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기획서와 브랜딩 기획서의 차이점?
아래는 어느 헬스케어 리브랜딩 기획서의 목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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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헬스케어 시장의 변화
- 헬스케어 시장의 규모 및 성장세
- 헬스케어 시장의 주요 트렌드
2. 자사의 강점
- 자사 브랜드 현 사업 성과 및 현황
- 자사 브랜드 현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현황
3. 자사 미래 전략 방향성
- 자사의 미래 비전
- 자사의 미래 사업 전략
4. 리브랜딩 전략 제안
- 신규 브랜드 정체성
- 신규 브랜드 정체성에 따른 전략 방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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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가요? 저는 이러한 보고서 목차를 가끔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럴 때 마다 생각합니다. ‘뭔가 이상한데?’
사실 저도 가끔 이런 오류를 범합니다. 그 오류가 무엇일까요? 바로 브랜드 기획서에 고객 이야기가 빠졌다는 것입니다. 물론 위의 목차는 과장이 있습니다. 본 글의 요지를 강조하기 위해 아예 고객 분석 파트가 빠지게 구성 해본것이죠. 현실에서는 고객 분석이 들어가긴 하지만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사례들을 종종 목격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어떻게 브랜드 기획서에 고객 이야기가 들어가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그 이유 중 하나는 브랜딩과 마케팅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브랜딩은 ‘나다움’이라는 중심이 강하고 마케팅은 ‘고객이 원하는 것’에 더욱 중심을 두기 때문이죠. (물론 최근 트렌드는 경계를 넘나들지만)
마케팅 기획서는 주로 온통 고객 이야기로 채워집니다. ‘고객에게 어떤 인식을 주겠다는 목표를 갖는지?’, ‘고객이 요새 자주 찾는 채널은 무엇인지?’, ‘고객이 어떤 메세지에 반응하는지?’ 등의 이야기이죠.
반면 브랜드 기획서에서는 ‘브랜드다움’에 대한 이야기가 더 중요한 비중으로 다뤄집니다. ‘우리 브랜드가 꿈꾸는 세상은?’, ‘우리 브랜드가 사람이라면 어떤 성격일까?’, ‘우리 경영진들은 어떤 미래 방향성과 전략을 가지고 있지?’, ‘실무진들은 자사 브랜드가 어떤 브랜드로 인식되기를 원하지?’
즉 내부자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Inside-out)이 세상의 관점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것(Outside-in) 보다 강한 영역이 브랜딩인 것이죠. 그러한 태생 때문에 가끔은 브랜드 기획서에 ‘고객’이 주연으로 다뤄지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브랜더이든, 마케터이든 우리에게 존재 이유를 주는 사람은 고객입니다. 저는 브랜드 컨설턴트이고 클라이언트는 주로 대기업 브랜드 담당자인데요, 저는 그들을 위해 브랜드 기획서를 만드는걸까요? 물론 맞습니다. 그치만, 더 궁극적인 수신자는 그 브랜드를 만나볼 최종 고객입니다. 내가 헬스케어 브랜드 컨설팅 보고서를 쓰고 있다면, 수신자는 신규 헬스케어 브랜드 음료를 마실 고객인것이죠. 이 단순한 사실을 기억 할 때, 기획서가 더욱 힘이 있어집니다. 내부 시선과 외부 시선의 균형이 생기죠.
그렇다면 고객 이야기를 잘 담는 법은 무엇일까요? 정량 조사일까요? 정성 조사일까요? 물론 그런 조사에 대한 스킬도 중요합니다. 그치만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기획자의 태도입니다. ‘고객이 되어보려는 것’에서 모든 것은 시작합니다.
브랜드 컨설턴트로서 데이터와 수 많은 정보에 함몰 될 때가 있습니다. 주로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그 브랜드에 대한 각종 내부 자료, 외부 자료를 소화하느라 정신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지켜야 할 부분은 그 브랜드의 고객이 되어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전에 건설기계 브랜드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건설기계, 생소하지 않나요? 저는 어렸을 때 포크레인을 갖고 놀이터에서 논 기억이 전부였어요. 그런데 그런 건설기계가 이 땅에 어떤 존재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전문 서비스(Professional service)를 제공 하는 상황이 된 것이죠.
먼저 고객 우선순위 정의를 위해 고객 카테고라이징을 진행했어요. 다양한 고객이 있었지만 결국 건설기계 중요 고객은 결국 캐빈(건설기계 운전대가 있는 공간) 운전자라는 결론을 내었죠. 그들의 경험에 따라 B2B고객인 딜러 역시 구매 결정에 영향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캐빈 운전자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어요. 그래도 어떻게 하면 그들이 되어볼 수 있을까 하다가 그들이 건설기계 운전자로서 받는 안전 교육을 들어보았죠. 오프라인으로 받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온라인으로 교육을 찾아보아 몇 가지를 들어보았습니다. 건설기계 운전자들이 주로 어떤 작업 환경에서 일을 하게 되는지, 어떤 상황이 위험한지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그들이 건설기계를 통해 바라는 바를 상상해볼 수 있었어요.
막상 써 놓고 보니, 저보다 더 열심히 고객이 되어보려는 브랜더들이 많을 것 같아요. 디자이너인 페트리샤 무어는 약 3년간 80대 노인으로 변장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녀는 그 경험을 통해 미국 주방용품 브랜드 옥소(OXO)의 핵심 제품을 탄생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또한 GE, 존슨앤존슨 등의 제품 디자인에 노인의 신체 특성을 녹여냈다고 하죠.
브랜드 기획서를 쓸 때마다 고객이 되어보려고하는 태도는 보고서 전반에 고객의 피가 흐르게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러한 보고서가 보고서 너머의 힘 센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한번, 고객이 되어 볼까요?
P.S. 저와 느낀표 컨설턴트는 매주 월요일 ‘브랜드 컨설턴트의 생각’ 매거진을 연재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