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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예 Feb 06. 2021

남미에서 생긴 일 2. 브라질인 전용 숙소에 간 한국인

[브라질, 포즈 두 이과수]

17시간 야간 버스를 타고 도착한 포즈 두 이과수.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인 이과수 폭포로 유명한 도시다. 아침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구경하러 직행한 이과수 폭포는 말이 안 나올 정도로 감탄스러운 광경을 뽐냈다. 그 거대한 규모에 넋을 놓고 있다가 엄청난 양의 물을 맞고 쫄딱 젖어버리는 것마저 황홀할 정도로.



하지만 일시적인 감동이 물러간 후, 포즈 두 이과수에서의 첫날밤은 씁쓸했다. 여행자 친구들을 만들어볼 심산으로 호스텔에서 2박을 묵기로 했는데, 평이 워낙 좋아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덜컥 예약한 호스텔은 위치가 시내에서 동떨어진 곳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거의 브라질 사람들 전용 숙소였던 것. 심지어 손님도 많지 않았는데, 그나마 보이는 사람들이 백이면 백 영어는 못하고 포르투갈어만 써대니 방긋방긋 웃으며 인사하던 나도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상파울루에서 언어의 장벽을 느끼고 온 터라 더더욱. 결국 카페에서 홀로 대충 저녁을 때우고 글을 쓰다가 해가 지자마자 겁을 집어먹고 호스텔로 돌아오는 내 모습이 어찌나 처량하던지.



다음 날 아침, 호스텔에서 동행 찾는 건 일찌감치 포기하고 아르헨티나 쪽 폭포를 혼자 보러 가려고 준비하는 중이었다. 이 날 브라질의 매력에 푹 빠질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봉주르!"


"엄마, 깜짝이야!"


방에 뛰어들어오며 큰 소리로 뜬금없이 프랑스어 인사를 건넨 브라질 청년, 가브리엘과는 이렇게 만났다. 큰 키와 다부진 몸에 어울리지 않게 순진무구한 인상을 지닌 그는 상파울루 출신으로, 같이 온 친구와 함께 나랑 같은 도미토리를 쓰고 있었는데, 전날 얘기할 기회가 없어서 몰랐지만 알고 보니 영어를 상당히 잘하는 편이었다.



"오늘 어디 갈 계획이야?"


"아르헨티나 쪽 이과수 폭포를 보려고. 너희는?"


"우리는 아침에 파라과이에 잠깐 갔다가 오후에 체크아웃하고 아예 아르헨티나로 넘어갈 생각이야."


"아, 나는 내일 파라과이에 갈 건데... 아쉽다. 낮에 아르헨티나에서 마주치게 되면 좋겠네."


"그러게. 안전하게 여행해!"


가브리엘과 브라질식으로 한쪽 볼을 맞대며 작별인사를 하고 호스텔 로비로 나왔다. 동행할 수도 있었는데 아쉽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그러다가 로비에서 와이파이를 쓰고 있는데 긴 금발머리에 힙합 스타일의 옷을 입은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녕, 난 티아고야. 좀 전에 내 친구가 그러는데 너 오늘 아르헨티나에 간다고 하길래... 우린 스페인어도 조금 할 줄 아니까 같이 여행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아아, 나는 폭포만 보고 다시 여기로 돌아올 건데, 너희는 아예 아르헨티나로 넘어간다고 들었어. 이미 거기에 숙소를 잡은 거 아니야?"


"아무것도 안 잡았어. 우리는 완전 무계획으로 히치하이킹하면서 여행할 거거든."


그들은 정말이지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막 상파울루에서 출발해 여행을 시작한 이들은 히치하이킹과 캠핑으로 아르헨티나 남쪽 끝까지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여행이 언제 끝날진 모르지만 갈 수 있는 최대한 멀리 가보고 싶다며. 티아고는 예술가라며 본인이 그린 그림을 가져와 보여주고는 이걸 팔아 경비를 충당해보려 한다고 수줍게 말했다.



짐을 다 싼 가브리엘 역시 로비로 나와 대화에 합류했다. 브라질의 음악, 학교 생활, 카니발까지, 쉴 새 없이 얘기를 주고받다 보니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가브리엘은 온몸의 타투를 하나하나 보여주다가, 마지막 타투는 예전에 트랜스젠더와 사귀면서 새기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편견이 완전히 뒤집히고 그들을 한 인간으로 이해하게 된 경험이었다고. 티아고는 이번 크리스마스를 가족이랑 보내지 못해서 아쉽지 않냐는 나의 질문에, 최근 대선 때 가족의 정치적 입장에 실망해서 당분간은 보고 싶지 않다고 씁쓸한 표정으로 답했다.


대화가 길어질수록 아침 일찍 아르헨티나 국경을 넘으려던 계획은 점점 미뤄지고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짧은 여행 일정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나도 마음 편히 무계획으로 여행했다면 이들이랑 같이 아르헨티나로 가도 됐을 텐데. 즉흥성을 좋아하는 내 마음이 자꾸만 요동쳤다. 어떡하지? 미리 세웠던 계획을 다 취소해 버릴까?


그 결정은... 다음 편에서 공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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