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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은 Jul 15. 2020

마이 팔로워

내가 자기들을 맞팔로우 했는지가 그들에겐 딱히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친구는 어떻게 사귀는 거지? 요즘은 친구 사귀는 법은커녕 친구가 뭔지도 잘 모르겠다. 오래전부터 내 친구 목록이 업데이트되지 않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미 친구인 사람과 친구였다가 아니게 된 사람과 원래부터 아닌 사람이 있을 뿐이다.     


친해지는 능력이 없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말을 잘 걸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사람이든 몇 번 본 사람이든 먼저 말 거는 게 어렵지 않다. 아르바이트를 오래 했던 레스토랑에서는 새로운 알바생이 들어올 때마다 나를 쿡쿡 찔러댔다. 같은 방법으로 나랑 친해진 애들이 “야 네가 가서 빨리 말 걸어봐~ 너 잘하잖아.”라고 하거나 사장님이 나서서 “다은아. 오늘 신입 교육은 네가 좀 해줄래?”하고 부탁하는 식이었다.


학교에도 아르바이트하는 곳에도 교회에도 친한 사람은 늘 있었다. 우리는 몰려다니고, 단톡방을 파고, 늦은 밤에 만나 치킨도 자주 먹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이사를 하면서 친한 사람들은 결국에 멀어졌다. 보려고 작정하지 않아도 보고, 만나려 날을 잡지 않아도 만났던 사람들이었는데, 이제는 작정하고 날을 잡아야 했다. 나는 친화력은 좋지만 작정은 못하는 사람이었다. 단톡방에서 계속 떠들면서 약속을 잡고 어디로 놀러 가고 자주 만나고 업데이트된 소식을 공유하는 게 힘들고 귀찮았다. 그럴 필요도 별로 느끼지 못했다. 즐거움도 물론 있었지만 그것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나 노력이 버거워 나가떨어졌다고 할까. 친한 사이를 이어나갈 체력과 끈기가 없다. 내 가장 가까이에 누구보다 잘 맞고, 재미있고, 얘기할 거리가 끊이지 않는 다혜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느새 저 아래로 내려가 부활할 기미조차 없는 단톡방이 수두룩하다. 그 애들도 나처럼 나가떨어진 걸까, 생각하며 삭제하거나 퇴장하지도 않고 그냥 두었다. 그러다 SNS에서 몇 명의 애들이 모인 사진을 발견하고부터는 어쩌면 단톡방이 죽은 게 아니라 새로 태어난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친구가 아닌 사람들이 사진에서는 친구처럼 보였다. 친구라는 건 친화력 보단 지구력 있는 사람에게 걸리는 메달인 듯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누군가와 친구가 되는 일에 무기력해졌다. ‘이 사람과 나중에도 만나고 있을까? 우리가 친구가 될까?’ 친해지는 동시에 의심을 한다. 나를 향한 의심이다. 이번에도 노력하지 않을 것 같다는 자포자기이기도 하다. 수학이 어려우니 더 이상 노력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수포자처럼. 나는 그렇게 친포자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다가 유난히 지구력이 빛나는 사람을 만나게 될 때가 있는데, 나는 그들 가운데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오지랖이 태평양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중에는 친구가 아주 많은 사람도 있고, 적은 사람도 있지만 그들에게 ‘얕은’ 관계는 없는 듯 보였다. 넓고 깊든가, 좁고 깊었다. 자신의 친구에게 쏟아붓는 관심의 양과 질이 대단했다. 친구의 아픔과 슬픔, 기쁨과 행복, 걱정거리를 아주 살뜰히 챙겨주는데 옆에서 구경하는 내 체력만 방전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면서 ‘이런 사람이 내 친구가 되어주면 좋겠다...’고 탐을 낸다. 오래전 중고등학생 때나 대학생 때, 아니 내 나이 스물넷 까지도 이런 사람을 만나면 나는 편지를 썼다.


‘내가 연락 잘 안 하고 잊을 만하면 만나자고 해도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알지? 네가 먼저 좀 해줘. 나랑 친구로 지내줘! 제발!’


마음을 담아 꾹꾹 눌러썼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를 친구로 여겨 달라고 간절히 부탁한 것과 다름이 없다. 정작 나는 ‘내가 널 ‘친구로 등록’할지는 잘 모르겠어... 왜냐면 난 그거 잘 못 하거든..‘이라는 말도 안 되는 태도를 취하면서 말이다.

