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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양희 Jul 19. 2024

얘들아, 아빠닭!!!

꼬끼오 아빠가 된 우리 아빠

(지난 편에 이어...)


미국에 있는 동안 못하는 효도를 위해 호캉스를 하고 난 후 엄마, 아빠를 영천에 모셔다 드리고, 나와 남편은 대전에 도착했다. 금요일 오후, 세 자매와 각자의 짝꿍들이 모두 모여 저녁을 먹고 있던 중, 어김없이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는 세 딸들이 모두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쁘다고 이야기하며 현재 최대 관심사인 꼬끼오들에 관한 비통한 소식을 알려왔다.

"오늘 12시쯤, 닭들을 풀어줬다가 오후 5시쯤 돼서 닭장에 가두려고 갔더니, 들개들이 와서 닭들을 다 죽여놨더라."

스피커 폰으로 들려오는 아빠의 충격적인 이야기에 우리 모두 "엥??!!"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니, 어떻게 된 일이야?" 진매가 흥분에 찬 목소리로 아빠에게 물었다.

"비가 많이 오고, 산에 먹을 게 없어서 아마 산짐승들이 내려왔나 보지. 들개인 것 같은데. 몇 마리는 뜯겨서 죽은 채로 풀 밭에 있는 걸 발견했고, 나머지는 안 보여. 지금은 세 마리만 남아서 닭장에 넣어 놨어. 한 마리는 등을 물렸는지 깃털 다 빠져서 시름시름거리고."

아빠의 목소리에선 꼬끼오들에 대한 미안함과 속상함이 묻어 나왔다.

불쌍한 꼬끼오들...


한밤중 물난리로, 오들오들 떨며 나무 걸이에 매달려 겨우 목숨을 부지했더니, 잠시 풀밭에 나와 햇볕을 받는 순간 개들에게 물려 죽다니. 살아남은 꼬끼오들 마저도 그 모든 광경을 목도해야 했으니, 얼마나 큰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아빠가 돌보던 꼬끼오들. 나도 모르게 닭들의 상황에 과몰입하게 되며 순탄치 않은 조생(鳥生)에 안타까움이 컸다. 아빠의 전화에 앞서 방금 먹었던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치킨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닭들의 생이 내 눈에 한번 담겼던 존재들이 된 아빠의 꼬끼오들에게서는 다르게 다가왔다. 불쌍한 꼬끼오들, 그러게 괜히 닭을 사다 키워서 이렇게 만들다니! 꼬끼오들의 참변에 세 자매의 모든 비난의 화살은 아빠로 향했지만, 가장 속상할 사람 역시 아빠였기에 모진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남은 세 마리는 닭 농장에 줄 거다. 이제 닭 안 키운다." 아빠가 서운함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아빠, 그게 좋겠다. 그러게 짐승을 키우면 애가 닳는다니까. 정을 주게 되고, 죽어버리니 속상하고 마음이 아프지. 계란 그거 사 먹으면 되지 왜 닭을 키웠나 몰라." 툭 하고 진심이 나와버렸다.


비가 멎고 이틀이 지나, 닭장에도 물이 다 빠지고 땅이 제법 뽀송해졌다. 아빠는 닭들이 참변을 당한 다음 날 아침에도 남아 있는 애들을 보러 다시 닭장으로 향했다.

"아니, 내가 아침에 갔더니, 저기서 하얀 닭 한 마리가 다리를 쩔뚝! 쩔뚝! 절면서 나한테 오더라고. 상이군인처럼 말이야. 내가 아휴, 얼마나 반갑던지. 상이군인이야 상이군인. 얼마나 고맙고 기특하던지 몰라. 그리고 또 한 마리를 발견했는데, 얘는 궁뎅이를 물려서 상처가 아주 커요. 아마 못 살 것 같애. 그래서 오늘 궁뎅이를 소독해 줘야 해. 그렇게 두 마리가 다시 온 거야.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몰라요." 전화 속 목소리만으로도 아빠의 기뻐하는 표정이 훤하게 보였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꼬끼오가 살아서, 그것도 풀 속에 숨어 있다 아빠의 모습을 보고선 쩔뚝거리며 돌아오다니 얼마나 반가웠을까. 아빠의 그 기뻤을 마음을 상상하며 나도 그 소식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 소식을 끝으로 미국에 돌아왔다. 며칠이 지났고, 엄마와 전화를 하며 궁금하던 꼬끼오들의 소식을 물었다.

"엄마, 궁뎅이 물린 애는 어떻게 됐어?"

"궁뎅이 물린 애는 죽었어. 그러게 엄마가 그렇게 아빠한테 키우지 말라고 했는데."

"글쎄 말이야. 그럼 이제 총 4 마리네. 아빠가 농장에다 보낸데?"

"또 마음이 바뀌어서 아빠가 키운다고 하더라고. 상이군인처럼 돌아온 절뚝이 꼬끼오한테 아빠가 그러더라니깐. '아빠가 잘해줄게' 하면서. 그런데 엄마도 걱정이야. 다른 닭들 많은 농장에 가면 왕따 당하지 않을까 하고."

엄마 역시도 꼬끼오들에게 마음을 준 모양이다. 농장에 가면 그저 알을 낳는 이름 없는 닭이 될 터인데, 왕따 당할 일을 걱정하다니. 이렇게 밥을 주고, 정을 주면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라는 것이 되고 만다. 어린 왕자가 장미에게 물을 주고 이름을 불러 줬기에 그 장미가 특별했던 것처럼. 우리 꼬끼오들도 이제 엄마와 아빠에겐 특별한 존재가 되었으니 말이다.

"엄마, 그래도 농장에 보내야 되지 않겠어? 장마 끝나지도 않았는데. 열악한 환경에서 꼬끼오들 다 죽는다."

"맞아. 아빠한테 다시 얘기해야지."


아빠의 꼬끼오들은 이제 4마리가 남았고, 한 마리는 수탉, 나머지 세 마리는 암탉이다. 수탉은 개한테 등을 물려 골골 거리고 있다. 아빠가 예상하는 수탉의 생존 가능성은 40%. 아빠는 수탉이 살면 닭들을 계속 키우고, 수탉이 죽으면 꼬끼오들을 농장에 보내겠다 했다.

"아빠. 농장이 닭들한테 더 쾌적한 삶의 공간이 될지도 몰라. 아빠가 데리고 있는다고 능사가 아니야."

내 말에, 아빠도 수긍했는지 생각해 보겠다 한다.


무엇이 꼬끼오들에게 좋은 생일지 나는 잘 모르겠다. 대한민국에서 닭으로 태어난 이상 행복한 생을 사는 것은 로또를 맞는 것만큼 어려운 일일 거다. 농장에 가든, 우리 집에 있든 계란을 낳으면 빼앗기고, 나중엔 통닭이 될 꼬끼오들. 하지만 그 모든 풍파가 닥치기 전, 꼬끼오들은 아빠의 사랑과 정성을 받아먹었다. 아빠는 닭들을 데려온 이후 멸치 대가리, 누룽지, 참외 껍질 같은 것들을 잘게 잘라 꼬끼오들에게 줄 거라며 따로 챙겼다. 정성을 쏟을 대상이 생긴 탓에 지난 4개월 간, 아빠의 눈도 반짝거렸던 것 같다.


'꼬끼오들아, 험난한 생을 사느라 고생했다. 남은 꼬끼오들도 살아 있는 동안은 무탈하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같은 아빠를 둔 언니가.'



귀엽던 꼬끼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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