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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화 Aug 18. 2018

그녀가 채식을 하는 이유

Ich bin Vegetarier


“탄뎀 파트너 필요하지 않아요?”


언어교환 친구라고 할 수 있는 ‘탄뎀파트너’가 독일어 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는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주변에도 탄뎀파트너를 구하는 친구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제안이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별 의미없는 스몰토킹이 아닌, 차분한 목소리로 눈을 맞춰오는 진득한 시선이 감격스러웠달까. 


야스민(Jasmin)은 어릴 적 해동검도를 배운 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한국에는 1년 정도 어학연수를 다녀온 게 전부였지만 그녀는 나보다 한국을 더 그리워했다. 다시 갈 생각은 없냐는 나의 물음에 야스민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이마를 긁적이며 웃었다. 


“기름이 아까워서요.”


정말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지 않은 이상은 기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런 그녀가 한 달 간 독일 자전거 일주를 떠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호들갑을 떤 건 오히려 내 쪽이었다. 위험하지 않을까. 이상한 사람들 만나면 어떡해. 눈썹을 축 늘어뜨리고 울상을 짓는 나에게 야스민은 호신용 스프레이와 주먹을 제 손바닥에 처 보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독일은 유럽 내에서 채식주의자가 가장 많은 국가이다. 특히 베를린에 더 집중되어 있는데 야스민도 그 중 한명이었다. 베를린에서 워낙 많은 채식주의자를 봐서 그런지 나에게 그들은 하나의 성별로 느껴지기 까지 했다. “너는 왜 여자야?” 라고 묻지 않는 것처럼 그 선택이 궁금하거나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은 못했었다. 나또한 육식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기에 비슷한 이유이거나 반려견을 키우거나 동물이 불쌍해서겠지 정도의 추측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야스민의 대답을 들은 후부터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야스민에게 육식이란 ‘잠깐의 만족을 위해 동물에게 고통을 주어야 하는' 일이었다. 취향이 아니라 고통의 문제였다. 나의 즐거움을 위해 다른 생명에게 고통을 주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의지이기도 했다.  


야스민과 대화를 하면서 나와는 생각의 각도가 다르다는 걸 느꼈다. 둘 중 누군가가 생각을 구부리지 않는 이상 그 각도를 좁히기란 힘들어 보였다.  내 생각의 각도는 얼마일까 가늠해보니 나는 그다지 구부러진 사람이 아니었다. 정해진 코스대로 살아온 덕분에 시작점에서 출발점까지 180도. 일직선으로만 걸어 온 사람이었다. 

야스민을 만난 이후로 나는 내 생각에 각을 더하기로 했다.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했다기 보다는 ‘인간은 육식을 해도 돼.’라는 생각만을 고집하지 않기로 했다는 말에 가깝다. 수많은 채식주의자들을 못 본체 하지 않는 것, 그들이 채식을 하는 이유를 한번쯤은 들어보는 것. 적어도 채식주의자가 가장 많다는 베를린에 살면서 구부릴 수 있는 생각의 각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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