졌고, 결국 바로 뒤가 아닌 나무에 숨어서 따라갔다. 내가 없어지면 그때쯤 부모님은 나를 봐주실까? 싶은 어린 마음이었다.
3살 차이 나는 쌍둥이 동생이 태어난 이 후로, 내 세상은 달라졌다. 나만 봐주던 엄마 아빠, 예쁘다며 옷과 선물을 주시던 친척들, 내 것이었던 것들이 모두 동생들의 것이 되었다. 내가 아끼던 물건도 어느 순간 동생이 쓰고 있었다. 화가 나서 동생을 몰래 때리기도, 원래 내 것이었던 물건을 빼앗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언니가 양보해야지", "언니가 그러면 안돼"라는 호통이 돌아왔다. 난 언니가 아니라 나일뿐인데. 원하지도 않던 동생의 존재로 인해 난 우리 집에 고집불통이 되었다. 그러면서 서서히 우리 집에선 나만 없어지면 평화가 찾아올 거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사랑을 확인하는 방법이 그런 행동으로 나갔다.
벚꽃이 흩날리던 그날,
난 결국, 정말 부모님을 잃어버렸다.
부모님을 잃어버리면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들었던 나는, 인파 한가운데 우뚝 서서 기다렸다. 울면서...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멀리서 아빠가 헐레벌떡 달려오셨다. 한참을 찾아다닌 얼굴에는 걱정이 서려 있었다. 아빠는 나의 돌발 행동에 모두가 돌아볼 만큼 큰 소리로 혼내셨다.
훗날 아빠는 사실 그날 '좋은 아버지 모임'으로 그 행사에 참석하셨던 건데 자신의 행동이 좋은 아빠의 모습이 아니었다고 민망한 듯 그때의 이야기를 해 주셨다.
사람도 많고 정신도 없고 어린 동생 두 명에 할머니까지 케어해야 하는 부모님 입장에서는 다 큰 내가 알아서 잘해주길 바라셨다고 한다. 나 역시 그 시절에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스스로도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답답했고, 그럼에도 어떻게든 나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 철없는 행동과 투정으로 나왔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사실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도 아직 어려요. 나도 사랑받고 싶어요.
부모님은 나에게 사랑을 주셨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내가 느낄 때는 3살 어린 동생에게 모든 걸 빼앗겼다는 생각이 컸고, 내가 가장 우선순위 밖에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주목받기 위한 행동이 엇나갔었다. 하지만 크면서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엄마 아빠는 첫째를 가장 사랑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몰라서 막막했던 부모의 마음이었다는 걸. 엄마아빠도 부모가 처음이라.
부모님도 나도 벚꽃이 흩날리던 4월의 기억이 이렇게나 여전히 생생한 걸 보면 그날은 모두에게 아픔이던 날일지도 모르겠다.
3월말에서 4월초 벚꽃이 가장 화려하게 핀 계절
우린 모두 내가 주목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어릴 적엔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은 밖으로 표출되지 않을 뿐 여전히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서 사랑받기를 원하는 아이가 있다. 그래서 우리가 SNS를 하며 누군가들에게 잘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지도 모르겠다.
벚나무는 4월에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는 화려한 꽃의 자태에 시선을 뺏겨 원형의 나무의 형태는 잘 보지 못한다. 꽃이 한창일 때는 수많은 이들이 멀리서도 보러 오지만, 꽃이 지고 나면 사람들이 그 존재를 잊고 굳이 찾지 않게 된다. 그뿐이 아니라 꽃이 없는 벚나무는 잎이 무성한 다른 나무와 큰 차이가 없이 평범하게 생겨서 보통은 그 자리에 있었는지 조차 잊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찾지 않는다고 벚나무가 한 계절만을 위해 살고 있진 않는다.
3월에 아름다운 꽃을 선물한 다음, 꽃이 진 나무는 초록잎을 빈틈없이 하늘을 가려 그늘을 준다. 5월에는 버찌가 달린다. 가을에는 예쁜 단풍이 물든다. 겨울에는 새로 다가오는 봄을 위해 준비한다.
벚나무의 아름다움은 한 계절뿐이 아니다. 나름대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계절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관심을 주든 주지 않든. 모든 시간 모든 순간 그저 벚나무였다.
꽃이 피는 순간에도, 평범하게 보이는 순간에도, 열매를 맺는 순간에도,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순간에도 모든 시간 벚나무가 벚나무이듯, 세상이 나에게 관심 없는 것처럼 굴어도,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처럼 느껴지는 순간에도, 잊지 말자. 나는 모든 순간 '나'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