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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양희 Apr 10. 2024

나의 스승을 찾아서

과학자와 종교인


  선생(先生)은 한자어로 먼저 선, 태어날 생을 써 ‘먼저 난 사람’이지만,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학식과 덕이 높은 자에게 사용되는 칭호였다. 오늘날 나는 학식도 덕도 높지 않지만 ‘이선생’으로 불린다. 직장 내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호칭으로 선생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선생인 요즘, 누가 진정한 스승으로서 선생이 될 수 있는가 생각해 보았다.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선생님이 있는가. 솔직히 말하자면, 나에게 그런 선생님은 없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총 12명의 모든 담임 선생님과 나에게 각자의 전공과목을 가르쳐주신 중등교육 선생님들 모두가 떠오르지만 그들 중,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만한 영향력을 끼쳤다거나, 세상을 보는 다른 시각을 전해 주신 분은 없었다. 직업인으로서 충실히 자신의 역할을 다했던 사회인들이 존재할 뿐,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자신의 온 힘을 다해 도움을 주는 선생님을 만나지는 못한 거다. 참 스승, 참된 선생님의 부재는 내 상황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극복하거나 타계해 나가야 하는 어려움과 장애물을 가진 학생이 아니었다. 부자는 아니지만 부족함도 없었던 가정에서 엄마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화목함을 양분 삼아 별 생각, 별 걱정 없이 유년기를 보냈다. 내가 마주했던 숙제라면 그야말로 학교에서 주어진 숙제와 시험뿐이었다. 공부만 하면 되는 환경, 그 당시 나에겐 고민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으나 어른이 되어 잊은 지 오래인 지금. 어른의 눈으로 본 나는 행복한 어린이이자 청소년이었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평소에는 친구들과 놀고, TV를 보다가, 심심하면 책을 읽고, 시험기간에 바짝 공부하면 되었다. 선생님들의 존재는 지식을 전달해 주는 사람이자,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잘 보여야 하는 사람 그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 선생님들 중에는 선생님이 되면 안 되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2학년 때까지는 국민학교를 다닌 88년 생. 2학년 때 담임은 최진영(가명)의 멱살을 잡고 2층 교실 창문 밖으로 내던지려는 시늉을 했었고, 3학년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이 공부하는 교실에서 담배를 피웠었다. 4학년 때 음악선생은 단소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른 아이의 단소를 뺐어 내 정수리를 가격했고, 중학교 2학년 때 기계체조를 전공했다던 40대의 노처녀 무용선생은 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다는 이유로 박자를 맞추는 스틱으로 아이들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아이들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은 채 자신들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선생님들. 그때도 이해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더욱더 자격 미달인 그들이 꽤 괜찮은 직업인들 사이에 끼여 있었다. 물론 좋은 선생님들도 계셨다. 목표로 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들은 실업계에서 인문계로 전환한 첫 회 입학생인 우리들을 위해 적어도 이 주에 한 번씩 야자감독을 하셨다. 10시까지 회사에 있어야 한다니. 야근 수당을 받는다 해도, 자신의 저녁시간을 희생해야 하는 그들의 노고에 감사할 따름이다. 특히 담임을 맡았던 선생님들은 얼마나 고생이셨는지 모른다. 막 부임한 젊은 날의 선생님은 어느덧 중년이 되어 있었고, 청소년이던 나는 삼십 대 중반이 되었다. 지난달, 고 3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반가운 전화에 옛 생각이 두둥실 밀려왔다. 그는 그 당시 우리에게 쏟았던 열정만큼 요즘 학생들을 지도하기가 어렵다고 고백했다. 오늘날 몇몇 내 친구들이 직업인으로서 선생님이 되고, 그들에게 부여되는 가르치는 역할 외 막중한 업무들을 생각해 보면, 선생님에게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삶을 관통하는 지혜를 전하는 선생님을 학교에서 만나진 못했어도, 나에겐 책과 미디어를 통해 만난 선생님들이 존재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세계의 훌륭한 선생님들을 집안에서 만날 수 있는 세상을 선물했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니 실로 감격해서 만세를 부르고 싶을 정도다. 그로 인해 발생한 정보와 가치의 홍수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가도 저 앞에서 열심히 깃발을 흔들고 있는 선생님들이 계셔서 올바른 방향으로 헤엄쳐 나갈 수 있다.

