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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저너리 Jul 27. 2020

[에세이 111] 천천히 알아왔던 시간

[클로이의 크루 에세이 11] 돈에 대한 나의 태도


최근 돈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면 왜인가요?
혹은 달라지지 않았다면?



돈에 대한 나의 태도는 오랫동안 아주 무지했다. 철저한 무관심이라고 해야 정확할까. 내가 쓰고 다녔던 돈의 원천지가 나의 지갑이 아니어서 그런진 몰라도 참 쉽게 생각하고 쉽게 쓰고 다녔다. 물감 사야 한다며, 붓 사야 한다며 받는 용돈보다 쓰는 금액이 매번 초과하자 엄마는 아예 내 손에 카드를 쥐어주셨고, (일명 엄.카) 화방뿐만 아니라 주위 떡볶이 집으로 카페로 신나게 쓰고 다녔던 철없던 기억이 있다.


약 9개월 간의 두 번의 인턴 기간을 제외하고 대학생 때도 매번 용돈을 꼬박꼬박 탔더랬다. 학교를 졸업하고 그동안 수고했다며 보내주셨던 졸업 여행을 제외하곤 인턴 생활 + 아르바이트로 모았던 돈으로 여행도 가고, 평소 사고 싶었던 물건을 사고, 보고 싶었던 공연을 보러 가기도 했지만 대학 생활의 근간이 되는 돈도 여전히 아빠 or 엄마 지갑이었다. 빚쟁이로 사회생활을 시작시키고 싶지 않다며 그 흔한 학자금 대출도 못 받게 하셨지만 이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는 일을 시작하고 스스로 돈을 운용해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글을 쓰면서도 또 느껴진다.. 나 정말 철이 없어도 너무 없었구나!

(데둉합니다...)



작년 미국 여행을 갔다 와서 엄마가 처음으로 돈과 관련해서 나에게 물어오셨다. 질문이 즉슨 '지금까지 얼마나 모았니?'였다. 옆에서 지켜보니 사치를 부리는 것 같지도 않고 여행을 자주 가는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돈을 모았을 것이라 기대하신 것 같았다. 그 당시 식탁에 앉아 쿠기를 우물우물 먹으며 '음.. 대충 ~~ 이렇게 모았는데. 왜?'라고 대답했는데 깜짝 놀란 엄마의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제야 엄마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주택 청약은? 적금은? 생활비는? 여러 개의 질문을 연타로 날리셨다. 

나는 맛있게 먹고 있는데 왜 그런 질문을 굳이 지금 하냐며 입을 삐죽 댔다.(으이구) 그 날 하루 한 시간이 조금 넘게 식탁에 앉아 엄마의 속성 강의를 들었다. 지금부터 노후까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엄마 아빠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요목 조목 설명해주셨다.


사실 그때쯤 돈과 관련한 생각을 스스로 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내 생에 만져보지 못한 큰돈(철저히 내 기준)이 통장에 점점 쌓여가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당황스러웠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한 바탕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 후로 이것저것 찾아 읽고 공부를 했다. 그 당시 읽었던 칼럼 중 '금융문맹'이라는 단어가 정확히 나를 지칭하는 단어였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자 현실적인 주위의 환경도 그 전보다 민감하게 다가왔다. 곧 있을 앞자리가 바뀌는 나의 나이도, 앞으로 직장 생활을 하며 벌어들이는 돈도, 혹시라도 내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인생의 여러 변수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몸은 여전히 부모님과 붙어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천천히 독립하는 기분을 이즈음 느꼈던 것 같다. 막연히 내 꿈을 위해서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게 아닌, 내 삶을 주체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 돈을 벌고 있다는 생각도.


그 후로, 시드머니를 만들겠다며 1년간 월급의 60%를 넘게 저축했다. '일단 돈을 모아야 무엇이라도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생활비와 약간의 여유금만 남기고 여러 통장으로 돈이 자동으로 빠져나가게끔 만들어 놓았다. 누구보다 일 많이 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상반기에도 그 흔한 ○○비용을 쓸 수가 없었다. ○○비용은 고사하고 사고 싶은 것 하나도 맘 편히 살 수 없었다. 신용카드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큰돈이 나가야 할 때는 엄마 찬스인 '마미론'을 사용했다. 엄마에게 3개월 할부로 돈을 빌리고 월급이 들어오면 입금해주는 방식이었다.(이때 당시 일정 금액 이상의 '비상금'이 필요하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월급이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나갈 돈이 벌써 이렇게 쌓여있다니...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연봉이 만들어질 때까지는 절대 신용카드는 만들면 안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참 다행히도 평소 'YOLO 하다 골로 간다'라는 말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돈을 모으는 자체가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돈을 모으면 모을수록 얽매인다는 생각이 종종 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Phase 1이 끝나면 스스로 보상을 해주고 싶었는데 마침 휴가 기간과 맞물려 좋은 장소에 가서 엄마랑 즐겁게 식사도 했다. 


그동안 모으는 돈, 사용하는 돈을 구분하며 2020년 끝자락에 내가 쥐고 있을 금액을 계산기로 두드리는 시간을 가지며 나름 뿌듯해했다. 하지만 '순수하게 벌어오는 돈으로만 만족하려면 참 어렵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아 이래서 투자를 하는 거구나!) 딴 게 아니라 결혼을 하고 나서 적어도 내가 누린 것들을 내 자식도 누리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구구절절 적기는 어렵겠지만 어렸을 적부터 내가 자식을 낳는다면 꼭 해주고 싶은 것들도 2~3개가 있었다. 조금 더 나은 인생을 살기 위해 미래에 있을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것들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남들이 가지지 못한 능력을 가진 특 S급 인재가 되던지 또 다른 자금이 들어올 수 있는 출처를 만들던지 다른 고민이 필요했다.


근 1년 동안 남들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을 몸을 부딪혀가며 배워왔다(여윽시 뒷북 전문). 작년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모르던 병아리에서 레벨업은 한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아직도 한참~ 멀었다. 나름 이제는 엄마와 함께 식탁에 앉아 부동산, 땅 등 우리 집 재산 상황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순 있지만 그중 반은 여전히 엄마가 나에게 모르는 것에 대해 설명해주는 시간이다.


엄마 말대로 인생을 살면서 돈의 노예가 되지 않았으면 그리고 더 슬기롭게 다룰 수 있는 지혜를 얻길 소망해본다.



다음 크루에게 질문~!

당신의 삶에서 돈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최근 가장 뿌듯했던 소비는?

[에세이110] 바나나 우유가 찾아준 인생 1순위?


처음 돈을 벌어본 경험은 언제인가요?

[에세이109] 애 쓰지 않고 무언가를 잘 해내는 법


하루 중 가장 길게 느껴지는 시간은 언제인가요

[에세이108] 일몰을 기다리는 시간


매일 오롯이 나를 위해 사용하는 시간이 있나요?

[에세이 107] 나를 위한 작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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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저너리는 일론 머스크를 만나 인터뷰하러 가겠다고, 다 같이 우주여행을 가자며 출발한 비영리 소모임(이자 우주 먼지들의 모임)입니다. 우리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놓아 청춘들을 응원하자는 마음에서 사이드 프로젝트로 브런치와 팟캐스트로 소통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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