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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은 Jun 27. 2020

조용히 밝은

햇빛을 쬐는 것처럼 그 밝음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페 단골손님 중에는 청각 장애를 가진 가족이 있다. 아빠와 엄마, 고등학생 아들 한 명이다. 매번 한 명씩 카페에 와서 가족인 줄 모르다가 아들과 엄마가 아빠 이름이 적힌 쿠폰을 내미는 바람에 알게 되었다. 나는 그들이 오면 안녕하세요~를 외치며 간만에 고개도 같이 꾸벅인다. 코로나 이후로 마스크를 쓰고 일하다 보니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있으면 인사한 줄도 모를 것 같아서다. 그들은 미리 메모장에 메뉴 이름을 써놨다가 보여주는데, 보통 아메리카노 아니면 레몬에이드다. 요즘은 손짓만으로도 아메리카노인지 레몬에이드인지, 기본 사이즈인지 사이즈 업을 하는지 물어보고 답할 수 있게 됐다.


한두 잔만 주문한 손님들은 서서 기다릴 때가 많다. 그래서 굳이 진동벨을 주지 않기도 하는데 이 손님들에게는 1분에서 2분 만에 만들어 줄 수 있어도 꼭 진동벨을 준다. 그들은 앉아서 기다리는 동안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 누군가와 화상통화를 하거나 밖을 내다보고 있다. 꼭 쥔 손에 진동이 느껴지면 벌떡 일어나 음료를 가지러 온다. 누군가의 귀에는 시끄럽게 느껴지는 진동벨이 누군가의 손에서는 쓸모를 다한다.     


이 단골손님들이 들어오면 내심 반갑다. 수화는 못하지만 재빠르고 명확하게 눈짓과 손짓을 주고받을 준비를 한다. 마스크를 쓰기 전에는 입모양을 정확히 하는 게 도움이 됐는데, 요즘은 할 말이 길어지면 빠르게 메모를 해서 보여준다. ‘주문이 밀려서 오래 기다리셔야 돼요ㅠㅠ’ 그들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 앉는다. 그들과 편하게 의사소통을 한 것 같은 날에는 괜히 기분이 좋다.      


나는 장애를 가진 사람을 편안하게 대할 줄 모른다. 배려심과 동정심을 잘못 사용할까 봐 겁이 나서 이것도 저것도 못할 때가 많다. 그런데 청각장애인은 조금 편안하게 대할 수 있다. 내 친구 부모님이 청각장애인이기 때문이다. 두 분 모두 청각장애인이지만 내 친구는 나와 똑같다. 아니, 내가 사람 말을 못 알아들으니까 나보다 귀가 밝을 확률이 높다. 걔와 친하게 지내면서 부모님을 자주 뵀는데 입모양을 잘 읽으시고, 어느 정도 발음하실 수 있어서 수화를 하지 않고도 우리는 밥을 먹고 얘기하며 웃었다. 걔네 가족이랑 있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자꾸 관찰을 하고 있었다. 처음엔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는지 궁금해서 지켜보다가 나중에는 이 가족에게서 느껴지는 밝음을 구경하느라 그랬다. 왜 밝을까? 하는 생각은 언젠가부터 하지 않았다. 햇빛을 쬐는 것처럼 그 밝음을 바라보고 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내가 장애인이라면 어떨까? 생각해볼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안대를 쓴다거나 귀마개를 해보는 체험을 하고 느낀 점을 쓰기도 했다. 그런 체험은 오히려 나의 잘 보임과 잘 들림을 생생히 느끼게 했다. 내 삶에서 장애는 점점 더 비현실적 이어졌다.


그런데 걔가 내 친구인 덕분에, 나는 ‘장애인의 가족은 어떨까?’ 처음으로 고민해보았다. 학부모 상담 때, 체육대회나 학예회 때, 친구들에게 가족을 소개할 때 어떨지를 상상해 본 것이다. 그건 이상하게 너무 현실적이어서 어려운 상상이었다. 내 귀가 안 들리고 내 눈이 안 보이는 걸 상상하는 것보다도 힘들었다. 그 상황들에 나를 대입해보다가 다시 내 친구를 대입해봤는데 걔의 마음이나 표정을 쉽게 헤아릴 수가 없었다. 걔는 많은 면에서 정말 밝고 부드럽고 넓고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장애인 가족이면 무조건 슬프고 힘들 것인데, 그 예상 밖을 예상해야 돼서 힘든 게 아니었다. 나라면 무척 어렵고 힘들었을 것 같아서. 그런 내 마음이 너무 확실해서 걔의 어떤 마음도 나는 그려 볼 수 없었다.

    

요즘은 오지 않지만, 카페에서 아르바이트생이었을 때에 청각장애인 손님이 단체로 자주 왔었다. 하루는 여덟 명도 넘는 친구들이 다같이 들어왔다. 여섯 명 단체석에 여기저기서 의자를 끌어다가 앉아야 했다. 주문한 음료를 가져다주는데 테이블 가운데에 케이크가 꺼내져 있었다. 무리 중 한 명의 생일이었던 것 같다. 외부음식을 먹으면 안 되지만 카페 안에 그들만 있어서 상관없을 듯했다. 마감이 30분 정도밖에 남지 않은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생일 축하노래는 부르지 않고, 조용히 케이크 촛불을 켰다. 생일의 주인공은 그 불을 후 하고 불었다. 그리고 다같이 박수를 치며 웃었다.


나는 그들에게 접시와 포크를 가져다주었다. 그들은 크게 한 조각을 잘라 다시 내게 건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생크림케이크였다. 마감을 하면서 나도 그들도 케이크를 야금야금 먹었다. 마감을 하는 동안 내가 커피머신을 청소하고,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돈통을 여닫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가끔 동작을 멈추면 그들의 웃음소리와 피부끼리 퍽퍽하고 닿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나는 청소하다 말고 한 번씩 그들을 구경했다. 그들은 한 번도 내 쪽을 쳐다보지 않고 파티를 즐겼다. 그러다 마감 청소가 거의 끝나갈 무렵 시끌벅적하게 일어나 쓰레기와 접시를 모아 건네고 나갔다.      


이미 퇴근할 시간이 지났지만 그들이 남기고 간 여운 때문인지 피곤하지 않았다. 느긋하게 접시에 묻은 생크림을 휴지로 닦아내며 그들의 조용하고도 시끄러운 파티를 생각했다. 그들은 있는 내내 많이 웃었고 활발했다. 그들은 밝다. 그들은 당당하다. 어쩌면 표정과 몸짓이 커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그들이 하는 말을 하나도 해석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내 마음대로 그들을 상상하다 포기한다. 어쩌면 내가 이 정도여서 그들을 편안하게 대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조용한 카페에 설거지하는 소리만 들리니 여러 가지 생각이 나를 지나쳐갔다. 나를 당당하지 못하게 하고, 웃지 못하게 만드는 말들도 떠올랐다. 누군가 못 듣는 것을 나는 듣고 있지만 그 날은 딱히 그것의 이득을 가늠하고 싶지는 않았다. 차라리 조용히. 물소리만을 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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