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양희 Apr 02. 2024

종교가 뭐냐고 물으신다면

무신론자, 범신론자에다 불자입니다

  뼛속까지 유교걸(儒敎girl)인 나는 벽진 이 씨 판서공파 35대손이다. 우리 아빠는 이 종파의 가장 큰 어른이다. 한마디로 종갓집 장손. 그런 아빠에게는 아들이 없다. 딸만 셋이다. 대가 끊겼다. 그 덕에 우리 엄마는 아흔둘 인 시어머니를 아직도 모시며 끊임없는 잔소리에 시달리고 있다. 생각만 해도 성질머리 나는 유교 사상은 유년시절 늘 나를 지배했다. 어른들께 공손하고 깍듯하며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는 가정교육은 학교에서도 빛을 발했다. 아들이 아닌 나는 아들 몫을 하려고 항상 애썼다. 그 덕분에 모범생이자 우등생으로서 선생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하지만 내가 받은 유교 교육엔 빠진 것이 있었으니, 바로 아랫사람을 대하는 태도였다. 윗사람을 어떻게 모셔야 하는지는 유전자에 새겨놓듯 체화되었지만 아랫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는 몰랐던 나는 동생들을 사랑했지만 그들을 존중하진 못했다. 그래서 공부에 몰두해야 하는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 나는 동생들을 막대했다. 때리기도 했다. 그들은 거의 내 하인이었다. 물 가져와 하면 물을 가져오고, 불 꺼 하면 불을 끄는 두 동생들. 성인이 된 후, 나는 그들에게 무지했던 과거의 내 모습에 대해 용서를 빌었다. 언니가 그때는 몰랐다고, 그렇게 해도 되는 줄 알았다고. 그렇게 유교걸로 자라왔지만 종교가 뭐냐고 묻는 질문에 나는 ‘유교’라고 답하지 않는다.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을 생각한다면 유교도 번듯한 국가 창시 이념임에 틀림없지만 오늘날 자신의 종교를 유교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초등학교 3학년에서 5학년까지는 교회에 다녔다. 일요일 8시 30분이면 두살 어린 둘째 동생과 함께 101동과 102동 사이에 있는 하늘색 공중전화기 앞에서 교회 차를 기다렸다.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 그 교회는 파란 슬레이트 지붕 위에 철로 만든 십자가와 함께 궁서체로 ㅇㅇ교회라고 적혀있었다. 우린 주말마다 어린이 예배를 드렸다. 절에 다니던 엄마가 어째서 나를 교회에 보냈을까 생각해 보니, 그 답은 꽤나 쉬웠다. 당시에 엄마는 교회에 다니면 주말에도 부지런히 아침에 일어날 수 있고, 뭐라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주말 육아 부담을 줄이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한다. 아이 셋을 키우고 옷 가게도 운영하며 시어머니의 잔소리까지 받아내야 하는 엄마는 일요일 아침, 약간의 휴식이 필요했을 거다.


