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와 피해자 구분도 못하는 사회가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피해를 입지 않은 자가 피해를 입은 자와 똑같이 분노할 때 정의가 실현된다.
_ 그리스 철학자 솔론(Solon)
여성 폭력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하려면 남성들을 일차적 책임에서 면제시켜주어서는 안 된다. 문제의 핵심은 여성과 그들의 희생이 아니라 남성과 그들의 범죄 행위여야 한다. 여성이 학대당할 때 남성이 침묵하는 것은 폭력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는다. 평범한 남성의 침묵은 허락을 뜻한다. 침묵은 남성들 간의 이해관계를 둘러싼 공모 행위이기도 하다. 우리의 침묵은 여성을 해치는 폭력적인 행동이 마치 정상적으로 용납되는 행위처럼 비치게 만든다. (...) 폭력적인 남성들은 착한 남성들이 침묵을 지킬 거라 믿고 있으며 우리가 구시대적인 남성상에 충실하게 행동할 것이라는 전제 하애 행동한다. 폭력적인 남성들은 선한 남성들이 계속해서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이라는 믿음을 공유해주기를 바란다. (...) 남성들은 여성 폭력 문제에 있어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된다. 여성 폭력 문제는 모든 남성 개개인이 책임져야 할 문제다. 우리 모두는 자기 일처럼 폭력 근절을 약속해야 한다. 남성에 의한 여성 폭력은 남성 모두가 연대적 책임감을 느끼기 전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_ (토니 포터, <맨박스>, 한빛비즈, 202~203p)
대부분의 남성들이 이렇게 얘기한다. "나는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해."라고. 그런데, 그렇게 얘기하면서, 모든 남성을 n번방의 관람자와 같은 변태 취급을 하지 말란 말을 하거나 난 그냥 가입만 했다는 등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봐야 할까? 내가 봤을 땐, 아직 맨박스에서 벗어 나오지 못한 남성 또는 벗어나기 싫은 남성이지 않을까 싶다. 또는, 이 사건을 접하면서도 아무 움직임을 하지 않고 방관하는 남성일 수도 있다.
내가 아는 몇몇 남성분들은 같은 남성으로서의 무력감을 느끼는 동시에, 어느 여성 못지않게 함께 분통해하고 가해자 처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고 있다. 이렇게 해도 그 남성분들은 수치심을 느낀다. 그리고 여성은 여성으로서 피해자 여성을 구해주지 못한 수치심과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이 사건은 명백한 ‘여성 혐오’ 범죄이다. 누가 봐도 명확한 '범죄'인데, 왜 이 범죄를 두고 자질구레한 말들이 많은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심각한 범죄 사안을 두고도 산으로 가는 말들이 많은 것 보면, 우리 인간이란 종족은 애초부터 구제 불능한 존재인 건가 싶기도 하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인간의 마음은 하루에 열두 번씩 바뀔 수 있는 존재라지만, 이 사건의 본질을 무시하면서까지 자신의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언행에 대해 타인의 공감을 구하는 것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까.
이런 성범죄 사건이 나올 때마다 '피해자 책임 전가' 현상이 보인다는 것은 아직도 여성은 안전하지 않다는 증거다. 그리고 여성의 안전을 여성의 책임으로 보는 시각도 문제다. 성착취, 성폭력을 저지르는 당사자가 아니라 스스로 안전을 챙기지 못한 희생자에게 먼저 책임을 묻는 끔찍한 일들이 아직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더 울분을 터뜨리게 만든다. 이번 n번방 사건도 "왜 그 여자들은 그런 사진을 찍은 거야?", "왜 신고하지 않았던 거야?"라고 따질게 아니라, 그 가해자인 남성(들)에게 "왜 성착취 범죄를 멈추지 않습니까?", "왜 다들 침묵하고 그것을 방관했나요?"라고 따지고 비난해야 하는 게 먼저이고, 그것이 포인트다. 언제까지 남성들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여성이 지도록 할 것인가.
여성을 혐오 및 성적 대상(왜곡된 성문화)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여성만을 타깃으로 한 범죄는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사건을 두고 여성 혐오적 표현과 욕을 할게 아니라 (자신이 진정으로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생각하고 깨끗한 남성이라 주장하고 싶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가해자 처벌'에 힘써야 할 것이다. 굳이, "당신의 딸, 여동생, 여자친구, 배우자가 당했다고 생각해보세요."라는 상상을 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런 범죄는 여남 노소 모두가 인식하고 가해자 처벌은 물론, 이와 같은 범죄가 재생산되지 않도록 힘을 쏟아야 하는 게 상식이고 정상이다.
나는 여자와 남자가 상호보완적 파트너로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느 정도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가 성립된다면 말이다. 그래서 더욱더, 이 기회에 여성 혐오를 부추기는 변태적 성욕을 자극하는 음란물, 성착취물 모조리 다 파버렸으면 좋겠다. 어느 누구보다 여자와 남자가 건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니까.
아무도 여성 폭력을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다. 자기 일처럼 나서야 한다고 하면 흔히 물리적 충돌을 떠올리지만 그 방법만 있는 게 아니다. 자기 일처럼 도울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도움이 필요할 때 공권력에 신고하는 것, 다른 남성들의 사고방식에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하는 것, 남자아이들에게 가르칠 남자다움의 의미를 다시 논의하는 것, 여성을 고려하여 행동 방식을 바꾸는 것 등이 모두 돕는 방식에 포함된다.
_ (토니 포터, <맨박스>, 한빛비즈, 4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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