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단무지를 좋아한다.
한국에 와서 처음 짜장면을 시켰을 때 딸려 온
단무지를 입에 넣었을 때
온몸에 찌릿 전율이 흘렀다 한다.
짜장면 맛은 낯설었지만
단무지 맛은 기가 막히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보육원에서 많이 시켜먹어서 그런가?"
남편이 혼잣말로 웅얼거렸다.
"아님 친부모님이랑 살 때 많이 먹었나?"
목소리를 키워 말을 이어간다.
"근데 짜장면은 못 먹고 단무지만 주워 먹었나 봐. 단무지 맛만 기억나거든."
농담으로 포장하기엔 단무지만큼 시큼하고 씁쓸한 남편의 농담에
"아.... 그런가 보네...."라고 간신히 답을 하긴 했지만 가슴이 또 먹먹해졌다.
남편은 해외입양인이다.
남편은 좋은 양부모님을 만나
별 부족함 없는 행복한 미국 가정에서 자랐기에
그의 아픈 과거는 행복해 보이는 현실에
대부분 감추어져 있다.
남편과 함께 그 아픈 페이지를 가끔 열어볼 때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이다.
남편은 세 살 즈음
대구에서 신원미상의 미아로 발견되어
미국으로 입양되기 전까지
보육원에서 생활했었는데
친부모의 사랑과 보호를
절대적으로 받아야 할
어린 나이에 혼자가 되어버렸다.
나는 어렸을 때 무척이나 낯가림이 심했는데
특히나 남자 어른들을 매우 무서워했다.
그러나 단 한 명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던
유일한 남자 어른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짜장면 배달 아저씨였다.
주말이면 외할머니댁에 가족 모두가 모여
짜장면을 시켜먹곤 했는데
배달 아저씨가 오면 현관에 뛰쳐나가
"아~저~씨~짜장면 갖고 오셨어요~?" 라며
온갖 애교를 부려 모두를 웃게 했다.
나의 짜장면에 관련된 기억은 행복과 엮여 있었다.
비슷한 시절 나의 남편은 저 멀리
대구의 보육원에서 혹은
고아로 발견되기 전까지
친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에서
가끔씩 찾아오는
짜장면 배달 아저씨를 기다렸을 테다.
짜장면 배달 오는 날이면 먹을 수 있는
시큼하고 찌릿하지만 한번 베어 물면
멈출 수 없는 단무지를 집어먹으며
그의 작은 배와 행복을 채웠겠지.
짜장면 오는 날만은 어디에 있었건
서너 살배기 남편에게도 행복하고 설레는
날이었으리라,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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