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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살리 Dec 23. 2020

발리 5성급 리조트에서 결혼식 준비하기

부자들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린 마침내 덴파사르 공항에 도착하였다.

둘만의 일롭먼트웨딩(Elopement Wedding - 도피식 웨딩의 새로운 웨딩 트렌드) 겸 웨딩문(Weddingmoon - 허니문+웨딩을 함께 해결하는 웨딩 트렌드)을 위해서이다.


[이전 이야기]  두 번의 결혼식과 허니문을 일주일 만에 모두 치르다.

[또 다른 이야기] 세 번의 결혼식 - Part 1. 종로구청 결혼식


초저녁쯤 도착했지만 짐을 찾고 환전을 하고 유심카드를 작동시키는 데 시간이 꽤 걸리는 바람에 공항 밖에 나와보니 벌써 어둑어둑 해져 있었다.


해외여행을 할 때, 같은 여건이면 각 나라의 자국 항공사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뭔가 여행의 시작을 좀 더 앞당길 수 있는 느낌이랄까. 기내식도 늘 먹던 거랑 달라서 좋고, 승무원들의 멋지고 특색 있는 유니폼을 구경하는 것도 재밌다.


이번에도, 인도네시아의 국적항공사인 가루다항공(Garuda)을 예약했다. 물론 이코노미 석이다. 한 번쯤은 신혼여행 때 사치를 부려야 한다고 하지만, 결혼식을 두 번이나 올려야 하는 마당에 사치를 부릴 여유가 없다. 승무원들은 매우 친절했고 인도네시아 전통의상에서 따온 유니폼도 역시나 멋졌다. 기내식도 맛있었다.


덴파사르 공항은 매우 북적거렸다. 중국인들을 포함한 아시아 사람들도 많았지만 압도적으로 많은 건 호주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서퍼와 백패커들이었다. 미국인 남편의 개인적 의견에 의하면 북미 사람들에게 발리는 그리 흔한 관광지는 아니기에 미국 사람들은 적을 것이라고 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영어 엑센트를 듣더니, 이렇게 호주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건 처음이라며 여기가 발리인지 호주인지 모르겠다며 갸우뚱거렸다.


우버를 잡아 혼잡한 발리 시내를 지나 누사두아로 향했다. 창문 밖의 거리 풍경을 보며 나에게 발리에 대한 첫 기억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내 나이 또래라면 한 번쯤은 책이든 영화로든 접했을 '먹고, 사랑하고, 기도하라.'가 나의 첫 발리에 대한 기억이다. 그 당시는 엄청나게 내 안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존재였는데 몇 년 전 다시 영화를 봤을 때 예전만큼 와 닿지는 않았다. 나는 앞으로 며칠간 여기 발리에서 더 이상 영화나 책으로써가 아닌 나와 발리와의 실제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갈 것임에 벅찼다.  


덴파사르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점점 더 거리는 한적해졌다. 얼마나 갔을 까 말도 안 되게 화려하고 웅장한 5성급 리조트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고 경비도 삼엄해졌다. 곧 우리의 숙소인 Samabe Bali Suites & Villas(*사마베 리조트)에 도착했다.


숨이 확 트이는 긴 계단이 펼쳐진 고급스러운 호텔 입구가 보이는 곳에 다다르니 직원들이 너무나 환한 미소로 우릴 맞이하며 꽃목걸이를 걸어준다. 웅장한 5성급 리조트는 잠시 우리의 기를 누르지만 편하게 행동하려 애썼다.


직원들은 우리에게 체크인을 위해 로비의 편안한 소파로 안내했다. 로비는 천장을 제외하고 정면이 펑 뚫려있었다. 실내인지 밖인지 알 수 없는 그런 곳.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웰컴 드링크를 가져온다. 따뜻한 타월과 함께 샷잔에 나란히 들어가 있는 네 잔의 코코넛 주스와 오렌지 주스, 그리고 하이비스커스 아이스 티가 1인 앞에 하나씩 나온다. 다 마시면 물배찰 것 같은 양. 잠깐의 여유를 갖게 하고는 조심스럽게 다가와서는 정중하게 우리가 예약한 방 타입과 서비스 최종금액들을 확인시킨 후 결제를 묻는다.


