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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양희 Jun 28. 2024

아빠의 계란 농장

65세에게 은퇴란 없다


토목업을 하는 우리 아빠에게 올해만큼 일이 없었던 적이 없다. 물론 IMF 때 3년 정도 실컷 논 적이 있지만 그를 제외하고 이만큼 놀았던 적이 없단다. 사실 그건 아빠 기억의 오류인 것 같다. 아빠는 이런류의 말을 나에게 종종 했었다.

‘올해만큼 경기가 안 좋은 적이 없다, 진짜로.’

옷가게를 하는 엄마도 맨날 같은 이야기를 한다. ‘그래도 엄마는 주변 손님들이 도와줘서 꾸준하게 장사가 잘 되는데, 아줌마들이 와서 하는 이야기가 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거야.’

어느 시대마다 저마다의 어려움을 품고 산다. 6.25를 거친 할머니도 남편 없이 아이들 키우며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외환위기가 왔을 때에 엄마, 아빠도 딸 셋을 잘 키우려 아등바등했었다. 나의 세대는 학업과 취업 스트레스라는 정신적 고통 속에 풍덩 빠져 있었고, 요즘 세대 아이들도 (교류하는 이가 없어 어떤 어려움인지 나는 잘 모른다) 자신만의 어려움이 있겠지. 각각의 세대별 고생과 고통의 레벨은 서로에게 다른 크기로 다가오겠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자신이 마주한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일 거다. 변화하는 여러 세대를 살아오면서 늘 현재의 경제 상태가 더 안 좋다고 말하는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도 시장경제의 바로미터인 자영업과 사업이라는 업종에 종사하기 때문이리라. 공공기관 월급쟁이였던 내가 체감할 수 없는 ‘진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부모님으로부터 들으며 철없는 나는 늘 경제에 대해 부정적 전망만 하는 엄마, 아빠의 관점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사업이, 장사가 잘 될 때는 겸손의 미덕으로 떠벌리지 않고, 안 좋을 때는 주변과 함께 성토대회를 여는 것이 개인 사업을 운영하는 방법인 줄은 모르는 채 말이다.



어김없이 안 좋은 경기 속, 올초 하릴없이 공사 공고가 나길 기다리던 아빠는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일을 저질러 버렸다. 아빠의 자재창고 한켠에다 닭장을 지어 청계 병아리 12마리를 사다 풀어놓은 것이다.

‘키워서 청란을 낳으면 식구들도 먹고, 친구들도 좀 나눠주고 그라지 뭐.’

바지런한 아빠는 지나가는 시간을 여유롭게 즐기는 법을 몰랐고, 그게 무엇이든 간에 생산적인 일을 해야 했다. 노는 동안 충분히 내가 있는 미국에 온다거나 엄마가 늘 부탁하는 정원 장미에 진드기 약을 친다거나 하는 일을 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아빠에겐 아빠 만의 일이 필요했다.

‘농장에서 병아리라 암수 구분은 못한다더라고, 그래서 제법 컸는데도 뭐가 암탉인지 아직 잘 모르겠어.’

‘아빠! 그랬다가 다 수탉이면 어쩌려고 그래? 지금 애들 벼슬 나오는 거 보니깐 거의 8마리가 수탉인데? 하하하하.‘

지난 5월,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려 한국에 갔을 때, 말로만 듣던 아빠의 계란 농장에 끌려갔다. 아빠는 아침이면 닭들을 풀어 자연방사 해놓고, 저녁이면 다시 닭장으로 몰아넣었다. 삐죽하게 벼슬이 올라오는 닭들을 보며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나는 아빠를 놀렸다. 3개월 정도 된 닭들은 청소년처럼 절반은 닭이고 절반은 병아리 같은 날씬한 모습으로 참외 껍질을 쪼아대며 삐약거리고 있었다.

‘욤마들은 덩치가 작아서 좀 더 먹일라고 일부러 닭장 안에서 안 빼주는데도, 밥은 안 먹고 자꾸 밖에 나가 놀라그런다니깐.’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4마리를 조금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 아빠는 그 애들만 따로 골라서 닭장으로 몰아넣었지만 아빠마음을 몰라주는 비실이들은 삐약거리며 밖에 풀려있는 다른 닭들을 바라보기에 바빴다.

‘진짜 닭대가리라니깐. 멍청해가지고.’

연약한 아이들에게 마음이 더 가는 건 아빠도 나도 마찬가지였다.

‘얘들이 덩치가 작은 걸 보니깐 암탉인가 보다. 12마리 중 4마리만 암탉인 것 같은데 이랬다간 계란은 못 얻어먹겠는데? 언제 알 낳는데?’

‘9개월이면 낳을 거래.’

‘아직 한참을 더 키워야 되는구만.’

닭장을 만들고, 병아리를 사고, 사료를 주고, 집에서 작은 농장까지 왔다 갔다 하는 비용까지 생각하면 경제적으로 되려 마이너스인 일인데도 불구하고 아빠는 그저 자신의 몸을 움직이고자 불합리하고 어처구니없어서 귀엽기까지 한 농장 운영을 하고 있었다.


