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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양희 Apr 12. 2024

당신을 위해 돌보는 나

요가 수련

  지긋지긋했던 3년간의 수험생활이 끝났다. 대학에 합격하고 입학까지 두 달의 자유시간이 생긴 나는 요가를 시작했다. 배우는 건 교과 과목 밖에 없었던 시절이 지나 나에게도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생긴 거다.

  좀처럼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데다, 공부한다는 핑계로 늘 앉아만 있던 나의 엉덩이는 한껏 퍼져있었다. 통통했어도 예의 바르고 공부를 잘해 어른들이 늘 예뻐하고 주변에서도 사랑을 받았기에 초등고등학교 시절, 외모는 나의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대입’이라는 주요 관문을 통과하고 스무 살이 된 나는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았으니, 그가 바로 다이어트. 향후 대한민국 성인 여성으로서 외모를 철저히 관리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나는 살을 빼야만 했고, 다이어트를 위해 요가를 시작한 것이다.

  성인의 길에 들어서는 나와 친구 세 명이 함께 동네에 있는 요가학원에 간 첫날을 기억한다. 한쪽 벽이 유리로 꽉 찬 작은 요가스튜디오에서 날씬하고 예쁜 선생님이 우리를 맞아주셨다. 선생님은 자기 자신도 예전엔 뚱뚱했는데, 요가를 시작하고 날씬한 몸매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면서 우리를 한껏 고무시켰다. 낮은 조도의 조명 아래 은은하고 잔잔한 풀피리 소리와 바람 소리가 들리는 음악이 켜지고 나는 그간 쓰지 않은 몸의 근육들을 움직이며 새로운 자세들을 취했다. 그땐 아직 어려서인지, 아니면 초급반이었기 때문인지, 나의 몸은 생각보다 부드럽게 선생님의 움직임을 따라 했다. 내 속에 있는 유연성을 찾은 기분이었다. 약간 땀이 날 정도의 움직임이 40분간 이어지고 수업이 끝날 무렵, 선생님은 누운 상태에서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하라는 말을 남겼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명상이란 걸 하게 되었다.

  몸이 이완되고 오롯이 들숨과 날숨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그때, 내 마음은 바람 없는 잔잔한 호수 같이 평온했다. 깨어있지도 그렇다고 자는 것도 아닌 상태가 되어 가볍고 개운한 느낌이었다. 처음 느껴 보는 고요한 마음에 놀라기까지 한 나는 친구들에게도 같은 경험을 했냐 물었다. 한 명은 그렇다고 했고, 나머지 두 명은 자신도 모르게 자버렸다고 고백했다. 잠이 들었다는 친구들의 말에도 놀랐다. 그렇게 단시간에 잠들 수 있다는 것도 몸이 이완되고 마음이 편하기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살을 빼러 간 요가 첫 수업에서 마음의 평온을 찾은 나는 다음 날에도 요가 후 찾아올 명상의 시간을 기대했지만 첫날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저 누워서 음악을 듣고 쉬는 정도였다. 우연히 찾아온 명상은 그 후 다시 찾아오지 않았고, 두 달 동안 요가를 했지만 몸무게는 변함이 없었다. 나는 그렇게 통통한 채로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짧았던 요가와의 첫 번째 조우를 뒤로 한 채, 다시 요가를 만난 건, 7년이 지난 뒤 회사 점심시간이었다. 당시 조직문화 담당자였던 나는 사내 복지와 여유로운 조직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점심시간 요가 강좌를 열었고 무용을 전공한 요가 선생님을 초빙해 회사 체육관에서 요가를 하기 시작했다. 프로그램 운영 담당자였기에 책임감으로 참여하기 시작한 요가 수업에서는 스무 살에 배우지 못했던 요가의 기초 동작들을 보다 자세하게 배울 수 있었다. 요가 선생님은 무용을 전공하셨기에 요가가 가지는 명상적, 영적 부분은 개인의 탐구 영역에 남겨두고 움직임마다 활용되는 근육의 이름과 형태, 수축과 이완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다. 헬스를 하며 어렴풋하게 알았던 근육의 위치를 내 몸의 움직임만으로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제 서야 몸을 제대로 쓰는 법을 익힌 것처럼 근육과 관절의 감각이 깨어나는 것 같았다. 요가를 하고 나면 개운한 몸과 마음 덕에 오후 근무가 전혀 어렵지 않았다. 잠을 자고 깨어난 것 같아 업무의 효율이 높아지는 기분이었다. 이 좋은 요가를 계속하고 싶었던 나는 온라인에서 요가 선생님을 찾았다. 그는 바로 ‘요가소년’이다.

회사에서 진행한 요가수업


  소년보다는 아저씨에 가깝게 보이는 선생님은 옛날 로맨스 영화를 더빙한 성우보다도 느끼한 목소리와 거친 숨소리로 처음 보는 이를 조금은 당황스럽게 하는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많은 요가 유튜버들 중 그를 선택한 이유는 그가 예쁜 요가 레깅스를 입고 몸매를 가다듬는 다른 선생님들보다 몸과 마음의 소통을 추구하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간단한 스트레칭 영상으로 그의 수업을 따라 하자 느끼하게 들리던 목소리가 어느새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들리기 시작했다. 차츰 그의 음성을 따라 몸을 움직이며 몸과 마음이 구분되지 않는 상태의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내가 찾던 요가와 드디어 만난 샘이다. 처음 요가를 접했을 때처럼 내 몸은 저절로 명상을 하기 시작했다. 스무 살의 나는 선생님의 움직임만을 따라 하는 학생이었지만 요가소년을 따라하며 서른 가까운 내 몸과 마음을 찬찬히 살펴보며 이해하는 수련자가 되었다. 예전의 나는 요가를 단순히 운동의 한 종목으로 여겼지만 오늘의 나는 수축하고 이완하는 근육과 몸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현재에 머무르는 수련으로써 요가를 대하고 있다. 요가는 몸과 마음을 묶는 역할을 하며 활발한 성격으로 마음이 늘 들떠 있는 나를 조금은 차분하게 만든다.