  교회를 다니는 동안 성경을 통해 세상의 많은 이야기를 접했다. 모세가 홍해를 가르고,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 신화적 이야기들을 들으며 어린 나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존재와 자신을 희생한 예수의 생에 흠뻑 빠져 있었다. 그때 나는 세상을 비판적으로 보는 방법을 몰랐고, 유교사상이 심어준대로 어른들이 전해주는 말들을 그대로 수용했다. 믿음이 없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이 너무나 무서웠고, 죽고 나서 절에 다니는 엄마, 아빠가 천국에 가지 못할까 봐 적극 전도에도 나섰다. 그 당시만 해도 북한이 도발해 전쟁이 일촉즉발할 것처럼 뉴스에서 떠들어 대던 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북한 사람들이 저만 죽이고, 세상 모든 사람들을 살릴 수 있게 해 주세요. 나 혼자 만의 희생으로 전쟁을 막을 수 있다면 저는 죽어서 없어져도 됩니다. 저는 죽어서 하나님을 만날 테니까요.’ 살아가며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았던 나는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내려주는 기독교가 좋았다. 그저 믿기만 하면 되었으니 어려운 것도 없었다. 의심하지 말라. 그냥 믿어라. 믿음이 너를 깨닫게 해 준다. 그렇게 생에 2년간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살았다. 사춘기가 오고, 그 도가 지나치게 되면서 교회에 안 가고 술 마시는 아빠가 지옥에 갈 거라고 소리치기 전까진 말이다. 그날, 아빠는 내 성경책을 찢어 버렸고, 나는 울면서 아빠를 저주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나는 기독교인이 고모 덕분에 종교에만 몰두해 있던 삶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고모는 불교집안에서 유일하게 기독교인 사람이었다. 기독교인인 고모부를 만나 결혼한 그녀는 교회에 돈을 바치기 위해 사는 사람처럼 보였다. 믿음이 강한 고모는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것 처럼 보였다. 횟집이다, 곰탕집이다 여러 번 사업을 벌였지만 늘 실패했고, 우리 엄마까지 나서서 주말장사를 도와주고 돈까지 빌려줬지만 허황된 꿈에 사로잡힌 듯, 노력 아닌 믿음만을 외칠 뿐이었다. 결국 고모는 자신의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우리 여섯 식구가 살던 25평 작은집에 9개월 동안 들어와 살았다. 엄마가 우리 세 자매와 함께 거동이 불편하고 뚱뚱했던 고모의 시할머니를 모시고 목욕탕에 갔던 게 기억난다. 지금의 내 나이 정도였던 나의 엄마가 그 할머니의 커다랗고 하얀 등을 밀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남동생인 우리 아빠와 올케인 우리 엄마에게도, ‘내가 시집갈 때 해간 게 없으니 이 정도는 신세를 져도 된다’는 막말을 던지며 이 또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울면서 기도하는 고모를 보고 나는 정신을 차렸다. 원하고 목표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신이 돕기 전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삶을 결정하는 건 스스로의 몫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우리 엄마에게 교회에 안 간 가서 지옥에 간다고 소리치던 고모에게서 아빠에게 소리치던 나를 봤다. 어렸어도 알 수 있었다. 이건 잘못되었다는 걸. 나는 고모를 보고 교회와 진정으로 이별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외할머니, 친할머니, 엄마 모두 절에 다녔다. 성인이 되고 난 후, 나 역시 초파일이면 절에 간다. 왠지 마음이 스산하고 따뜻한 기운이 필요할 때도 절을 찾았다. 불교 교리나 경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산사에 가면 마음이 처연하고 고요해진다. 깊은 산중에 있는 절이나, 그것이 도시 한가운데 있는 절이라 해도 매 한 가지,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향냄새와 이해하지 못하는 염불이 마음을 차분하게 했다. 특히 서울에 대학을 다니고 나서부터는 종로대로의 차량 통행을 막고 온갖 단체들이 자신들이 제작한 등불을 밝히는 연등회는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엄청난 축제를 우리나라가 갖는 전통의 방식으로 치르는 것 같아 갈 때마다 흥겨웠다.


고요한 산사에 머무르면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다
연등회때 조계사는 축제 분위기다
미술사에 꼭 나오는 고려시대 은진미륵불, 머리가 커서 너무 귀엽다


