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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화 Sep 29. 2018

내 맘대로 베를리너 사전

Wie man Deutscher wird

‘Wie man Deutscher wird'라는 책이 인기라고 한다. 영어로는 ’How to be German'. 영국인 Adam Fletcher가 Leipzig와 berlin에 살면서 맺은 관계, 습관, 문화를 토대로 독일인의 특징 50가지를 정리한 책이다. 


나도 이곳에서 이방인으로서의 삶이 외롭다 느껴질 때마다 나만의 ‘베를리너 사전’을 꺼내 들곤 했었다. 내맘대로 만든 사전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베를리너처럼 행동하고 나면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일요일 아침의 브런치

일요일이면 문을 닫는 곳이 많은 독일이라고 하지만 브런치를 즐길 수 있는 카페는 생각보다 많다. 느긋하게 앉아 브런치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소파에 몸을 파묻고 언제까지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진다. 브런치라고 해서 독일식이 따로 있는 건 아니고 여느 외국식탁에서 볼 수 있는 빵, 치즈, 살라미, 버터, 달걀 정도인데 여기서 조금 특별한 점을 찾자면, 빵이다. 베를리너는 토스트(식빵)나 바케트보다는 Brötchen이라는 작은 빵을 주로 먹는다. 겉은 딱딱하고 속은 부드러운 편인데 익숙하지 않은 식감에 맛을 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그 맛에 길들여지면 계속 찾게 되는 매력이 있다. 



맨손으로 병따기

베를린에 와서 말보다 먼저 배운 생존 기술은 병뚜껑을 따는 법이었다. 베를리너들은 언제 어디서든 맨손으로 병을 딴다. 휴대폰으로도 뽕, 벽에 대고 뽕, 병과 병을 맞대고 또 한번 뽕. 독일 친구들 앞에서 힘겹게 숟가락으로 병을 따내 보이고 나서야 ‘너도 이제 진정한 베를리너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이니 베를리너의 필수조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계절을 최상의 조건으로 즐기기

4계절이 제법 뚜렷한 베를린의 사람들은 그 계절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즐기는 방법을 알고 있는 듯하다. 해가 내리쬐는 여름에는 공원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거나 호수에 모여 수영을 하고, 겨울에는 두꺼운 모자와 목도리를 두르고선 따듯한 와인으로 언 몸을 녹인다. 눈이 많이 내린 다음 날에는 썰매 위에 올라탄 아이들이 엄마가 쥐고 있는 줄 하나에 의지해 앞으로 나아간다. 날이 좋으면 썰매를 자전거가 대신한다. 자전거 문화는 다른 유럽의 국가들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만 베를린은 유독 그 느낌이 다르다. 만만치 않은 교통비 보단 자전거가 경제적이라는 이유를 차치하더라도, 걸음마용 자전거로 겨우 한발짝 걸음을 내딛는 아기를 바라보는 부부의 모습을 보면 베를린의 자전거를 단순히 ‘탈 것’으로 생각하기는 힘들다. 베를린의 자전거 탄 풍경을 보고 있으면 그 누구라도 자전거에 오르고 싶어진다. 


 

전깃불 대신 촛불

베를린에 와서 눈이 안좋아졌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은 적이 있다. 어두운 조명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베를리너들은 유난히 촛불을 좋아한다. 저녁에도 불이 환하게 밝혀진 곳보다는 상대방의 얼굴을 알아볼 정도의 조명만 켜둔 곳이 많다. 어두운 곳에 익숙해진 탓인지 너무 환한 곳에선 발가벗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차분한 독일인들의 성격이 촛불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며 반사등을 켠다. 혼자서 고요한 시간을 보내는 방법에 익숙해지고 있다. 



nicht schlecht

nicht schlecht의 뜻을 단어 그대로 옮기면 ‘나쁘지 않다’는 의미로 들린다. 실제로는 비교적 부정적인 영어 표현인 not bad와는 달리 꽤 좋다는 의미로 쓰인다. 쿨한 베를리너는 ‘좋다’라는 표현 대신 ‘나쁘지 않네’라고 말하는 걸 좋아하는 듯.

그래서인지 무의식중에 gut(good)이 아니라 nicht schlecht 라고 말하고 나면 가슴 속에서 뿌듯함과 간지러움이 몽글몽글 올라온다. 마치 베를리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집을 나서기 전 나지막히 외워본다. 오늘 하루도, nicht schle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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