     

 인스타그램에는 ‘팔로워’와 ‘팔로잉’이라는 개념이 있다. 팔로워는 나를 친구로 등록한 사람, 팔로잉은 내가 친구로 등록한 사람을 의미한다. 친구로 등록하는 행위를 ‘팔로우’라고 한다.  ‘내가 선팔(로우) 할 테니 맞팔(로우) 부탁드려요.’라는 댓글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인스타그램의 ‘팔로우’는 서로가 동의해야 친구가 되는 페이스북의 ‘친구 추가’나 싸이월드의 ‘일촌 추가’와 다르다. 일방적으로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는 쿨하게 이루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일방적인 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중에는 누구보다 뜨겁게 우정 혹은 애정을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누르고 메시지를 보내면서 말이다.


친포자가 된 이후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날 팔로우해주기를 바라 왔던 것 같다. 내가 반응이 없어도, 받은 걸 똑같이 돌려주지 않아도 날 친구로 등록해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때론 쿨하게, 때론 뜨겁게! 그러나 이 사실을 나만 몰랐지, 그들은 알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정말 충실한 팔로워처럼 나를 대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바쁜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매니저로 일하는 친구 최는 쉬는 날에 내가 사는 동네까지 찾아온다. 만 원 가까이 돈을 내며 택시를 타고 오는데 나는 그 가격만 들어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 괜히 버스를 타고 오라고 타박한다. 그럼 걔는 “힘들어서 버스 못 타~ 난 이러려고 돈 버는겨~”라고 말한다. 걔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돈 버는 이유가 굉장히 확실한 사람이다. 돈을 모아야 할 장기적이고 커다란 목표가 하나 있는데도 최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라고 한다. 특히 친구를 위해 쓰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 덕분에 내 작은 원룸에는 최가 준 크고 작은 선물들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특별한 날도 아닌데 직접 만든 케이크와 꽃다발을 이고 지고 오는 애다. 팔로워를 넘어서 내 팬이라고 해도 기분 나빠하지 않을 거다.


팬이라고 하니 생각나는 또 한 명의 친구가 있다. 모는 나와 별로 안 친했었는데 내가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2016년부터 팬을 자처하다가 친구가 되었다. 첫 책을 내기 위해 출판사와 미팅이 있던 날, 모는 청주에서 나를 태워 서울까지 운전해 갔다. 미팅 중에는 뻘쭘하고 어색해하는 나 대신 나를 어필해주었다. 모는 몇 년째 내가 써준 이름 시를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해놓는다. 모를 보고 있으면 내가 친구를 사귀는 버릇이 잘못 들어도 한참 잘못 들었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버릇없는 탕자처럼 어느 날 문득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깨달음을 얻고, 나는 모에게 조금이라도 먼저 연락하려고 노력한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친구도 있다. 나보다 열두 살, 열다섯 살이 많은 부부다. 어느 달에는 그 집에서 먹고 자고 논 날이 내 집에서 그런 날 보다 많은 적도 있다. 특별한 날엔 특별해서 밥을 차려주고, 하나도 특별하지 않은 날엔 잘 챙겨 먹고 다녀야 일상에 힘이 생긴다며 밥을 차려주는 분들이다. 요즘은 일주일에 한두 번 보는 게 다지만, 아직도 나를 확신하지 못하겠는 날엔 그들을 찾아간다. 알고 지낸 2년 동안 내가 가장 애쓴 것은 그들이 베푸는 친절과 격려와 걱정과 물질을 당연시하지 않는 것이었다. 당연하게 주는 걸 잘하는 사람들이라서 내 쪽에서 정신을 차려야 했기 때문이다.

(말하고 보니 그들이 마치 사기꾼처럼 읽힌다.)


친구가 무엇인지, 친구를 어떻게 사귀는지 모르겠는 나여도 이 사람들이 나를 친구로 여겨준다는 사실만은 안다. 이 사람들은 어째서 한결같이 내 곁에 있을까. 어떤 때는 신나 달리다가도 금방 지쳐 멈추는 변덕스러운 나. 언제든 가장 안전하고 안락한 동굴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나인데. 내 옆에서 그들은 매번 바라는 건 없다는 표정이다. 자기들이 좋아서 하는 거라고 말한다. 내가 자기들을 맞팔로우 했는지가 그들에겐 딱히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들을 보고 따라 한다. 배우고 싶은 것은 우리가 친구가 되는 법이 아니라 내가 너를 친구로 여기는 법이다. 나의 팔로워들이 이 분야에서 너무나 전문가라서 다행이다. 나 또한 그들의 팔로워이기 때문이다. 나는 금세 그리고 지속적으로 게다가 공짜로 이 값진 우정을 배우게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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