결제를 마친 후, 버기를 타고 우리의 숙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어둑해진 밤 리조트의 좁은 길을 덜컹덜컹 버기로 이동한다. 벌써부터 발리를 느낄 수 있는 나무와 꽃들, 리조트 곳곳에 보이는 발리 특유의 나무 목공예 조형물, 돌길, 담... 이런 아름답고 이국적인 것들 사이에서 우린 며칠 뒤 둘만의 결혼식을 올릴 것을 생각하니 설레었다. 얼마나 행복한지, 축복받은 인생인지, 큰 선물을 받는 것 같아, 순간 다 잃으면 어찌할까 그 짧은 버기를 타는 시간 천국과 지옥을 오고 갔다. 거의 우리 방 근처에 도착했나 보다. 바다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최고급 풀빌라 방 이어도 물론 좋겠지만, 바다가 보이는 허니문 스위트 방이면 우리에게 충분했다.


마호가니 색상의 어둡고 고급스러운 우드의 인테리어에 레드와 블랙의 포인트가 곳곳에 들어가 세련 감을 더해 주었다. 발리 전통적인 문양이 들어간 가구들은 이그조틱함과 '내가 지금 정말 발리에 있구나'라는 낭만을 더해주었다. 침대에 누우면 정면으로 뻥 뚫린 밤바다가 보인다. 웰컴 드링크와 메시지가 한번 더 우릴 환영해 주었다. 발리 전통 꽃다발과 함께.




왼쪽 - 로비에서 우릴 맞아주던 첫번째 웰컴드링크, 가운데 - 방에서 우릴 맞아주던 두번째 웰컴드링크, 오른쪽 - 허니문 스위트 룸

 



 Putu라는 이름의 똑소리 나고 너무나 친절한 우리의 버틀러는 방을 세심히 구경시켜주고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자기를 찾아달라 했다. 우린 며칠간 리조트에 지내면서 단지 직원이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느껴지는 착한 성심의 Putu에 감동을 받아 '착한 Putu'라 이름을 지었다. ( 현재는 사마베 리조트를 그만두었다고 얼마 전 연락을 받았는데 코로나의 영향인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Putu는 한 가지만 당부하고 방을 나섰다.


'원숭이가 있으니, 방문은 꼭 잠가두세요.' 


슬슬 저녁도 먹을 겸 그리고 우리의 이틀 뒤 결혼식이 열릴 장소를 확인할 겸 밖에 나왔다. 해변가로 걸어 나오니 사진으로 보기만 했던 꿈에 그리던 바로 그 동굴이 보였다. 종로구청 혼인신고 후 약 2년 만에 제대로 올리는 결혼식이다. 발리의 5성급 리조트에서 올릴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2년 만에 참 많은 일과 생각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전날은 어두어서 잘 안 보였는데, 다음날 아침 Putu가 손수 준비한 웰컴 데코레이션을 잘 볼 수 있었다. 우린 Putu에게 단지 이번 여행이 우리에게 허니문만이 아닌 2년 만에 치르는 두 번째 결혼식이라는 설명을 해야 했고 이틀 뒤 열릴 해변가에의 결혼식에 시간이 나면 놀러 오라 했다.

  



Putu가 정성으로 준비한 웰컴 데코레이션과 방에 놀러 온 원숭이. 바다 전경.



좋은 리조트나 호텔에 방문할 때 가장 기다려지는 이벤트 중 하나가 바로 조식이 아닐까 싶다. 중식과 석식과 비교할 수 없다. 왜 이렇게 사람들은 호텔 조식에 열광할까? 여행의 하루를 시작한다는 설렘 때문일까? 최고급 호텔에서 누릴 수 있는 작은 사치여서 일까? 잔뜩 기대에 부풀어 조식 식사가 제공되는 Rempah-Rempah(렘파렘파)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움파룸파로 이름을 외웠다) 어두울 때 보지 못했던 형형색색의 발리에 서식하는 꽃들과 녹색의 식물들이 싱그럽다 못해 사람 안 보이는 곳에서 살아 돌아다닐 것 만 같았다. 늘 서울에서 보던 우중충한 도시의 길가의 나무와 풀들과는 차원이 틀렸다. 내심 서울의 나무들과 꽃들에게 미안해졌다.








