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네 고향이 어디니?" 하고 묻는다면 나는 "아스팔트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는 어려서 여러 지역을 떠돌았다. 목회자인 아버지의 직업상의 문제로 우리 가족은 늘 떠돌아야 했다. 그래서인지 고향이라 부르기에 마땅한 곳이 없다. 하지만 고향이라 부르고 싶은 장소들은 있다.
먼저 마산의 장군천 부근이다. 장군천을 낀 마을은 산 위에까지 연결된다. 유역이 좁은 장군천 주위론 잎 많은 버드나무들이 여름날 땀을 말리듯 잎을 내어 놓고 있다. 언덕 위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 생기가 돈다. 내가 5살 때 콩나물을 팔던 아주머니는 지금쯤 할머니가 되어 있을 것이다. 장군시장의 많은 아주머니들이 그러하리라.
두 번째, 함안의 칠원천 부근이 그렇다. 칠원천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모르지만 내가 17살 때 살던 아파트 앞으로 흐르고 있었다. 하천은 길이 2km의 공장단지를 따라 흐른다. 공장단지를 지나서도 하천은 흘러가는데 어디까지 이어지는지는 알 수 없다. 내가 기억하는 건 공장단지와 집들이 나무처럼 우거진 그 주변이니까.
공장단지에서 나오는 오물냄새와 그 지역 주변에 발생하는 짙은 안개는 하천 주위를 우울하게 한다. 그런 와중에 칠원천 주변으로는 수풀이 우거지고 나무가 자라고, 각종 들꽃들이 피어난다. 그중에서도 가장 도드라지는 것은 샛노란 황하이다. 샛노란 황하를 보며 강을 따라 내려가노라면, 청둥오리들과 물새, 백로들이 보인다.
청둥오리들은 수풀과 갈대 사이에서 놀다가, 고개를 거꾸로 박고 물을 마시기도 한다. 강가 바위 위에 서 있던 백로는 갑자기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기도 한다. 그런 풍경이 2km쯤 펼쳐진다. 주변 풍경은 공장에서 강가 주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로 도중에 바뀐다.
강을 소개하고자 이 글을 쓴 건 아닌데, 어찌하다 보니 강의 소개가 길어졌다. 또, <월든>에 등장하는 호수나, 경북 울진 쪽에서 보는 동해나 정동진의 바다, 이 정도가 내가 고향으로 삼고 싶은 곳이다. 그 외에 내 대부분의 기억을 차지하고 있는 곳은 <시장통>, <아스팔트>, <아파트> 정도이다.
내가 고향으로 기억할 수 있는 곳이 이 정도뿐이 되지 않는다는 것에는 어느 정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많은 아이들이, 고향이 어디인지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할지도 모른다. 녹지 조성을 위해 아파트를 철거하는 것이 쉬울까? 아스팔트를 깔고 아파트를 짓기 위해 녹지를 없애버리는 것이 쉬울까?
이 질문이 유효한 현안임에는 틀림없다. 이대로 가다간 아이들이, 녹지를 기억하는 일이 급격하게 사라질 것이다. 녹음 진 나무들과, 우거진 풀숲, 벌레들과 곤충들, 숲과 새들의 노래, 숲으로 들어오는 햇살 등은 마치 전시대의 유구한 유물과 같이, 책 속의 기록이나 사진 속의 기록에서만 기억되고 추억될 것이다.
누군가 “네 고향이 어디니?”라고 묻는다면, 나는 <강>이요, <호수>요, <바다>요 라고 대답할 것이다. 물론, 강가나, 바닷가나, 호숫가에 살아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나는 장군천이 그립다. 또 칠원천이 그립다. 그곳들에서 살았던 기억이 어떤 것인지 와는 상관없이, 그곳들이 그립다. 공장이 있을지언정, 나무와 수풀이 무성했던 그곳이 그립다. 각종 새들과 곤충들이 아직 자유롭게 날아다녔던 그곳이 그립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는, 내가 움직여야만 하는 곳 대부분에서는 그러한 자연을 보기 어렵다. 따라서 관찰할 수도 사색에 잠길 수도 없다. 난 기껏해야, 아파트 주차장에 자라난 나무들이나, 아파트 뒷산을 자연으로 취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