  요즘 내가 사랑하는 선생님 한 분은 학창 시절 국어 교과서의 비문학 지문 ‘황소개구리와 우리말’로 처음 만난 최재천 교수님이다. 생태학자, 생물학자인 그는 자연 생태계가 작동되는 원리를 인간사회에 적용하여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며 공생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황소개구리와 우리말‘은 황소개구리 같은 외래종을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외국어에 빗대어 표현하며 우리말, 우리 생태계를 지키고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글이었다. 그 비유적 표현이 너무나도 찰떡같아서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글의 제목을 기억하고 있다. 과학자와 문학가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던 나에게 글 쓰는 과학자가 너무나도 생소했던 것이다. 최재천 교수를 알게 된 이후, 나는 그의 책 여러 권을 찾아 읽고, 뉴스로 그의 행보를 확인했으며, 강의들을 찾아서 듣기 시작했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고자 하는 통합 학문 이론으로써의 ‘통섭(Consilience)’은 그가 과학의 대중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해 힘쓰며 강조했던 부분이다. 그가 정부를 설득해 국립생태원을 기획, 설립하고 초대원장으로 활동했던 것 역시 생태학의 과학 학문 내 소통과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발 벗고 나섰던 결과였고, 취업준비를 하던 나는 기관장에 반해 국립생태원에 원서를 집어넣었더랬다. 결과는 낙방이었지만 말이다.

  요즘 최재천 교수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태계에서 볼 수 있는 자연의 법칙을 적용하여 오늘날 사회 이슈들을 풀어나가고 있다. 특히 코로나 19로 지난 몇 년간 우리 생활의 일상성을 잃기 시작했을 때 그의 영상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에 따르면, 4만 년 전, 지구 전체 생물 종 무게의 1%만을 이루던 인간과 인간의 가축들이 오늘날, 지구 전체의 95%의 무게를 차지하게 되며 생물다양성이 감소된 탓에, 야생동물에 기생하던 바이러스가 생존을 위해 인간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면서 인수공통감염병이 창궐하기 시작했고 한다. 계속되는 개발과 기후 위기로 살아갈 곳을 잃은 야생동물들이 인간이 사는 곳까지 밀려나고, 밀렵 등으로 인해 야생동물과 인간의 접촉이 늘어나면서 인간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들이 생겨난 것이다. 최재천 교수는 새롭게 창궐하는 바이러스들로 대비하기 위해 행동 백신과 생태 백신이라는 두 가지 형태의 백신이 필요하다 외쳤다. 행동 백신은 손 씻기, 마스크 쓰기, 사회적 거리 두기와 집단면역체계를 이룰 수 있는 백신 접종에 해당한다. 세계 도처에서 백신을 맞지 못해 사람들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많은 정치적 이슈와 과학적 사실을 분리하지 못한 많은 수의 미국인들이 백신에 대한 음모론을 믿으며 공중보건정책에 협조하지 않았었다. mRNA백신은 과거 에드워드 제너가 만들어낸 천연두 백신처럼 병원체 생체를 죽이거나 약화시켜 몸에 주입하는 게 아니라 유전 정보만 넣어 우리 면역계가 미리 항체를 준비하게 만드는 최첨단 백신이다. 가짜 뉴스와 싸워 이길 수 있는 정도의 과학적 지식을 쌓는 것의 중요성과 합리적 지성을 갖추는 것이 앞으로 우리가 마주할 바이러스들을 막는 행동 백신인 것이다. 그가 주장한 두 번째 백신인 생태 백신은 다름 아닌 ‘자연보호’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재정립하여 환경을 보호했을 때만이 환경의 일부인 우리가 안전할 수 있다.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는 대학원 과정까지 학교에서 18년을 보내온 지난 세월 때문인지 나는 ‘그냥 믿기’를 하지 못한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었지만 유사과학이나 음모론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 과학 서적도 탐독해 왔다. 그 덕분에 종의 기원을 쓴 다윈과, 코스모스를 쓴 칼 세이건, 이기적 유전자의 작가 리처드 도킨스와 과학잡지 스켑틱의 편집자 마이클 셔머를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스켑틱은 일방적으로 새로운 발견이나 과학 관련 뉴스를 소개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했던 기존 과학잡지와는 달리 세상과 물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논란이 되는 주제들에 대한 과학적 사실과 사고방법 제시하고 있어 한국에서 창간호부터 읽었었다. 최재천 교수 역시 이들 과학자들처럼 과학의 언어를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소개하는 과학커뮤니케이터이자 늘 겸손한 자세로 합리적 지성을 키우는 어른이다. 그의 말과 글에는 자연과 인간, 사회에 대한 애정과 염려가 깃들어 있다. 내 마음을 읽은 듯, 생각하고 고민했던 주제들이 유튜브에 매주 올라오면 나는 또 그의 말을 경청할 준비를 한다.


