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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이유식을 100일 동안 직접 만들어 오며,

너를 먹이는 일이 곧 너를 사랑한다는 말과 같을 수 있구나

by 옫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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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데이 달력을 보니,

이유식을 시작한 지도 100일이 넘었다.

특히 내 경우 180일대부터 3끼 이유식을 시작했으니, 더 감회가 새롭다.

그리고 3끼 이유식 모두 직접 하나하나 다 손질하고 만들었다.

시판이나 냉동 큐브 없이 약 60가지에 가까운 식재료가 내 손을 거쳐 아가의 입으로 들어갔다.


모유수유는 얼렁뚱땅 시작해, 약 9개월 가까이 완모(완전 모유수유)를 해왔지만.

이유식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처음부터 포포(아기 태명)의 이유식은 전부 내가 만들겠노라 다짐했다.

사실 크게 거창한 이유는 없고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시판보다는 직접 만드는 홈메이드가 포포에게 더 건강할 것이라 생각했고-때마침 육아휴직 중이었기에 시간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하나는 별다른 이유 없이 포포에게 그저 요리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요리의 '요'도 모르던 내가, 칼이 무서워 아직도 과일 하나 제대로 못 깎는 내가,

결혼과 동시에 집밥에 진심인 캐릭터가 되었고, 인스타그램으로 '집밥' 관련 부계정을 파서 활동할 정도였다(임신 및 입덧으로 계정은 죽었다ㅠ).

요리를 하게 된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남편에게 건강한 집밥을 해주며 사랑을 표현하고 싶어서.

이유식 역시 같은 맥락이다. 요리라는 수단을 통해 사랑을 전하고 싶었다.


아기 이유식 3끼를 직접 만들어 먹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모든 엄마들의 우상인 태하 엄마도 시판 이유식을 썼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정성스럽게 고른 식재료가 일련의 과정을 거쳐 음식이 되어 아가 입으로 들어가고, 심지어 잘 먹어주었을 때의 행복은 마약과도 같았다, 모든 고통을 잊게 하는.

실제로 포포는 잠시 몸무게 정체기였었는데 이유식 3끼 시작과 함께 몸무게가 쭉쭉 늘었다.


잘 먹어주는 모습 하나면 모든 수고스러움이 싹 잊혀졌고, 그저 행복했다.

물론 잘 안 먹어줄 때도 있었고 너무도 더럽게 어지럽히며 먹을 때도 많았다. 속에서 울분이 차올라 창문을 열고 고성을 지르고 싶은 순간도 꽤 있었다.

그럼에도 내 새끼가 내가 만든 음식이란 걸 먹는다,는 그 사실 하나면 사르르 녹아버리는 것이었다.


식재료 하나하나 알레르기 테스트가 조금씩 끝나가고,

이제는 제법 요리다운 요리도 해주고 있다, 이를 테면 파스타나 리조또 같은.

자기주도이유식은 아직 꿈도 못 꾸고 있지만, 제철 식재료가 들어간 요리를 해주는 기쁨이 상당하다.

오늘은 마트에서 살아있는 새우를 손질해서 입에 넣어주었다. 대하(大蝦)의 대하(大河)

나와 남편이 먹는 식재료를 우리 아가도 먹는다는, 그 뻔하고도 당연한 명제가 기적 같이 느껴진다.

너를 먹이는 일이 곧 너를 사랑한다는 말과 같을 수 있구나를 실감하는 요즘이다.


나는 맛있는 걸 먹을 때 무척 행복해진다.

그 역치가 심지어 높지도 않아서, 일상에서 작고 잦게 행복해지는 편이다.

그리고 우리 아가도 그랬으면 좋겠다.

지치고 작아지는 날에 내가 해주는 혹은 누군가 해준 맛있는 한 끼를 먹고 힘을 충전했으면 좋겠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해질 때면 제철에 나오는 신선한 식재료를 먹으며 계절의 변화를 누렸으면 한다.

그래서 포포가 음식을 먹기 시작하는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내겐 중요하게 느껴진다.

다양한 식재료, 여러 요리, 다채로운 맛 그 모두를 하나하나 알려주고 싶다.

굉장히 놀랍지, 포포야. 하면서.


포포는 최근 내가 만든 블루베리바나나머핀과 양송이수프 그리고 단호박리조또를 먹고 발을 동동 굴렀다.

그동안에도 잘 먹어주고 있다고 생각했요리를는데, 확연히 다른 리액션을 보니 그저 웃기다.

요리를 해주고 있다는 자기만족감도 물론 크지만,

이처럼 내 세상 가득 채워주는 아가의 리액션은 감히 거대한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더 많이, 더 자주 웃게해주고 싶어서

오늘도 육퇴 후 어떤 메뉴를 만들어 줄지 기쁜 고민 중이다.

물론 지금은 회사 일을 하지 않고 있는 휴직 중이라 가능한 에너지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다시 회사로 돌아가 일을 하더라도, 포포를 위한 마음과 에너지는 꼭 쓰고 싶다.

그리고 그 에너지가 쓰일 곳은 음식,이었으면 한다.


포포야,

너의 첫 번째 가을을 더 맛있게 만들어 줄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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