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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大蝦)의 대하(大河)

사랑의 기억이라는 하나의 강 줄기를 따라서, 받은 사랑을 오롯이 주는

by 옫아

9월, 가을이 왔다.

가을이 오면, 뒤에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풍요로운 단어들.

그 중 하나를 건져 올리자면 나는, '대하(大蝦)'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학부시절 2학기가 시작되면 흔히들 이야기하는 '대하철'도 함께 시작되었다.

팔딱팔딱 뛰는 대하를 소금구이로 해먹으면 어찌나 달고 맛있는지.

대하,하면 생각나는 크게 두 가지 기억이 있다.


첫번째 기억.

대전에 계신 부모님께선 '이번 주말에 대하구이 준비해놓을게'라는 말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나를 부르셨다. 이에 나는 개강주 금요일에 설렌 마음으로 터미널로 달려가 대전으로 향하는 고속버스를 탔던 기억이 있다. 집에 가면 아빠가 인근 수산시장에서 꽃게랑 새우를 잔뜩 사가지고 오셨고, 가족이 다같이 배불리 먹었다(갑각류 알레르기가 있던 남동생을 제외하고). 그렇게 받은 사랑으로 다시 서울에 올라와 한 학기를 열심히 살았다.


두번째 기억.

4학년 2학기, 대학시절의 마지막 학기를 앞둔 때였다. 취업 준비와 기타 여러가지 이유로 잔뜩 지친 내게, 함께 맛있는 대하구이를 먹자며 친구 서현이 데이트를 제안했다. 제철이면 어떤 걸 먹어야 하고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를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는 친구였기에-이를테면 여름에는 오이 마사지를 해줘야 하고, 봄에는 응봉산 개나리를 보러가야 한다며 매번 나를 기꺼이 계절의 만끽 속으로 초대해주었다-신나게 따라갔다. 새우 한 겹 한 겹 까먹고, 머리구이까지 기깔나게 해먹으니 입 안으로 가을의 낭만이 들어온 듯 했다.


이 두 가지의 강렬한 기억은 곧 사랑의 기억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가족의 끈끈한 사랑과 함께 낭만을 아는 친구의 찐한 우정의 사랑까지, 대하를 생각하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2025년 계절은 다시 돌고 돌아 대하철을 맞이했다.

이번 대하철을 맞아, 나는 나의 아기 포포(9개월)에게 대하를 조리해주기로 결심했다.

미니새우를 통해 알레르기 테스트를 마친 후, 동네 하나로 마트에서 가서 생새우 500g을 사왔다.

사오고 나서 바로 찜기에 넣고(뚜껑을 닫지 않아 새우가 사방으로 튀었고, 나는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으며 남편은 새우를 잡다가 찔리기도 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다시 구웠다, 이는 사장님이 알려준 '맛있게 먹는 방법'이었다. 아무리 아기라고 해도 찐 것만 주는 것보다는 한 번 찌고 구운 다음에 올라오는 새우의 맛을 알려줘야한다는 취지였고 격하게 공감하며 철저히 따랐다.


새우를 굽는 동안, 한쪽에서는 새우 대가리만 모은 팬에 버터를 넣고 볶았다.

맥주를 찾는 나를 위해 남편은 기꺼이 모자를 눌러쓰고 편의점에서 무알콜 맥주를 사다주었다.

포포에게 일부 먹여보았는데, 눈이 휘둥그레해지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정말이지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우리 입에도 이렇게 달고 맛있는데 대하를 처음 먹어보는 9개월 아가에는 얼마나 강렬한 맛이었을까!


생새우를 직접 사고 손질하고 먹이는 과정은 조금 번거로운 과정이다.

그럼에도 굳이 생새우가 맛있는 시기를 기다리고, 마트에 가서 직접 보고 사고, 두 번의 조리 과정을 거친 다음 껍질을 하나하나 까서 입에 넣어주고 싶은 내 마음은, 사랑을 가득 받았던 지난 시간이 주는 힘인 것 같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사랑의 기억이라는 하나의 강 줄기를 따라서, 나 역시 받은 사랑을 오롯이 전해주고 싶어진다. 대하(大蝦)의 대하(大河)같은 것이겠지.


포포가 더 커서도 대하철이 되면, 지금 같은 마음으로 포포 입에 그 모든 수고스러움이 가벼이 생각될 정도로 단 사랑을 입에 넣어주고 싶다. 내가 그러했듯 포포 역시 그 사랑을 누군가에게도 줄 수 있으면 더 좋겠다. 새우 하나에도 그간 내가 받은 사랑의 기억을 자연스레 떠올리듯, 우리 포포 역시 나와 함께한 깊고 기쁜 추억들을 잔뜩 떠올릴 수 있도록, 성실히 사랑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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