  과학자를 선생님으로 삼은 나는 반대편에 서 있는 종교인 한 분도 선생님으로 삼고 있다. 위트 있는 입담과 재치로 즉문즉설을 펼치는 법륜스님이다. 어느 날 무심코 눌러본 즉문즉설 영상을 통해 법륜스님을 알게 된 나는 그분의 논증과 추론 능력에 반해 버렸다. 인생의 고민이 가득 담긴 질문을 던지는 이의 속을 꽤 뚫어 보는 독심술이 있는 것 마냥 그는 질문자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 사람의 특성을 파악하고, 질문 내용에서 오류를 찾아내어 결국 질문자의 마음에 문제와 해결책이 있음을 알려준다. 자문하고 자답할 수 있는 형세로 상황을 풀어서 설명하는 그의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 어쩌면 그는 종교인보다는 사람의 심리적 상태를 분석하는 심리상담가에 가깝다. 즉문즉설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생긴 어려운 일에 내리는 솔루션은 보통 기도와 정진이 대부분이지만 법륜스님은 그 기도를 부처님이 들어주기 때문에 고통이 해소된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절을 하고, 염불을 외는 것이 결국 고행과 참선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는 행위임을 알기에 그를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자신의 힘을 키울 수 있는 해결책으로 내어주는 것이다. 공감할 때 공감해 주고, 필요할 때는 자신을 우스꽝스럽게 까지 만들어가며 사람들을 위로하는 그의 재치에 탄복하며 실제로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그를 선생님으로 삼았다.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욕심부리지 않는 소박하고 깨끗한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마음의 위로가 필요할 때 찾은 책 속의 선생님들 역시 종교인들이 많다.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의 아잔 브라흐마와 그를 옮긴 류시화 시인, 무소유의 법정스님, 화를 쓴 틱 낫한 스님 모두 마음으로 기리는 선생님이다. 종교계의 성인인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세상의 시류를 읽지 못한 지나친 위트로 물의를 일으켰지만 여전히 사랑스러운 달라이 라마 역시 큰 가르침을 주시는 선생님들이다.


  과학과 종교는 대척점에 있는 듯 보이지만 우리에게 같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이성으로 자기 생의 주인이 되어라. 우주와 자연 속 아주 작은 일원으로서 변화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더불어 살아라가 그것이다. 과학자와 종교계의 선생님들을 모시고 있어 나는 마음이 든든함을 느낀다. 어려운 일들이 생길 때에도 나는 그들의 말과 글들을 펼쳐보고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어려움을 껴안고 사는 오늘날 우리들이 각자의 선생님을 찾아 삶을 헤쳐 나가는 지혜와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아직 까지 스승을 찾지 못한 이가 있다면 나의 스승을 소개한다. 나의 과학자와, 나의 종교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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