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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화 Aug 25. 2018

외국 생활수칙 - 방심하는 순간 시작된다

Jeder ist sein Glückes Schmied


어느 나라든 외국에서 살면 그 나라만의 업무처리 방식이 우리나라와 맞지 않아 당황하거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인데, 베를린에서는 열쇠가 그렇다.

독일은 카드키나 비밀번호 대신 여전히 열쇠를 사용하고 있다. 독일 문은 한번 닫히면 열쇠 없이는 열리지 않는다. 집에 열쇠를 두고 나왔을 경우에는 schlüsseldienst에 요청을 해야 하는데 출장비만 해도 10만원이 넘어가기 때문에 여분의 열쇠를 친구 집에 분배해 놓는 경우도 있다.


열쇠는 건물 입구용과 집 열쇠가 따로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열쇠 하나로 모든 곳이 열리는 마스터키를 사용하는 건물도 꽤 있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창고나 우편함, 건물 입구에는 맞고 다른 세대의 문은 열리지 않는 특별한 열쇠이다. 이 마스터키는 열쇠마다 고유번호가 새겨져 있어 건물주의 동의 없이는 마음대로 복사할 수 없다. 심지어 마스터키를 잃어버렸을 경우 건물의 모든 문을 교체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데, 내가 이 비극의 주인공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누군가 베를린에서 소매치기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얼마나 부주의했으면 이 안전한 도시에서 소매치기를 당할까 생각하곤 했는데, 나는 가방 전체를 도둑맞았다. 일하는 카페 의자에 가방을 올려두었다가 일이  다 끝나고 열쇠를 꺼내려고 보니 가방이 사라져있었다. 가방 속에는 카페와 집 열쇠, 지갑. 이어폰이 전부였는데 문제는 카페에서 사용하는 열쇠가 마스터키라는 점이었다. 충동적으로 들고 간 것이라면 현금 외에 나머지는 버릴 가능성이 있지만 의도된 것이라면 카페 자체가 타겟이 될 수도 있었다. 손이 덜덜 떨렸다. 머리를 쥐어뜯어도 방법이 없었다.


걱정으로 밤을 지새운 다음날 독일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출장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800~1000유로정도가 일반적이며 내가 그 비용을 지불할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일 하는 도중에 도둑을 맞은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또한 가게를 운영할 때는 Haftpflichtversicherung이라는 책임보험을 들게 되는데, 열쇠를 잃어버릴 경우 3천~5천유로까지 보상을 해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마음이 조금 진정은 되었지만 가만히 있다가도 열쇠 생각만하면 억울함에 눈물이 났다. 열심히 살아보려는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억울한 일은 계속 되었다.


겨울이 채 되기도 전에 심한 감기에 걸렸다. 한국에서도 건조하면 곧잘 감기에 걸리곤 했는데 자다가도 목이 쩍쩍 갈라지는 베를린의 건조한 날씨에 온몸에 가뭄이 들었다. 입술은 다 터졌고 석회수 때문인지 피부도 거칠었다. 잠결에 일어나 물을 마시다보니 깊이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보일러(Heizung)가 고장이 났다. 공과금이 포함되어 있는 집이었지만 일정 금액 이상을 사용하면 추가요금(Nach Zahlung)을 내야했기에 잘 켜지도 않는 보일러였다. 온종일 비가 내리던 10월의 어느날, 갑자기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았다. 원인은 보일러 관에 물이 부족해서였는데 수리기사를 부를 생각에 출장비부터 떠올랐다.  


다른 집에서 샤워를 하거나 끓인 물로 머리를 감으며 추위와 싸우던 2주가 지나고 집주인의 친구가 수리기사를 대신해 찾아왔다. 호스를 이리저리 자르더니 한숨만 푹푹 쉬던 그는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고 돌아갔다. 달리 방법이 없어 주인에게 다시 연락해 수리기사를 불러달라고 했다. 우리가 한 달 동안 쓰지 않은 보일러 비용을 돌려주던지 수리비를 대신 지불해달라는 요구도 빠트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2주가 더 지난 11월, 드디어 진짜 기사가 찾아왔다. 연장통에서 이것저것 신기한 것들을 꺼내 압력을 맞추고 보일러 관에 물을 흘려보냈다.


“얼마나 오랫동안 못 썼어?”

“한 달.”


수리기사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부품 하나를 교체했고 그 자리에서 써내려간 청구액이 적힌 영수증을 내밀었다. 다행히 지불인에는 건물주의 이름이 적혀있었고, 나는 300유로가 적힌 영수증을 들고 생각했다.


‘역시 버티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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