‘어우, 김사장님. 아 제가 농장을 운영하는 거 몰랐십니까? 양계장 하잖아요. 한 천 이백 두 정도 됩니다.’

아빠는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에 상황극을 벌여가며 너스레를 떨었다. 열두 마리 청소년 삐약이들은 아빠의 거짓말 속에 어느새 천이백 마리가 되어 있었다.

‘계란, 주지요. 당연히. 그래 나중에 보자.’

서로를 사장님이라고 불러가며 존재하는 익살스러움에 나는 괜히 눈을 흘기며 웃어 보였다.



아직 젊고 에너지가 많은데도 일이 없어 심심해 죽으려고 하는 아빠는 거의 하루에 한 번씩 전화를 한다. 15년 전만 해도 국제전화가 너무 비싸 멀리 떨어져 살면 보고 싶어도 목소리 마저 들을 수 없었는데, 요즘 세상은 참 좋다. 초 연결의 시대에 오히려 조금은 연결을 끊고 멀어지고 싶은 욕구가 생겨도 뭐라 핑계될 게 없으니 나는 어쩔 때는 귀찮은 아빠의 전화를 매일 받으며 일상을 공유한다. 여유를 가지고 쉬라고, 돈도 벌어 놓을 만큼 벌어 놓지 않았냐고, 여행도 하고 주변을 둘러보라고,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지만 아빠 귀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지루해서 안된다. 사람이 일을 해야지.‘

그게 다였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을 줄 알고, 노는 것도 놀아본 놈이 놀 줄 안다고, 아빠는 인생을 즐기는 법을 모른다. 즐기는 것이 죄악시되었던 사회에서 아빠는 노가다 판에서 일하고, 술 마시고, 잠자리에 드는 생활을 해왔다. 내가 우기고, 빌어 겨우 데려간 국내, 해외여행지에서도 그때만 좋다 뿐이지 아빠는 여행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동생의 결혼식이 끝난 5월 말, 내가 미국으로 돌아갈 때, 엄마, 아빠와 함께 미국에 함께 와서 여행을 하자고 했던 계획도 얄궂게 5개월 만에 새로운 공사가 생겨 취소했다. 일주일이면 끝나는 간단한 공사임에도, 금액 역시 크지 않음에도 아빠는 그걸 놓을 수 없었다. 엄마만이라도 같이 가겠다는 말에, 엄마는 혼자 가면 아빠 생각이 나서 잘 즐길 수 없다는 본인만의 착각으로 반대한 탓에 엄마 역시 발이 묶였다. 아빠의 의견을 무시하고 엄마만이라도 함께 왔으면 했는데 엄마는 아빠말을 따라줬다. 아빠가 지금의 불통의 아이콘이 된 건 가족의 지속되는 배려가 당연시되었기 때문에 나와 엄마의 탓도 크다.


결혼식이 끝난 밤, 가족 모두 모여 잘라먹은 과일 껍질을 아빠는 가위로 사각사각 자르고 있었다.

‘아빠, 뭐 해?’

‘이거 닭들 주면 엄청 잘 먹어.’

당분간은 닭들이 딸들보다 더 살가운 존재가 될 것 같다. 관심을 주면 사랑하게 되나 보다. 닭 발과 부리가 왠지 모르게 무서운 나 역시도 두세 번 애들을 보니 늘씬한 자태가 꽤나 우아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아빠. 원래 닭 무리에서 수탉은 한 마리만 있어야 되는 거야. 아니면 서로 싸울걸? 나중에 이게 다 수탉인 걸로 밝혀지면 어떻게 할 거야?’

‘잡아먹어야지.’

‘아니 이걸 누가 잡아? 누가 죽이고, 누가 털 뽑냐고.’

‘그건 몰라.’


아직까지 대책 없는 아빠는 닭에게 사랑과 정성을 쏟고 있다. 활력 넘치는 65세의 남자.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진짜 실감 난다. 은퇴하기엔 너무 젊은 요즘의 아재들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아빠도 등산을 하거나 골프라도 쳤으면 좋겠는데, 새로운 걸 시작하기엔 너무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는 그의 고지식함이 답답하고 안타깝다. 아직도 돈을 벌고 성공하고 싶다는 아빠. 아빠에게 성공한 삶은 무엇일까? 한 가지 분명한 건, 아빠정도의 재력과 체력을 가진 65세라면 나는 정말 재미나게 잘 살 수 있을 거란 거다. 여행도 다니고, 글도 쓰고, 딸들 집에도 왔다 갔다 하면서 말이다. 내가 느끼는 즐거움을 아빠에게도 전하고 싶지만 아빠는 그걸 너무 몰라 야속할 정도다. 닭들만 사랑하지 말고, 아빠 스스로도 돌보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나이가 많다고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지혜는 주변을 살피고 배려하고 새로운 것을 보며 체화할 때 나이에 불문하고 쌓인다. 아빠가 부디 매일의 지혜를 담을 수 있길, 마음에 여유를 내서 인생의 즐거움도 맛볼 수 있길 간절하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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