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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li Aug 18. 2021

저녁 7시, 대구 병원 대합실

그날은 날이 맑았다고 한다. 

1985년 8월 8일 목요일 이른 저녁. 대구 파티마 병원. 


진료 접수를 마감하자 병원 대기실은 한산해졌다. 

면회로 병원을 방문한 사람들 사이로 앉아있는 두세 살 즈음의 한 아이가 아까부터 눈에 띄었다.

아이는 줄무늬 티셔츠에 빨간 반바지를 입고 *하이칼라 머리를 하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보호자 없이 혼자 놀고 있었는데 한참이 지나도 아이를 찾으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병원을 돌던 관계자가 아이에게 다가갔다. 


"엄마 잃어버렸니?"


아이는 힘이 빠져 보이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병원 관계자는 아이의 손을 잡고 일으켜 보호자를 함께 찾아보기로 하였다. 

저녁 7시경이었다. 


병원을 다 돌아봐도 아이의 엄마도, 친척도, 그 어떤 보호자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몇 블록 떨어져 있지 않은 신암4동 파출소에 아이를 데려다주었다. 


신암4동 파출소에는 '표'씨란 성을 가진 젊은 경찰관이 있었다. 아이가 무척이나 딱해 보였던지라 아이에게 사탕을 쥐어주며 이름을 물어보았다. 하지만 긴장돼 보이는 아이는 몇 번을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깊어가는 밤처럼 아이의 표정도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아이의 보호자는 파출소나 병원으로 찾아오지 않았다. 표 경찰관은 그리 멀지 않은 곳의 '백 백합 보육원'에 아이를 데려다 주기로 했다. 보육원에 도착했을 때 표 경찰관의 손목시계는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1987년 2월 10일. 

아이는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홀트 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의 가족에게 입양되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대구의 한 병원 대합실에 미아로 발견된 지 약 2년 3개월 남짓 지났을 때였다. 


   




남편의 입양서류를 가끔 들추어 보곤 한다. 

서류라 해봤자 몇 장 안 되는 바람에 사실 그렇게 많은 정보는 담겨 있지 않다. 그렇지만 혹시나 지나쳤을 새로운 정보를 얻을까 해서 닳도록 읽어 본다. 서류는 영어로 쓰여 있어서 읽다 보면 한국의 80년대 옛날 모습이 떠오르기보다는 빨강머리 앤 같은 외국의 옛날 모습을 잠시나마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뭉클하고 감동적인 빨강머리 앤의 장면들 대신 안타까움과 슬픔이 가득한 장면들이 곧 머릿속을 채운다. 남편은 대구의 파티마 병원의 대합실에서 발견되었다. 저녁 7시. 




Fatima Hospital. 파티마 병원


그날은 날이 맑았다고 한다. 

누군가가 네이버 블로그에 자신이 1985년 8월 8일에 쓴 일기를 올려놓았는데 날씨 란에 '맑음'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이와 헤어지려고 마음먹은 날 집을 나섰을 때 하늘이 맑았다면 그래도 한 번이라도 다시 생각을 재고해 볼 기회가 있지도 않았을까 라는 때 지난 바램을 해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소용없다. 그날은 벌써 엎어져 버린 물 같은 것이다.   


남편이 한국에 온 지 약 16년째에 접어들었지만, 지금까지 자신의 뿌리를 찾는데 별 관심 있어 보이진 않았다. 주변의 해외입양인 친구들 중에는 자신의 친모나 가족 찾기에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는 친구들도 있는데 남편은 그런 것을 볼 때도 대부분 남일처럼 대했다. 


남편은 친부모님이 제대로 된 절차를 받아 해외입양을 보낸 케이스의 다른 해외입양인들을 늘 부러워했다. 그들은 자신 같은 길고양이는 아니라며,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놓아버린 친부모와는 다르다고 했다. 


그런 남편은 자주 위로의 말들을 듣는다. 병원 대합실에 다시 돌아오지 못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친어머니나 친아버지가 어쩌면 지금까지 애타게 너를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아이를 잃어버렸다면 그래도 며칠 내라던지 언젠간 다시 병원이나 파출소로 찾아왔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 사실 자의로 버렸다는 것에 힘이 실린다. 그리고 아직까지 남편이 왜 마음을 완전히 열지 못했는지 한없이 이해가 간다. 


그렇지만 만약 자의로 아이를 버렸다 하더라도 아이와 헤어지려고 마음먹은 그날 아침 남편의 친모-혹은 친부-는 아이에게 예쁜 줄무늬 옷과 빨간색 반바지를 입히면서 분명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애써 참았겠지. 머리를 곱게 빗어주며 울지 않으려 입술을 깨물었겠지. 아이와 손을 잡고 집을 나오는 날을 되돌이키고 싶다는 후회를 그래도 한 번쯤은 했을 거라 믿는다. 부모라면 그랬을 것이다. 




Shinam 4-dong Police Dispatcher.  신암4동 파출소


인터넷에서 신암 4동 파출소를 찾았더니 지금은 없어진 것 같았다.  


어쩌다 웹페이지를 파고파고 들어갔더니 신암4동의 파출소가 신암4동 치안센터로 이름이 바뀌어 최근까지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터넷으로 옛 주소를 검색해 지도를 확인하니 정말 파티마 병원에서 옛 신암4동 파출소의 위치는 실제로 몇 블록 정도 떨어진 정도의 가까운 거리였다. 


신암4동 파출소에 대한 관련된 정보는 남편의 입양서류에는 거의 나와있지 않아, 처음엔 별 관계없는 그냥 잠시 거쳐갔던 곳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얼마 전 우린 매우 중요한 사실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우린 '대구'에 반드시 내려가 봐야 할 이유를 찾았다.  




아이가 발견된 시간 


  ' 아이는 85년 8월 8일, 저녁 7시에 발견되었습니다. (7:00pm은 병원의 진료가 끝난 시간이며, 면회만 가능한 시간입니다). 병원은 아이를 돌보며 당시 아이의 관계자를 찾으려 했으나 결국 찾을 수 없었습니다. '


닳도록 본 남편의 입양서류이지만, 이 구절은 매번 눈물 없이 읽을 수가 없다.  






*하이칼라 머리 : 머리털을 밑의 가장자리만 깎고 윗부분은 남겨서 기르는 남자의 서양식 머리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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