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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화 Sep 08. 2018

가족의 반대로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착한 딸이지 않아도 될 용기

베를린으로 떠나기까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던 2015년 2월. 나는 여전히 아빠의 허락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이때만해도 편지 한 장 달랑 남기고 떠나버릴 생각이었기에 이후에 벌어질 일들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렇게 떠나버리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아빠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은 아닐까. 나는 내 인생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걸까. 하루에도 감정이 수십 번씩 요동쳤고 떠날 결심이 서다가도 아빠의 기침소리 한 번에 주춤해지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착한 딸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용기’라는 글을 보게 되었다. 이어서 글에는 ‘우리의 부모님들도 잘못 판단할 때가 있고 동시대를 살더라도 그들의 세상은 스무 살에 멈추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 나를 믿자. 특히 우리의 딸들. 착한 딸이지 않아도 된다. 착한 딸의 반대말은 나쁜 딸이 아니라, 주관이 뚜렷한 딸이다.’ 라고 쓰여 있었다. 착한 딸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용기. 수많은 응원과 부러움의 눈빛보다도 나에게 필요했던 건 이 말이었는지도 몰랐다. 


나는 한 번도 본적 없는 글쓴이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오늘 본 선생님 글에 조금은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뜬금없지만, 얼굴도 모르는 분께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고 싶었어요. 잘 다녀오겠습니다. 라고. 아버지한테는 하지 못하는 인사지만. 그래도 잘 다녀오겠습니다.’ 


메시지를 보낸 후 몇 번의 대화가 오고 갔고 선생님은 ‘미움 받을 용기’라는 책을 추천해주셨다. 몇 주 동안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리고 있던 터라 나도 들어본 책이었다. 서점에 가서 책 앞을 서성이다 슬쩍 들 쳐 본 페이지에는 ‘행복해지려면 미움 받을 용기도 있어야 한다.’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미움 받을 용기 같은 걸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있을까.



그로부터 3년이 지났지만 아빠에게 미움을 받아야 할 일이 생길 때마다 회초리 자국처럼 책 제목이 선명하게 부풀어 올랐다. 2년 간 베를린에 더 남을 계획이라는 이야기를 차마 말로는 하지 못해 메시지로 전했던 그 날에도 미움과 용기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착한 딸이 되지 않기로 다짐했다. 베를린에 온 순간부터 착한 딸은 포기한 것과 다름없었다. 착한 딸을 벗어던지는데 28년이 걸린 셈이었다. 이제 남은 건 미움 받을 용기다. 책의 저자는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는 것 보다는 미움을 받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미움 받는 게 아무렇지도 않아질 때쯤 난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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