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님의 책읽기8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장강명, 문학동네
그믐은 제목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가 바라보는 방식과 그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기억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작중 세 인물들의 대사와 서술을 통해 우리는 이야기를 만나지만, 이는 특정 지역에 얽힌 설화처럼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재생산된다. 그 이야기는 현재였다가 과거였다가 과거에 대한 현재의 기억이 되기도 한다. (기억에 대한 의심을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가 생각나기도 했다.)
페이지마다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는 우리가 매일매일 마주하는 자극적인 뉴스 기사와 같다. 기사는 이미 시선을 담고 있고, 이후 밝혀지는 인과 관계에 따라 그 시선을 거슬러 가는 과정에서 우리의 시선도 바뀌어 간다. 여기서 문제점은 내가 어떤 내용을 접했는지에 따라 특정 사건의 마지막이 달라진 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설 내에서 나오는 우주 알 이야기는 순서만 뒤섞여 있지만, 우리가 보는 그믐도 그렇다는 증거는 없다. 작가만이 알고 있는, 존재의 여부조차 모르는 다른 이야기들에 따라 우리의 생각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독자의 이해만이 소설을 완성하는 나머지 페이지의 역할을 할 것이다.
계속해서 생겨나는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고 싶어 앞과 뒤를 오가며 여러번 읽게 된다. 때마다 다른 해석이 될 수 있는 까닭에, 그나마 적은 페이지로 책을 마무리한 작가의 배려에 감사했다.
덧
이야기 중간에 남자의 단편 수상작인 ‘그믐’을 찾아 읽고 반전에 감탄하는 도서관 직원의 이야기를 보면서 소름이 돋았다. 작가의 몸 안에 '우주 알'이 들어와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