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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살리 Jul 06. 2021

단무지

남편은 단무지를 좋아한다.

한국에 와서 처음 짜장면을 시켰을 때 딸려 온

단무지를 입에 넣었을 때

온몸에 찌릿 전율이 흘렀다 한다.

짜장면 맛은 낯설었지만

단무지 맛은 기가 막히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보육원에서 많이 시켜먹어서 그런가?"

남편이 혼잣말로 웅얼거렸다.

"아님 친부모님이랑 살 때 많이 먹었나?"

목소리를 키워 말을 이어간다.

"근데 짜장면은 못 먹고 단무지만 주워 먹었나 봐. 단무지 맛만 기억나거든."

농담으로 포장하기엔 단무지만큼 시큼하고 씁쓸한 남편의 농담에 

"아.... 그런가 보네...."라고 간신히 답을 하긴 했지만 가슴이 또 먹먹해졌다.


남편은 해외입양인이다.

남편은 좋은 양부모님을 만나 

별 부족함 없는 행복한 미국 가정에서 자랐기에

그의 아픈 과거는 행복해 보이는 현실에 

대부분 감추어져 있다.

남편과 함께 그 아픈 페이지를 가끔 열어볼 때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이다.  


남편은 세 살 즈음 

대구에서 신원미상의 미아로 발견되어 

미국으로 입양되기 전까지 

보육원에서 생활했었는데 

친부모의 사랑과 보호를 

절대적으로 받아야 할 

어린 나이에 혼자가 되어버렸다. 


나는 어렸을 때 무척이나 낯가림이 심했는데

특히나 남자 어른들을 매우 무서워했다.

그러나 단 한 명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던

유일한 남자 어른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짜장면 배달 아저씨였다.


주말이면 외할머니댁에 가족 모두가 모여

짜장면을 시켜먹곤 했는데

배달 아저씨가 오면 현관에 뛰쳐나가

"아~저~씨~짜장면 갖고 오셨어요~?" 라며

온갖 애교를 부려 모두를 웃게 했다.

나의 짜장면에 관련된 기억은 행복과 엮여 있었다.   


비슷한 시절 나의 남편은 저 멀리

대구의 보육원에서 혹은

고아로 발견되기 전까지

친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에서

가끔씩 찾아오는

짜장면 배달 아저씨를 기다렸을 테다.


짜장면 배달 오는 날이면 먹을 수 있는

시큼하고 찌릿하지만 한번 베어 물면 

멈출 수 없는 단무지를 집어먹으며 

그의 작은 배와 행복을 채웠겠지.


짜장면 오는 날만은 어디에 있었건

서너 살배기 남편에게도 행복하고 설레는

날이었으리라, 그렇게 믿고 싶다.


.


남편이 미국으로 입양 간 두 번째 해. 포틀랜드 집에서.
해를 거듭할수록 짜장면보다 파스타 맛에 익숙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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