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수프가 많이 팔렸습니다. 우리는 토마토 콩 수프라고 부르는데요. 각종 채소가 가득 들어간 건더기가 많은, 이탈리아에서 미네스트로네라고 부르는 수프입니다. 토마토 퓨레를 넣어 새빨갛고 갖가지 채소에다 콩과 감자가 듬뿍 들어가 숟가락으로 들어올리면 걸쭉하게 흘러내립니다. 한 그릇 양이 적어보여도 다 먹고 나면 배가 불러 같이 먹던 빵은 남겨서 다시 포장해 가야할 정도로 든든합니다.
평일 점심 시간, 3개 뿐인 식탁에 손님들이 모두 앉았습니다. 느림보상점은 포장 주문이 9할이라 식탁이 모두 차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처음인 것 같기도 하고요. 그날은 그랬고 신기하게도 앉은 손님 모두 토마토 콩 수프를 주문했습니다. 주문이 들어오면 홀 담당 혜린이 주방에 있는 제게 알려주고 저는 냄비에 수프를 담아 불에 올려 따뜻하게 데웁니다. 뜨거워진 수프를 그릇에 담고 그 위에 말린 파슬리를 티스푼으로 살살 뿌려 혜린에게 건네면 그가 손님에게 내어드리지요. 수프가 손님께 모두 전해지고 저는 주방에서 나와 손님들이 드시는 모습을 스리슬쩍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주방으로 다시 들어오니 잔잔하고 묵직한 감동이 느껴졌습니다.
빵이랑 뭐랑 드시려나, 하는 것이 늘 궁금하고 걱정이었습니다. 곁들여 먹는 음식이 있으면 더 맛있고 든든하게 드실 수 있을텐데.. 빵만 먹으면 물리기도 하고, 빵을 너무 많이 먹게 되기도 하죠. 또 부족한 영양소도 생길 거고요. 우리도 덜렁 쌀밥만 먹진 않잖아요. 더 맛있게, 영양가 있게 드시라고 크림치즈를 만들고 당근라페를 만들었는데, 이때만 해도 잘 몰랐습니다. 수프를 만들고, 손님이 빵과 수프를 주문해서 점심시간에 드시는 걸 보자 실감이 났어요. 아, 빵과 수프가 밥과 국처럼 한 끼 식사가 되었구나! 한국인이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빵만 먹을 때는 대충 떼웠다는 느낌이었는데 수프와 함께 먹으니 한 끼 든든하게 먹었다고 여겨지는 겁니다.
매주 빵에 곁들여 먹는 빵반찬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토마토 콩 수프는 두 번째 빵반찬이었는데 손님들이 좋아해주셔서 2주 연속 만들다가 결국 고정 메뉴가 됐어요. 메뉴가 하나씩 늘 때마다 할 일이 많아져 힘들지만 그래도 계속 할 수 있는 이유는 역시.. 기쁘기 때문인 것 같네요. 누군가 맛있게 먹어주면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