유튜브 요가소년


  요가에 대한 정의는 여럿 있지만 요가 경전이라고 불리는 세 가지 책에서는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1) 기원전 600년경에 쓰인 <우파니샤드>는 요가를 감각과 욕망의 제어라고 정의했다.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요가를 제시한 것이다. 2) 기원전후에 쓰인 것으로 알려진 <바가바드기타>는 인도의 성경으로 불리는 경전인데, 여기에는 요가를 ‘같게 보는 마음’으로 기록한다. 좋고 싫음을 같게 보는 마음, 성공과 실패를 같게 보는 마음, 나아가 삶과 죽음을 같게 보는 마음을 의미한다. 극단에 있는 것을 구분하지 않고 현재에 충실하며 온전한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3) 세 번째 경전인 <요가수트라>에서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몸과 마음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몸의 수련을 통해 마음을 조절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으로 요가 수련을 이야기하며 현재의 나에게 집중하는 마음을 추구하는 것이 요가라고 설명한다. 결국 세 가지 경전 모두 요가를 고요함을 지향하는 마음으로 정의 내린다고 할 수 있다.




  요가를 알고 난 후, 나는 왠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설명할 수 없는 자신감과 안정감이 마음속에서 차오른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아도 마음 속 안에 있는 나를 살펴보며 나도 꽤 괜찮은 사람 처럼 느껴진다. 안내자의 나지막한 목소리를 따라 한 동작, 한 동작씩 따라 하면 어느샌가 몸이 단단하고 개운해짐을 느낀다. 요가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세는 ‘산 자세’다. 어깨너비로 발을 벌려 땅을 딛고, 허리와 등을 곧게 세워 앞쪽의 먼 곳을 응시하는 단순한 동작이다. 손은 손바닥을 정면으로 하여 몸에서 약간 띄우고 정수리를 하늘 쪽으로 높게 보낸다. 그리고 나면 마치 내가 산이 된 듯, 우직하고 듬직한 느낌이 단전에서부터 차오른다.   

  산 자세를 할 때면 산의 이미지가 머리에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스위스 체르마트의 마테호른이 생각난다. 10년 전, 4월. ‘시집가기 전, 마지막 자매여행’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열흘 동안 스위스여행을 다녔던 나와 동생들은 여행 중반부 즈음해서 체르마트에 도착했다. 그때는 산에 대해 많은 것을 알던 시절이 아니다. 산을 오르고, 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자연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모르던 시절, 관광객이라면 모두 다 가는 고르너그라트 전망대를 가야 했기에 산악열차에 몸을 실었다. 이색적인 체험을 원한 우리는 산 정상까지 가는 기차에서 미리 내려, 산을 올랐다. 그 덕분에 울창한 숲에 가려 정작 봐야 하는 마테호른의 모습은 보지 못하고 3시간 동안 숲길을 걸었다. 조금 일찍 내려 산길을 걷자고 한 나의 선택이 한국과 다름없는 숲길을 걷는 것으로 판명되며, 나를 포함한 세 자매 모두 지치고 화가 나 더 이상 걷기 싫다는 말이 혀 끝에 매달려 있을 때 즈음 드디어 고르너그라트 전망대가 보였다. 수천 년간 쌓여있는 하얀 눈들과 우뚝 솟은 산봉우리들. 그 높고 웅장한 산들을 보려고 걸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기차를 타고 온 그곳에 우리는 조금이라도 우리의 힘을 보태서 올라왔다고 생각하며 그때부터 나는 등산에 눈을 떴다. 눈앞에 보이는 산들은 다 바위이거나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초록빛이 없이 만년설로 뒤덮인 산을 처음 마주한 것이다. 독보적이고 유일한 모습으로 그곳에 단단히 서있는 마테호른. 다른 산들과 산맥을 공유하는 익숙한 우리네 산과 다른 그 모습이 뇌리에 콱 박혀서인지 나는 산을 떠올리면 대번에 마테호른을 떠올리게 되었다.


동생들과 함께 마주한 마테호른

  요가를 통해 골고루 몸을 움직이고 맞이하는 산 자세는 등산 후 산을 마주본 내마음과 같다. 무언가를 이루어낸 기분과 장엄함을 마주하는 기분. 산 자세를 하며 혼자서 서있을 수 있는 산을 떠올린다. 저 먼발치서도 고유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어느 쪽에서 보아도 바른 삼각형인 자연의 피라미드를 떠올리며, 나도 단단하게 세상을 마주하는 산의 모습으로 오늘 하루를 보낸다.


  어느새 요가는 오늘의 나와 지난날의 나를 연결해 주는 고리가 되었다. 몸과 마음을 연결하고 현재라는 순간과 나를 연결하는 무언가가 되었다. 요가를 통해 다른 운동들도 일종의 명상과 휴식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움직임에 몰입하면서 어지러운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진정한 명상이며 뇌에 휴식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운동 후 신경세포가 새롭게 형성된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되었다. 나는 요가를 하고, 등산을 하고, 수영을 하며 나를 돌본다. 그렇게 내 몸과 마음을 단단하게 했을 때 나는 다른 이들에게 더 친절하고 선량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당신을 위해 나를 돌볼게요. 당신도 나를 위해 스스로를 돌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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