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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화 Aug 11. 2018

덜어내는 삶의 방식

Verschenken

Verschenken


베를린에서는 거리에 Verschenken(기증)이라 적힌 종이와 함께 그릇, 책, 신발, 장난감 등이 놓여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베를린의, 혹은 독일의 특별한 문화 중 하나인 Verschenken은 내가 생각하는 독일인들의 삶과 맞닿아 있다. 


다른 사람의 일상에서 위안을 받지도, 내가 가진 것을 과시하지도 않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가치관도 점점 변해갔다. 오래된 것을 함부로 하지 않지만 나에게 불필요한 물건은 미련없이 기증하는 문화. 여전히 옷 못 입기로 소문난 독일인의 이미지는 멋보다는 실용성을 추구하는 태도, 불필요한 것은 사지 않는 생활습관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사진 한 장이 내 삶을 대변해 준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감각 있는 사진들 속에서 촌스러운 취향을 가진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베를린에 온 후에도 한동안은 이 고민이 지속되었었다. 예쁘게 차려입고 에펠탑 앞에, 런던아이 앞에 서있는 여행자들을 보면서 화려하지 않은 베를린에서의 내 일상이 보잘 것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봄, 여름이 지나고 세 번째 계절을 맞으면서 수식없는 삶에 조금씩 익숙해져갔다. 전등 대신 촛불을 켜면서도 화분을 가꾸는 일에는 돈을 아끼지 않고, 보일러를 틀기 보다는 옷을 두껍게 입으면서도 따듯한 와인한잔은 꼭 마시는 사람들을 보면서 ‘좀 촌스러우면 어때 나만 행복하면 그만이지’ 라는 생각을 했다. 사진으로 어떻게 남길지 고민할 것이 아니라 그 분위기를 즐기는 데에 돈을 지불하는 방법을 배웠다.


자신의 취향대로 자신을 가꿀 줄 알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돈을 쓸 줄 아는 사람들 속에서, 진정 소유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배웠다.




이런 일도 있었다. 

대부분의 취향이 비슷한 H와 나도 다른 게 하나 있는데 H는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 나는 잘 버리는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여기엔 ‘무엇이든’ 이라는 전제가 붙으니 거의 모든 것에 대해라고 말할 수 있겠다. H가 프리마켓에서 사온 물건을 보고 ‘버리지 못하는 쓰레기’라고 폄하하거나 ‘심플하게 산다’라는 책의 제목을 들이밀어도 그녀는 “왜 안 버리냐고 묻는다면 나중에 필요할 거 같아서가 답입니다.” 라는 태도를 고수했다.


반대로 나는 별 고민 없이 물건을 쓰레기봉투에 담아버리는 인간이었다. 이런 성격은 베를린에 온 뒤로 더 심해졌는데 언제든 떠나야 하는 사람처럼, 떠나는 것이 당연한 사람처럼 살다보니 짐이 될 만한 것들은 사지도, 남기지도 않게 된 것이었다. 영화 <500일의 썸머>에서 머리칼을 스스로 싹둑 잘라버리는 썸머처럼 나도 한번 씩 짐을 덜어냈다. 


그러던 어느날 H에게 편지를 쓰려고 보니 그 흔한 편지지 한 장, 예쁜 엽서 한 장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삶의 방식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연습장을 북 찢어 편지를 쓰는 내 자신이 마치 속 빈 포춘쿠키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더하든, 덜어내든, 누군가에게 쓸 예쁜 편지지 한 장은 가지고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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