조식 장소는, 말이 필요 없었다. 입구에서 직원들은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인사하며 머리에 하얀 프랜지 파니를 꼽아준다. 햇빛이 매우 강렬했지만 실외 테라스석에 앉았다. 편안한 라탄 소파와 쿠션은 폭신했고, 카우치가 워낙 커 발을 다 올리고 있을 수도 있었다. 어제 나왔던 웰컴 드링크 샷잔에 화려한 색상의 굿모닝 드링크가 나온다. 착즙주스이다. 결혼식 전 촉촉한 피부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모두 비었다. 말도 안 되게 가짓수 많은 신선한 과일들과 음식들... 메뉴판에서도 원하는 메뉴가 있으면 시킬 수 있다.

크림으로 장식한 바나나 팬케이크, 선명한 핑크 빛 비트루트 샐러드, 코코넛 향 가득한 락사, 향긋한 냄새의 미고랭&나시고랭, 잘 익혀진 구운연어, 달달한 프렌치토스트, 부드러운 오믈렛... 리조트에 머무는 동안 매일 하루에 하나씩 새로운 메뉴를 시켜도 다 먹어보질 못한다. 결정장애가 생기는 듯했다. 심지어 배 터지게 먹고 자리를 일어나는 순간 직원들이 친절히 묻는다.


'룸에서 먹을 무언가 싸드릴까요?'





발리에서의 둘째 날이기도 한 오늘은 사실 매우 중요한 날이다.

내일 있을 우리의 결혼식 전 웨딩플래너와 사전 미팅이 있기 때문이다. 몇 달간, 이메일로만 연락을 주고받았던 나의 웨딩플래너 Risma와의 첫 대면이다.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 준비는 잘 되어있을까?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방으로 돌아가던 중, 길목에 놓여있던 나무 공예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발리 결혼식을 기억할 만한 무언가 기념품이 없을까 둘러보고 있었더니 서글서글한 인상의 아저씨가 다가와 말을 건다. 이 모든 나무 공예품을 직접 만들었다고 했다. 우리는 또 우리가 왜 여기 있는지, 허니문인 때문인지, 웨딩 때문인지 신나게 설명을 한 후 원하는 기념품을 고르고 있다고 추천해줄 만한 게 있는지 물었다. 아저씨는 한참을 고민하던 중, 남녀가 서로 끌어안고 있는 하트 나무 조각품을 들고 오더니 여기에 이름을 넣어준다고 하였다. 바로 이거다. 우리의 추억을 담아갈 완벽한 기념품이었다.




  


비치에서 한참을 놀다, 약속했던 시간이 되자 우린 Risma를 만나기 위해 로비로 향했다. 그녀는 그녀의 어시스턴트 Ratih 함께 우릴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환하게 웃는 그들에게 다가가 반갑게 인사하였다. 한 번도 직접 만나본 적 없지만 왠지 벌써 알고 있었던 것 같은 사람들. 이 낯선 휴양지에서 누군가 아는 사람을 만나는 건 너무나 반가운 일이다.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을 때는 잘 몰랐는데 실제 만나보니 그녀는 나의 또래였고 K-pop과 K-drama의 팬이었다. 그녀가 조목조목 준비해온 자료들을 함께 훑어갔다. 일이기는 하지만 너무나 꼼꼼하게 준비해 온 그녀의 정성에 감동을 받았다. 우린 장소를 옮겨가며, 여기에서 무엇을 할 것이고,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간단한 리허설을 하며 하나하나 체크를 해나갔다. 드디어, 내일 있을 결혼식에 대한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조마조마 해졌다.


활짝 웃으며 Risma가 헤어지며 밝게 인사한다.

" 그럼 내일 볼게요~ 너무 바다에서 놀다 타지 말고요~"


그렇다. 발리의 아름다운 바닷가에 정신이 팔려 잠시 생각을 못했다.

결혼식을 코앞에 둔 천방지축 예비신부 등은 벌써 탈대로 타 있었다.

(그럼 다음 편을 또 기대해 주세요~)




심하게 등이 파여있는 웨딩드레스를 입어야 한다는 걸 까마득히 잊은 지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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