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미화 Sep 15. 2018

떠나지 않아도 괜찮아.

무작정 떠나지 않을 용기

떠나오기 2주 전 독일워킹홀리데이를 결심하게 된 과정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여행커뮤니티에서 진행한 강연이라 그런지 많은 친구들이 외국생활에 대한 동경을 하고 있었다. 


"무작정 떠날 수 있는 용기가 부러워요."

"나도 너처럼 무작정 떠나고 싶다."


나는 용기가 있어서 떠나온 것이 아니었다. 우연한 계기로 결정한 것이기는 했지만 무작정 떠난 것도 아니었다. 가족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기우가 심한 나는 놀이기구가 망가질까봐 놀이동산도 잘 가지 않는 인간이었다. 그런 내가 아무 걱정 없이 무작정 베를린으로 떠날 수 있을 리 없었다. 심지어 가족들조차 반대하는 여행이었으니 떠나기 전날까지도 고민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떠나고 싶다면 지금 당장 떠나세요!'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가득 채우는 여행사의 홍보문구에, 퇴근시간을 훌쩍 넘긴 시계를 보며 한숨짓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나또한 외국에 나와 살거나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뭔가 대단하고 특별한 사람일거라고 생각했었다. 결혼자금을 위해 월급의 반 이상을 저금하고 출근과 야근을 반복하는 삶을 살던 나와는 다른 사람일거라고, 나처럼 하루하루 버티는 삶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 위에 둥둥 떠다니는 삶일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온 후에야 깨달았다. 이곳에서도 나는 버텨야만 한다는 걸. 내가 버티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말이다. 많은 준비를 하고 왔음에도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곳곳에서 생겨나는 게 외국생활이었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시스템에 도무지 적응하기 힘들었고 병원비가 걱정되어 마음대로 아프지 못했던 상황 속에서도 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떠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게 용기라면 버티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인내였다. 그리고 인내는 더 높은 차원의 용기라는 걸 깨달았다. 용기가 없어서 떠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용기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전히 많은 친구들이 말하는 나의 용기란 무작정 떠날 용기가 아니라 버티는 용기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용기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이전 10화 가족의 반대로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