  어떤 사람과 서로의 종교에 대해 이야기할 정도가 되려면 꽤나 친밀해야 한다. 어정쩡한 거리에서 서로 종교 이야기를 했다 서로 다르다 싶으면 이야기의 진척이 어려울뿐더러 관계의 지속도 어렵다. 하지만 별 뜻 없이 내 종교에 대해 알고 싶은 이가 물어볼 때면, 나는 불자라고 얘기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불교 교리나 경전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를 불자라고 소개하는 이유는 할머니, 엄마와 함께 유년시절부터 절에 다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교처럼 불교도 하나의 윤리학이자 사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부처님’이라는 신적 존재가 내가 소원하는 것을 들어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불교는 내 안의 평온을 찾고, 타인을 염려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죽음 이후의 삶보다는 현세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한다는 점이 불교의 매력이다. 매주 약속이라도 한 듯 내 시간이 얽매여있지 않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깊이 따지면 나는 무신론자다. 어쩌면 범신론자인지도 모른다. 인격체를 가진 신이라는 존재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종교와 철학보다 과학과 우주에서 더 많은 해답을 찾는다. 빅뱅으로 탄생한 우주와, 그 속에서 티끌과 같은 지구, 인간의 존재. 몇 억만년 전부터 발생한 생명체와 연속적인 우연의 결과 만들어진 현세 인류. 증가하는 엔트로피, 서로 다른 속도로 흐르는 시간, 뇌와 사유, 감정의 관계.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발견과 발전은 더 이상 우리의 존재와 세상을 이해하는데 과거 인류가 세상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만들어 놓은 종교라는 도구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게 만들었다. 자연계 너머 초월적 존재에 대한 기대는 인류가 이해할 수 없었던 영역이 많았던 시절 우리의 문화적인 해설 체계였다. 책을 읽고, 존재에 대한 사유를 할 수 있게 된 어느 시점부터 나는 내가 무신론자임을 알게 되었다.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사를 세밀히 들여다보고 참견하는 인격신은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자연과, 우주, 생명에 대한 경외감은 여전히 가지고 있다. 어마어마한 우주 속에 점 하나 같은 지구, 그 위에 생명으로 태어난 나와 그를 이루는 세포, 유전자, 미생물, 바이러스까지 놀랍지 않은 것은 없다. 내가 스스로를 범신론자로 일컫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리처드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에서 범신론자는 “초자연적인 신을 아예 믿지 않지만 신이라는 단어를 자연이나 우주 또는 그 움직임을 지배하는 법칙을 가리키는 비 초자연적 동의어로 사용한다.” (33p)라고 표현했다. 즉 신은 우주법칙의 시적 표현이라는 것이다. 무신론자는 낭만이 없지만 범신론자는 꿈을 가진 예술가다. 자연과 교감하고, 우주를 찬양하고, 호르몬의 변화에 따른 감정을 읽어내기도 한다. 멋지지 않은가. 우리가 과학적 원리를 이해하고 있는 무지개, 오로라와 같은 자연현상에 대한 경외심이 신을 통해 증명되지 않는다고 해서 줄어들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범신론자이자, 마음수양을 위해 불교를 종교로 삼고 있는 나는 세상의 모든 종교를 포용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 나에게 서로 다른 종교들은 세계를 이해하는 창이다. 다른 시대, 다른 지역을 살아온 사람들이 각자가 처한 기후와 환경에 적응하고, 그에 따라 발생하는 문화권에 부합하는 규율을 만들고자 종교를 활용한 것 아니겠는가. 결국 모든 종교가 지향하는 바는 사랑과, 평화니 말이다. 사랑이라는 정상을 향해 나아가는 등산로가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유대교, 등등의 다양한 종교의 형태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종교는 큰 역할을 한다


  깊은 이해심과, 넓은 포용력을 지닌 사람이라고 해도 결국 사람은 자신이 겪은 상황과 경험의 넓이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책을 읽으며 먼저 세상을 살아온 거인의 어깨 위에서 또 다른 세계의 역사와 문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시야를 넓히기도 한다. 종교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던 대학 1학년 때는 교회, 사원, 성당, 절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며 각 종교의 신도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고, 각종 종교서적을 탐닉했다. 열아홉 살의 나는 그렇게 인문학에 취해 살았다. 서른다섯이 된 오늘의 나는 그때처럼 여전히 알고 싶은 게 많고 낭만파지만 조금은 현실이라는 바닥에 발을 붙이고 살고 있다.


  탐구하고, 질문하는 것이 자유로웠던 대학생의 특권은 사라지고, 길게 살진 않았지만 나름 인생의 고단함을 느끼며 오늘에 까지 이르렀다. 사는 것은 때로는 고통이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탄생과 죽음 사이, 혼란과 무지, 이루지 못한 욕심들로 힘들기도 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오해와 착각을 일삼으며 혼란스럽고 괴롭기도 하다. 내가 부모를 통해 받은 유전자와 생명의 씨앗을 자녀에게 남기고 흙이 되어, 바람이 되어, 세상에 그대로 존재하게 된다. 단순화시켜 질량보전의 법칙이나, 에너지 보전의 법칙으로 설명될 수도 있는 우리 생의 순환은 얼마나 단순한가. 그런 생에 동안 나는 행복하고 단순하게 살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욕심을 지워 불행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부처는 고통이 완전히 없어진 경지, 고통을 만들어 내는 근본 원인인 무지함까지 없어져 완벽하게 맑고 순수한 열반(니르바나)에 이른 자라고 했다. 불교에서는 삶의 지혜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잠재되어 있기에 내재된 지혜를 깨우쳐야 하는 것이라 한다. 우리는 결국 잠재된 지혜를 깨우치지 못한 사람, 잠들어 있는 부처다. 그렇기에 우리는 귀중한 존재들이다. 이 얼마나 멋지고 황홀한 이야기인가.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경험하고, 더 많은 것을 보는 것이 최고인 듯 여겨지는 오늘, 나는 조금 더 지혜로운 이 가 되기 위해 내 안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알고 싶은 바깥의 우주와, 탐구하고픈 내 안의 우주를 피부 안과 밖으로 맞대고 있는 나. 나는 그런 나를 조금 더 사랑하고, 나를 이루는 모든 이들을 조금 더 사랑하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이전 02화 무엇을 입고 사나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